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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Jan 09. 2023

독서, 혼자 서기

혼자 있을 때 감각은 더 예민해진다

혼자 샌프란시스코에 간 적이 있다.

혼자서 외국 땅을 밟아본 건 처음일 때여서 무척 설렜다. 입국 심사를 할 때의 떨림, 공항을 벗어나 버스를 타고 달릴 때 바라본 이국적인 풍경들이 모두 내게는 첫 경험이었다. 연중 내내 비가 적게 오는 그곳의 새파랗고 넓은 하늘, 드문드문 솟아난 가느다란 잎의 나무들의 언덕, 그리고 낯선 이들의 냄새까지 첫날 샌프란시스코의 느낌이 몇 년이 지나도 내게 남아있다.


함께 하는 여행도 재미는 있지만, 혼자 다니면 감각이 더욱 예민해진다. 주변의 풍경 하나하나를 더 살펴보게 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더 의식하게 된다. 온몸으로 느끼는 여행지의 기후도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한국보다 태양에 더 가까운 듯이 뜨거운 햇볕, 그래서 그늘에 들어갔을 때 훨씬 더 서늘하게 느껴지는 건조함 등이 어느 먼 곳에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부추겼다.


물론 기분 좋은 감각만 느꼈던 건 아니다. 천지에 널린 노숙자들과 빈곤층, 그리고 그런 건 눈앞에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듯한 부유한 사람들의 거리, 그래서인지 더욱 불안한 치안이 눈에 띄었다. 한국보다 더 안전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말이다. 


체류 기간은 2주 정도로 짧았지만, 그동안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를 돌아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IT 업계의 화려한 모습과 그 뒤에 숨은 젠트리피케이션 등은 여행을 하면서도 긴 일기를 쓰게 할 만큼 많은 영감과 고민거리를 주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때론 고독하지만 경험을 더 농밀하게 해 준다. 내가 직접 헤쳐나가는 모험이다 보니 무슨 일이든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혼자 서는 일은 감각을 벼려내고 더 많은 생각에 빠지기 위한 필수적 장치이다. 합주를 하는 연주자나 단체 운동을 하는 운동선수라도 반복하는 개인 연습은 고독하듯이 더 깊이 심취하고 더 깊이 나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독서는 혼자 서 있는 일이다. 연습이나 공부가 그러하듯이 혼자 해야 가능한 고독한 일이다. 독서를 하는 순간만큼은 세상과 단절되어 오롯하게 책의 세계를 느낀다. 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이 그러하듯이 고독하지만은 않다. 책의 세계는 처음 나가본 외국처럼 새로운 경험에 휘둘리게 해 준다. 텍스트 하나하나가 여행지의 공기처럼 피부에 닿는 듯이 깊은 감각을 남길 때도 있고, 어떤 공간 속에 서 있는 것처럼 촘촘하게 또는 성기게 무언가 놓여있는 듯한 감각을 남기기도 한다.


혼자 서있는 사람은 남에게 의존하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러려면 일종의 용기가 필요하다. 내 생각을 만들어내고, 내 감각을 믿는 일종의 용기가 필요하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 그러하듯이 약간의 모험심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처음 겪는 일을 받아들일 때, 바로 그때 내가 하는 판단을 신뢰할 줄 아는 용기가 책을 읽을 때도 필요하다.


좋은 책은 혼자 들어온 여행자를 더 구체적이고 깊은 세계로 끌어당긴다.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더 날카로운 감정이 내 마음에 박히고 내 생각이 깨어지는 걸 혼자서 감당하게 만든다. 때로는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건 책 속의 세상이 혼자 떠난 낯선 여행지처럼 나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는 혼자 힘으로 서서 이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용감한 행동이다.






독서 후에 감상을 나누는 모임을 가지면 여러 가지 다른 생각을 수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전에 책을 읽을 때는 혼자만의 생각을 쌓게 된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계 속을 혼자 여행하며 어느 정도의 고독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고독하면서도 책 속 세상에 감각을 세우고 판단을 하는 것은 책 속에 빠져드는 기쁨이 된다. 홀로 하는 고독한 활동이지만 헤어 나오기 힘든 이유는 끊임없이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느끼는 즐거움과 비슷할 것이다.


같은 곳을 가더라도 여행에 대한 감상은 모두가 다르다. 미식 여행을 할 수도 있고, 박물관 투어를 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체험을 해볼 수도 있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책을 읽어도 모두가 다른 경험을 한다. 심지어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읽었을 때 감상이 다른 이유도 여행과 마찬가지일 지도 모른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골목에 들어가 보고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처럼 읽는 경험은 혼자 하기 마련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책을 읽는 건 혼자 낯선 세계에 던져지는 느낌을 체험하기 위해서이다. 혼자이기에 진하게 느껴지는 잔디의 이슬, 바람의 따스함, 시장의 냄새 등이 나를 유혹하기 때문이고, 만나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오랫동안 생각하고 때로는 감정을 건드리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읽는 사람은 그래서 고독하고, 용감하고 또 즐겁다. 그래서 좋은 세계를 그려주는 책을 찾아 혼자만의 여행을 계속하게 된다. 어떤 경험이 될지는 모르나 여행이란 어떤 경험이든 무언가 남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니 말이다. 


Photo by Jeremy Ca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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