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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Dec 04. 2020

'이것은 왜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질문부터 ①

<이제 여기 그 너머> 18호 '짓다'에 실린 기고를 편집하여 올림

'가족이란 무엇인가'


이 주제로 글을 쓰게 됐을 때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떤 가족을 말하는 걸까’ ‘저 가족의 범주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등등. 습관적으로 국립국어원에서 ‘가족’을 검색해 보았다.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 설명으로는 부족해서 이번엔 가족법을 찾아보았다.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 -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한다.) - 를 정리해보면 어쨌든 가족은 혈연과 혼인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혈연이면 어떠한 경우에도 ‘당연히’ 가족이고, 혼인으로 이루어지는 가족에는 한계를 부여한다. 이렇게 명문화된 가족의 ‘공식적’ 의미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내 주변의 다양한 관계-가족이 될 수 있거나 서로 가족 같다고 느끼는 관계-가 가족으로부터 배제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좁은 범위의 가족은 그 안에 속한 개인은 너무 옥죄고 있다.


‘그냥 가족’은 없다


“가족이라고 뭉뚱그려지는 수많은 다양한 배치들로부터 분석적으로 파생되는 일반적 혹은 본질적 범주는 없으며, 따라서 우리가 가족에 대해 말할 때는 반드시 개별의 역사적·사회적 특정성을 지닌 가족형태를 언급해야 한다.” 

- 《반사회적 가족》(미셸 바렛, 메리 맥킨토시 지음, 김혜경, 배은경 옮김, 나름북스 펴냄)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해방 이론가인 미셸 바렛과 메리 맥킨토시는 일찍이 가족의 비일반성, 비정형성을 이야기한 바 있다. 가족을 묻는 말에 내가 ‘어떤 가족’을 말하는 것인지 헷갈렸던 것은 이런 가족의 모호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편적 의미의 ‘그냥 가족’이란 없다. 가족이란 형태나 생활양식으로 존재하면서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어 왔고, 가족의 개념도 여러 정치사회적 맥락과 힘 관계 속에서 그 형태보다 느리게 변화해왔을 뿐이다.1)  다만 가족의 형태와 개념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즉 우리는 지금도 변화 중인 나름의 가족 형태를 살아가면서도, 그 개념에 대해서는 ‘전통적’이라 불리는 과거의 ‘오래된 가족’ 형태를 우선 떠올릴 것이다. 내가 헷갈리는 중에 우선 사전과 법조문부터 찾아봤던 것처럼. 누군가 가족의 개념을 물어온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충분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내 가족’과 ‘오래된 가족’ 사이에서 괴리를 경험한다.


이 괴리는 일상의 영역에서도 계속 발생한다. ‘오래된 가족’이 제도권에서 발휘하는 힘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공공의 영역은 물론이고 그 밖의 우리 생활과 연결된 거의 모든 영역, 인간관계에서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것과 ‘내 가족’과의 사이가 많이 벌어질수록 괴리도 더욱 커진다.


나 역시 동거인과 함께 생계를 꾸리고서 계속 가족 이슈로 혼란을 겪고 있다. 내 주변에는 이와 유사한, 그러나 각기 다른 혼란을 경험하는 이가 많다. ‘오래된 가족’으로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거나, 혹은 ‘오래된 가족’이 너무 버거운, 각양각색의 실제 가족들을 구성하여 살아가는 사람들. 이 문제들을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어서, 내가 J와 동거 가족으로 살면서 겪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오래된 가족’으로부터 탈출한 L의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공덕동하우스의 이야기를 차례로 나눠보려 한다.


국가는 무슨 권리로 가족을 한 가지로 정해놓고 맞추라고 하단 말일까. 개인이 이렇께 엮든, 저렇게 엮든.

1) 가족이란 각 사회의 정치적 의도대로 혈연과 혼인이나 다른 파트너쉽 등의 관계로 범위 정해져 있다. 또한 모계와 부계 같은 혈통 비중을 조정해가고 있다. 가족이 사적으로 수행하는 다양한 내부 외부 노동이 그 사회에 크게 작용하기에, 가족 단위로 보호받으면서 상호 보완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가족 단위의 보호와 그 내부 구성원인 개인의 보호는 상충될 수 있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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