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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Dec 04. 2020

'이것은 왜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질문부터 ②

<이제 여기 그 너머> 18호 '짓다'에 실린 기고를 편집하여 올림

#1 가족은 아닌 나의 동거인 J


나는 J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2016년 늦여름에 처음 만났고, 몇 번을 더 만나며 대화를 주고받다가 연애하게 되었다. 만나는 동안 인생의 핵심적 가치들이 서로 일치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싸우고 화해하기를 거듭했지만 계속 함께였다. 점차 함께 사는 삶을 그렸고, 2019년에 가구를 합쳤다. 내가 먼저 전입신고를 하고, J도 전입신고를 마쳤다. 주민등록등본을 발급해보니 J는 세대주인 내 밑에 동거인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우리는 혼인하지 않기로 했(었)다. 누군가 삶의 동반자와 함께 선택할 수 있는 가족 제도가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혼인뿐이라는 것도 문제인데, 그조차 이성애 결합만 차별적으로 받는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2) 나는 '그런' 혼인 가족이 되기 싫었다. 대신에 비혼 동거 가구로 국가 통계에 남아서 가족 제도를 수정해야 할 압력이 되고 싶었다. J도 거기에 동의했고,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힘을 잃었다. 수중에 있는 돈으로는 살고 싶은 주거 환경을 마련할 수 없었다. 낮은 보증금에 높은 월세를 감당하는 것보다는 정책 금리가 제공되는 전세 대출 상품에 가입하여 그 이자를 지불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때마침 나는 커리어를 놓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오래 다녔던 회사를 퇴사한 상태여서, 중소기업청년 전세자금대출 대상에서도 탈락한 마당이었다. 우리 조건에 서울특별시 예비신혼부부 임차보증금대출을 받는 게 자금을 마련할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결국 혼인 예정을 ‘증명’하는 자료3)를 만들어서 제출하고, 계약일로부터 6개월 안에는 혼인관계증명서를 내는 조건으로 저리 전세 대출을 받았다.


같이 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애인 소유의 자동차에 내 보험을 같이 신청했다. 가족이라면 낼 보험료의 20배를 지불했다. 정수기 렌탈료에서도 예상 밖의 지출이 생겼다. 애초에 18,000원에서 15,0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는 J의 제휴 할인 카드로 지불을 설정하려 했으나, 계약자인 내 가족이 아닌 타인 명의 카드는 등록할 수 없었다. 내 카드로 할인 없는 월 렌탈료가 빠져나갔다. 이 외에도 건건이 예상치 못한 생계비 이슈가 발생했고, 고민이 깊어졌다. 이미 퇴직금도 이렇게 저렇게 거의 탕진한 후였다.


그래봐야 5개월 정도 후엔 어차피 해야 할 혼인신고니까, 그렇다면 내 귀한 생계비로 부자 기업 배만 불려주고 있는 셈이니까, 그런데 돈 때문에 하는 혼인신고니까, 기타 등등의 이유를 생각하다가 바로 혼인신고서를 써 버리기로 했다. 그 길로 구청으로 가서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다가, 4번 항목에서 다시 진도가 멈췄다.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


서류를 제출할 의욕이 다시 꺾였다. 혼인신고서는 스스로 그 문제들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떡하니 또 다른 문제를 뻔뻔하게 전시하고 있었다. 이번엔 ‘재생산’의 문제였다. ‘오래된 가족’에 속한 여성이 거의 의무인 것처럼 아주 오랫동안 감당해온 출산을 지속적으로 당연시하면서4), 태어날지 안 태어날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전제하여 그의 성·본을 미리 확정하라는 의미였다. 이 문제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커플이 주변에 있었고, 따라서 충분히 예상한 무례함이었음에도 막상 마주하니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이걸 따르지 않으면 혼인 가족이 될 수 없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해당 부분을 공란으로 두면 접수가 되지 않는다고 안내받았다.)


‘애 안 낳을 생각이면 혼인신고도 하지 말라는 건가?’ ‘이자 좀 낮춰주고 내 가족 구성권마저 가져가겠다는 건가’ ‘고리대금업자보다 더 날강도 같은, 이게 국가인가?’ 결국 당일 접수하지 않은 혼인신고서를 들고 나오면서 ‘내 가족’과 ‘오래된 가족’ 사이의 괴리는 더욱 벌어졌다. 나에게 ‘오래된 가족’은 맞지 않는다는 확신도 커졌다. 그날 보류한 혼인신고의 마감일은 4개월 이상 남겨 놓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족이 아닐까?’


자동차 보험료를 20배 많이 지불하고, 정수기 렌탈료도 그대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동거인 관계5)로 있지만, 주변의 누구도 우리를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기존의 ‘오래된 가족’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힘이 우리와 ‘오래된 가족’ 사이에 마치 인력(引力)처럼 세게 작용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일들이었다. 내가 원한 바는 전혀 아니었으나, 내가 애인과 동거하기 전에 내 부모님의 제안으로 J의 식구와 함께 식사를 했다. 이를 두고 내 친구들은 “그게 바로 상견례”라고 했지만, 나는 서로의 식구끼리 밥 한 번 먹은 것을 두고 상견례라는 개념을 들이대는 것이 영 거슬렸다. 내가 J와 함께 살게 되자마자 J의 엄마는 나를 “며느리”라고 여겼고, J의 동생에게 나를 “형수”로 부르게 했다. (J의 동생에게 내 이름을 부르라고 이야기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J의 엄마는 나더러 J의 여자 사촌 M에게 농담처럼 “아가씨”라고 불러보라고 했으나, 나는 거절했다.


이런 식의 역할 기대를 받는 것은 J도 마찬가지였다. 내 아빠는 J와 내가 함께 살기도 전에 이미 사위와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 불렀고, 단골 식당에서 J를 ‘작은 사위’라고 소개했다고 했다. J는 내 형부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내 조카들은 J를 이모부라고 부르도록 교육받았다. (조카들에게 J 형이라고 이야기해봐야 별 효과가 없었다.) 내 쪽이나 J 쪽이 경험하는 이러한 ‘오래된 가족’의 당김 현상은 도무지 막아지지가 않았다.


우리가 동거를 준비하면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일정도 겪었다. 추석 연휴 때 나는 J와 J의 엄마와 외국에 계신 J의 아빠를 만나고 돌아와서, 다시 내 부모님과 다른 식구들이 모이는 우리집도 방문했다. 단지 함께 살기로 했고, 따라서 동거인의 부모님과 관계가 더 밀접해진 것까지만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에게 당연한 것처럼 ‘오래된 가족’의 호칭이 주어지는 것(과 그에 따른 역할들이 기대되는 것은)과, 거기에 우리가 영향을 받는 사실이 나를 계속해서 불편하고 찜찜하게 했다.


#2 폭력 가족에서 탈출해 독립 가구를 꾸린 L


L은 현재 7년차 1인 가구다. L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장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가정폭력을 경험했다. 8살에 아빠와 이혼한 엄마는 그 전부터 L을 학대했고, 이혼 후 한 번도 L을 찾아온 적이 없었다. L은 아버지에게 계속 맞았다. 마침내 집을 뛰쳐나가기 직전까지도 핸드폰 파편들이 발에 밟혀 피가 철철 흘렀고, 경찰과 함께 병원으로 가서 발에 박힌 파편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뇌진탕 판정을 받았다. L은 아버지라는 사람이 딸 관계인 L을 보증인으로 앞세워 잔뜩 져 놓은 빚까지 본인의 신용 대출로 전환하여 자그마치 1년간 대신 빚을 갚았다. 재수 학원 비용까지 대줬던 남동생에게도 맞았었고, 함께 살던 친할머니에게도 늘 폭언을 들었으며, 사촌언니는 L의 명의로 카드를 발급받아 거액의 카드빚을 지고 갚지 않았다. 그로 인해 L이 자신이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갓 취업한 새 직장의 신용카드 겸용 사원증을 발급받는 과정에서였다. L은 이 빚까지 모두 갚았다.


L이 아버지를 가정폭력으로 신고했고, 경찰이 이를 확인했기에 아버지 본인은 L이 혼자 사는 집주소를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가정폭력의 공범자였던 다른 가족들은 L의 주소를 알 수 있기에, (그렇다면 아버지도 L의 주소를 알게 될 수 있게 되기에) L은 독립 가구를 꾸려 사는 동안 한 번도 세대주가 되지 못했다. 세대주인 친구의 세대원으로 이름만 올려놓고 지냈다. 그래야 가족에게 주소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월세보다 저렴한 전세대출 이자를 부담하는 선택을 할 수 없었고, 연말 정산 때 월세를 낸 부분에 대한 세금 환급 역시 받을 수 없었다.


‘폭력이 가능해지는 가족, 왜일까?’


가족이면 덮어 놓고 한 개인의 이름을 빌리는 것이 애초에 가능하고, 그렇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빚쟁이가 되고, 신용불량자까지 될 수 있으며, 가정폭력에 장기간 노출되는 것이 용인되는6) 사회 속에서, 그 가족 속에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L의 기본권이란 없었다.


L은 집을 탈출해서 물리적인 폭력에서는 멀어졌으나, 이후로도 오랫동안 아팠다. 치료를 받고 낳았지만, 여느 상처가 그러하듯이 상흔이 남았다. 관리가 필요하고, 아픈 기억와 마음은 계절이 그러하듯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여전히 강제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7), 거취를 숨겨야 하는, 그렇게 물리적으로도 삶을 지배하는 ‘오래된 가족’에서 개인이 벗어나는 것에 제공되는 공식적인 도움은 없다. 도움은커녕, 앞서 언급했듯이 구조적으로 속박하고 방해하고 있다. L은 아직도 가족에 대한 서로 모순되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가족들이랑 살 때 죽을 것 같았다”라는 말과 동시에, “낳아준 사람이라고 다 엄마는 아니다”라거나 헤어진 애인을 두고 “가족 같았다”라는 말을 하는.


L이 아픈 독립생활을 하는 동안 큰 고통과 어려움을 완전히 자기 안에만 가둬 놓고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L의 주변에는 다양한 관계망이 있다. 우선 L의 상담 선생님은 L이 고통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밖에도 L 주변에는 그의 힘든 것이든 즐거운 것이든 조금씩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이와, 사소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왔다. 가끔 먹을 것은 나눠 먹는 사이도 있고, 간혹 그 집에 머무를 수 있는 관계도 있다. 그들은 모두 ‘오래된 가족’은 아니지만, 폭력 그 자체였던 ‘오래된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자기의 생을 살아갈 때 버틸 수는 있게 지탱해주는 아주 낮은 언덕 정도는 되어 주었을 것이다. L은 그런 관계를 두고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었다.


‘이것은 왜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


#3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비혼 동반자들의 커뮤니티


“혈연관계인 엄마와 나에 대해서는 누구나 가타부타 없이 가족이라고 하지만, … 다방면에서 실제로 생활을 함께하고 있는 공덕동하우스 멤버들은 아무리 말해도 가족이라고 밖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참 이상하지 않나요? 나는 엄마랑 같이 안 산 지가 10년도 넘었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제도 가족에 포함되니까 모두가 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 〈삼〉 2호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존중받는 사회를 위하여” 64쪽, 혠(홍혜은)의 말 재인용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의 대표인 홍혜은 씨는 ‘결합’이 주제였던 〈삼〉8) 2호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오래된 가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연히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서로를 돌보고 미래를 논하는 공덕동하우스 식구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주장한들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 이상함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이들은 비혼 구성원으로 꾸려진 커뮤니티로서, 흔히 가족‘만’ 할 것이라고 착각되는 돌봄 노동을 서로 주고받는다. 그 외에도 생활, 교육, 놀이 등을 함께하며, 모두가 함께 생계를 공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따로 또 같이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엔 한 멤버가 편도선 절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함께 사는 엄마는 입원 수속을 도와주기로 해놓고 잠수를 타고, 수술비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연락을 두절했다. 환자가 직접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수술을 받을 수 있었지만, 전신마취를 했고 입원까지 했기에, 수술 당일엔 ‘가족이 아닌’ 혜은 씨가 가서 입원 과정을 돕고 편의시설도 함께 돌아봤다. 이후로도 ‘가족이 아닌’ 공덕동하우스 식구들이 교대로 병실에서 환자를 돌봤다.


“우리가 가족이 아니라면, 대체 돌봄노동을 하는 우리는 뭔가요? 단지 제도가 임의로 묶은 가족만 가족이고, 그 밖의 범주는 또 임의로 가족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 우리가 이렇게 지배를 받는 거예요.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   

- 위의 책 66쪽, 혠의 말 재인용


공덕동하우스는 신문과 방송 등 매스컴을 계속 타면서 조금씩 알려져 왔다. 주거를 함께 하는 구성원도 있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함께 사는 구성원보다 다른 면에서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는 비동거 구성원도 있다. 또한 이들에겐 각각 함께 살거나 함께 살지 않는 다른 종류의 가족 또한 있을 수 있다. 이들은 자기 커뮤니티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한다는 사실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9) 그렇다고 해서 서로 무관하다 여기지 않는다. 모두 주거를 공유하는 것이 가족의 조건도 아니며, ‘오래된 가족’ 역시 모두 함께 같이 사는 사례는 드물다. 그런 사례가 있어도 인생에서 부분적인 시간을 동거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홍혜은 씨가 살고 있는 공덕동하우스의 존재는 한국사회 가족의 정의에 대해서 근본적인 물음표가 된다. 공덕동하우스는 일종의 가구 실험 운동 같다. 그들은 ‘오래된 가족’만을 제도로서 보장하고 있는 국가와, 거기 맞물려 돌아가는 사고방식 속에서, 마치 없는 것처럼 있기를 강제받는 많은 관계들이 다양하게 조명받기를 바란다. 어떤 개인이든 원하는 삶을 그에 맞는 파트너(들)와 함께 꾸릴 권리가 있다. 결혼처럼 생활의 모든 요소가 한 번에 다 엮여 있는 ‘풀패키지’ 상품 하나에 모든 개인을 우겨넣으려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개인이 존중받는 분산적인가족 제도와 선택적인 혜택이 필요하다. 그게 개인은 개인답고 국가는 국가다울 수 있는 방법 아닐까.


“타인과 타인의 결합이 어떤 제도를 통해서 운명공동체가 된다는 ‘신앙’을 버려야 할 것 같아요. 이미 자생하는 개인들의 친밀한 관계망들에 이름을 어떻게 붙여줄 것인가로 제도적 접근이 바뀌면 좋겠어요. 전자와 후자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거든요. 경제, 주거, 의료 등 생활의 여러 가지 요소를 하나의 패키지에 고정해서 때려 넣는 것이 현재의 결혼인데요. … 생활동반자법을 만들 때도 굳이 생활의 모든 요소를 한 번에 다 때려 넣을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 방점을 이미 설정해놓은 그룹이 아니라 개인에 놓아야 해요. 여태까지 국가가 단 하나의 관계로 모두 집중시켰던 정책이나 혜택을 분산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관계망 제도를 짜야 한다는 거죠.”

- 위의 책 67쪽, 혠의 말 재인용



2) 혼인 관련 법 역시 민법 제4편에서 규정한다. 제3장 제2절 혼인의 성립에서는 동성혼 금지를 명시하고 있지 않으며, 헌법에서도 제2장 제11조 ①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으나, 공개결혼식을 한 동성 커플인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혼인신고는 구청에서 거부당했다. 이들은 ‘가족관계등록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을 했으나 1·2심 모두 패소했다.

3) 혼인 예정을 증명할만한 자료가 무엇이냐고 관할 지원센터에 문의했더니 청첩장, 혹은 예식장이나 웨딩사진 계약서 같은 것을 제출하라고 했다. 결혼식을 조장하는 것도 아니고, 가뜩이나 혼인의 추세가 미니멀하게 가고 있는 마당에 ‘혼인=결혼식’이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도 웃겼다. 결혼식도 결혼사진 계획도 없는 우리에게- 내 부모는 결혼식을 하라고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고, 그런 부모에게 ‘내년엔 하겠다’라고까지 해놓은 상태다 - 그런 자료는 없으니 편지를 써서 제출해도 되냐고 물었으나, 사문서는 불가하다고 했다. 담당자 역시도, 비슷한 민원이 많고 내부에서도 문화가 바뀌는 것은 알고 있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허공에 있는 결혼식 날짜, 지인 카페 주소를 박은 청첩장을 만들어 제출했다.

4)  “이상적인 출산의 방식, 결혼을 통한 정상적인 양육, 이성애 결혼 외곽의 성에 대한 낙인, 출산을 위해 도구적인 몸으로 환언되는 무수한 여성들의 삶의 현실과도 맞물려 있다.” 가족구성권연구소 창립 심포지엄 발표문 〈왜 지금 가족구성권인가〉(김순남)

5) 어떤 가족이건 동거인이라는 관계로써 가장 좋고,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무개 둘이서 정하여 꾸려가는 가구이건 가족이건, 동거인 외의 ‘오래된 호칭’이란 대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오래된 호칭’은 분명 그 오래된 역할을 ‘지금의 가족’에게 강제로 떠넘겨 ‘오래된 가족’을 유지시키려 하는 음흉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6) 마침내 L의 아버지가 연행된 것은 첫 신고 때가 아니었다.

7) 경찰서에 간 동생의 합의금을 내라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서, L은 그 합의금을 내주었다. 경찰이 L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 합법적인 일인지 궁금하다.

8) 30대 생애 이슈를 담는 저널.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https://www.tumblbug.com/sampress)으로 3호까지 발행했으며,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없는 것은 여전히 ‘돈’과 ‘권력’뿐인 30대가 말하는 공간을 지향한다.

9)  〈삼〉 2호에 방담에 참여했던 구성원 한 명은 현재 외국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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