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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Dec 31. 2020

가부장제 ‘유령’에 홀린 넋 되찾기 <러브 앤 아나키>

넷플릭스 드라마 <러브 앤 아나키> 시즌1 리뷰 _ 소피 탈출하다

<러브 앤 아나키(kärlek och anarki)>를 보고 새삼 놀랐다. 스웨덴은 OECD가 때마다 발표하는 회원국의 행복지수는 물론이고 젠더격차지수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최상위권을 기록하는 나라 중 하나인데, 이 사회에서도 가족 구성원으로서 여성에게 결정적으로 기대되는 역할에 있어서는 최하위권인 한국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소피, '주체적인 여성' 이미지를 획득했지만

드라마는 스웨덴의 제1도시인 스톡홀름에서 펼쳐진다. 이야기 중심에 있는 소피는 한국으로 치면 서울인 제1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한 번도 그 밖에서 살아보지 않았다. 40대 초중반 여성이고, 경영 컨설팅에 있어 전문성을 갖고 있다. 회사에서 일한 건 컨설팅 회사 사장으로서가 마지막이었고, 지금은 독립한 미래전략분야 프리랜서이며, 명망 있는 문학 출판사의 미래전략담당으로 6개월간 일하기로 했다. 디지털화에 익숙하지 않은 출판사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경험해보지 않은 그녀의 제안이 두렵다. 그렇지만 적어도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그녀의 역할을 존중한다.


한편 소피는 4인 가족의 어른 여성 구성원이기도 하다. 어떤 선진국에서도 언제나 보호받는 가족 형태 안에서 엄마이고, 아내다. 그녀는 남편인 촬영감독 요한과 사이에서 낳은 두 자녀, 1녀(이사벨) 1남(이름 기억 안 나고 찾으려고 해도 안 나옴)을 두고 있다.


소피의 가족은 스톡홀름에서도 상당히 넉넉한 계층에 속한다. 큰 규모의 집에는 거기 걸맞는 널찍한 부엌 가구를 갖춘 거실만한 다이닝 룸이 있고, 바로 연결되어 있는 거실이 있으며, 부부 침실 또한 널찍하다. 아이들도 각자 생활을 고려한 자기만의 방이 있다. 값이 상당히 나갈 법한 다양한 패션을 소화하는 소피에겐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장소도 있을 테다. 유사한 생활환경을 유지하는 친구 부부도 가까이에 있다. 소피는 언뜻 안정되고 이상적이기까지 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 네트워크 속에서 전문 영역까지 구축하고 있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보여진다. 이런 그녀가 가장 확실하고도 격렬한 자기 욕구를 시도 때도 없이 자위로 몰래 해소한다. (막스에게 들키긴 하지만) 그 ‘비밀 자위’는 완벽해 보이는 그녀의 집에서 가장 작은 공간인 화장실 한 칸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

출근 전에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자기 욕구 해소를 위해 화장실로 올라가 자위하는 소피. 


그러나 소피가 현 상황에서 발휘해 온 주체성은 실은 남편 요한의 '인내'와 통제 안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러브 앤 아나키> 시즌1은 8개 에피소드로 구성되고, 개별 에피소드 러닝타임은 30분 정도니,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시즌1을 완주할 수 있다.) 겨우 화장실 한 칸 정도로 한정된 비밀 자위 장면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소피의 주체성이 막히기 시작하는 계기는 불륜 발각도, 회사 일의 변동 때문도 아니었다. 뭔가 복잡하고 심오한 이야기 전개가 필요했던 사건 때문도 아니었다. 남편 요한이 더 이상 소피의 '이상한 선택'들을 두고 보기 싫어지는 순간, 소피의 주체성은 나타날 것을 제압받기 시작한다. 그녀는 회사에서부터 재미로 시작—회사 사람들은 별로 문제 삼지 않는다—한 ‘하루 뒤로 걷기’ 미션을 집에서도 계속했고, 일과 관련된 영화 프리미어 행사가 있는 날 튀는 의상으로 출근했을 뿐이다. 그리고 정신이 아프거나 어쨌거나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딸 이사벨을 할아버지에게 데려갔을 뿐이고. 요한은 손녀가 할아버지 병원에 면회 가는 일을 일방적으로 금지했고, 소피가 거기에 무조건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거기에 요한은 '과한 액션'을 동반해 화를 내기 시작하고, 소피는 우선 사과부터 한다! 한국 주말 연속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풍경이다. 소피의 사과에 요한은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소피가 개별 인간으로서 소소한 '일상 게임'처럼 할 수 있는 일종의 자기표현이나, 엄마로서 내리는 판단과 결정을 모두 대단히 문제 삼는다. 참다못한 소피가 “작작 좀 하라"고 해도 제어되지 않는 요한의 자기 주장들은 정당성이라곤 없어 보인다. 이런 광경이 한국도 아니고 스웨덴 중산층 4인가족에서 나오기에 자연스러운 장면인지 궁금해진다. 아무튼, '주체적으로 보였던 여성' 소피의 삶에 내재된 한계적 주체성이 이 드라마의 시즌1에서 드러난다. 


한 번 참아주고 왠만해선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소피의 제동은 요한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그동안 넘어가준 것에 길이 든 것인지, 계속 그런 식으로 행동해 온 요한은 소피가 마치 악마에게 영혼을 팔기라도 한 것처럼 대놓고 소피를 폄훼하고 협박한다.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는" 일이 바로 이런 거라고 하고 싶다. 심지어 요한이 아내 소피의 생각에 반대하기 위해 "(너의 행동을) 내가 용납 못 한다"는 으름장을 거침없이 지른다. '용납을 못 한다니?' 거기에 내세워지는 것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이유로 앞세워 어른을 윽박지른다. 그는 시종일관 소피에게 지나치게 비아냥거리는 행동을 계속 해왔고, 용납되지 못할 행태를 하는 쪽은 오히려 요한이다.


대범해지는 소피 남편의 ‘가부장 영웅 놀이 절정을 찍고

요한의 행태는 갈수록 대범해진다. 아침 상에서는 식구들에게 의논 한 번 해본 적 없는 영국으로의 이사 계획을 통보하듯 발표하고, 이사벨이 혼자 남을 할아버지를 걱정하며 재고 의견을 내자 일말의 재고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원맨쇼’의 정당성을 위해 (허울뿐이더라도) 이 가정의 또 다른 어른인 소피의 동조를 요구하기까지 한다. 말문이 막히고, 얼이 빠진 표정을 한 채로 소피는 또 다시 우선 수용하고 만다. 이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담은 카메라는 이어서 조마조마하게 엄마의 상태를 지켜보는 이사벨의 얼굴을 담는다. 이사벨은 소피에게 “괜찮아?” 묻고, 소피는 늘 (전혀 안 괜찮아보임에도) “괜찮다”라고 답한다. 이상하리만치 자녀들 앞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소피의 방어는 정말 괜찮은 걸까. 


나름의 커리어를 계속 쌓고 있는 소피의 일은 이제 갑자기 황급히 정리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다. 회사는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의를 밝혀야 하게 되었고, 그녀가 맡은 일에서 중대한 프레젠테이션이 있는 날에는 요한이 제멋대로 잡은 친구 부부와의 동반 스파나 하고 있게 되었다. 발동이 걸린 요한은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빠르게 ‘소피 전환 계획’을 밀어부치고, 스파에서 절정을 찍는다.


스파가 아니라 원래 소피가 해야 하는 중대한 프레젠테이션은 출판사 존립을 가를 수 있는 인수 이슈에 관한 건이었다. 세계 최대 디지털 영상 콘텐츠 스트리밍 회사 '스트리머스'로의 인수를 앞둔 출판사가 스트리머스에 미래 전략 계획을 밝히는 날이었다. 그런데 소피는 마치 유령에라도 홀린 듯이 일단 요한의 말에 다 따르면서 발표 전날에 회사에 자료를 넘겨주며 갑자기 영국으로 이사가 결정되었다면서 사의를 밝힌다. 이렇게 모든 걸 관성대로 조금 더 조금 더 제멋대로 나아가던 요한과, 그만큼 더 더 수용하던 소피 관계는 드디어 스파 안에서 새로운 전개를 맞는다. 


"소피는 지나치게 열심히 일했어. 업무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 거지 같은 출판사. 미안한데 너무 화가 나더라고 아마추어 나부랭이들! 재무가 뭔지도 모르는 놈들이야. 이성은 다 팽개치고 늘 감정 타령이라니까. 너무 화내서 미안한데 그놈들이 당신을 완전히 망쳤어."


중역을 맡은 소피의 일이 과중한 것도 비정상, 그녀의 아버지는 멍청이, 소피는 그 모든 '사탄 마귀'에 농락당하고 망가져서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설정하고 맘대로 소피를 물고 뜯기 시작하는 요한과, 거기 맞창구를 치는 요한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비좁은 스파는 애초에 요한에게 가장 안전하고 소피에게 가장 위험한 공간이었다. 이 위험한 장소에 놓인 소피의 얼굴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하고, 소피는 언제나처럼 기막히고, 참을 수 없고, 차라리 넋을 놓는다. 그러면서도 계속 요한를 응시하는 소피와 달리 막스는 소피의 눈을 응시하지 못하면서도 계속 공격을 이어간다.


"게다가 소피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완전히 깨부쉈지. 멍청한 논리로 이사벨을 꼬시더니 소피까지 광기로 몰아넣으려고 하잖아."

"벌써 주 2회로 소피 심리 상담도 예약했어. 소피는 정말 이 도시와 자기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야 해."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싫다고 말하는 소피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드.디.어. 요한는 절정을 찍는다. 


"다 괜찮아질 거야. 짐은 내가 다 짊어질 테니까 당신은 집에서 쉬면서 자신과 애들에게 집중해."

(드라마에서 소피는 재택근무를 자주 했을 뿐이다.)

"당장은 혼란스럽겠지 아버지 일에 다른 일도 있으니 상담가가 약만 적당히 쓰면 완전히 정상이 된대."

(정상이 아닌 사람이 소피일까 요한일까.)

'그냥 넘어가 주는 건 이제 그만해야겠다'
"으르렁 으르렁(사람 말로는 소용이 없는 개자식아)'

소피는 결국 여기까지 도달하자 눈알을 빙그르르 돌리지 않고 눈을 부릅뜨더니, 넋을 찾는다. 그동안 충분히 해온 사람 소리 대신 ‘개소리’로 대응하고, 방향성도 없던 요한의 폭주기관차는 소피의 한계 영역에 끝에서 결국 전복된다.


“으르렁”

“으르렁”


소피는 욕조를 탈출하며 걸친 샤워가운을 입고 회사로 직행한다. 가부장 서사의 영웅 놀이를 하고 싶었던 요한의 ‘압도적인’ 계획은 이로써 틀어질 수밖에 없다.


탈출을 시작한 소피


트레일러를 보고 소피와 젊은 남성 막스 사이의 (불륜 버전) 로맨틱 코미디, 치정 물인 줄 알았던 <러브 앤 아나키> 시즌1을 완주하고 생각이 달라졌다. 로맨스는 소피라는 세계를 부자연스럽고 욕구 불만으로 만드는 생활 전반의 영향의 근원은 찾게 하는 이벤트 장치일 뿐이다. ‘비밀 자위’를 처음 들킨 상대이자 ‘이런 짓’ 정도는 ‘버거킹 런치를 함께 먹는 정도에’ 못 본 걸로 쳐주고, 의도치 않게 연애 상대로 발전한 막스와의 관계, 재미있는 게임은 겉으로만 완벽했던 자기 생활 — 주체적인 여성 이미지, 가까운 관계, 네트워크의 이면 —을 소피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트리거다. 막스는 소피의 의사 결정들에 있어서 직접 요인이 되지 못했고, 이 이야기의 중심은 결국 로맨스가 아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의 중심이 로맨스가 아닌 것처럼.


아무튼. 부자연과 욕구 불만의 근원은 또(!) 가부장제다. 어떤 여성에게나 갑자기 덮쳐올 수 있고, 그 자체로는 놀랄만할 게 없는 오래된 상황, 아직도 들러붙어 인간을 짓누를 준비가 되어 있는 가부장제의 유령. 가부장의 대장이 되고 싶은 욕망을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요한의 입에서 결국 튀어나온 말의 진부함을 생각해보면 이 유령과 같은 가부장제가 얼마나 현실에서 힘이 센지 생각해보게 된다. “짐은 내가 다 짊어질 테니까 당신은 집에서 쉬면서 자신과 애들에게 집중해"라니. 지금은 2020년인데 이렇게 뻔하다니. 상상력을 아주 조금도 발휘해볼 노력도 없이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여도 통하는 말이라니.

프레젠테이션은 결국 망하고, 스트리머스의 인수 계획은 무로 돌아간다. 소피는, 출판사는 이후 생존을 어떻게 도모할까.


‘행복하고 평등하다'는 스웨덴이든 어디든, 어떤 사회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구려지는 구역은 역시 가족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이야기 내내 요리 양념처럼 잦은 섹스나 혼외 연애도 아니고, 보수 기독교계가 세상을 멸망시킬 무언가처럼 혐오하는 동성애도 당연히 아니다.) 여성에게 아직도 속박이자 일터인 가족, 합법도 불법도 아닌 일상의 영역으로 존재하면서 계속 한 개인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이 관계. 여기야말로 '치외법권'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공간' 아닐까.


소피가 시즌2에서 이어갈 탈출이 궁금하다. 시즌 1에서 이제 막 탈출을 시작한 소피의 '러브 앤 아나키'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막스와의 관계는 일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종료될 수도 있지만, 그녀는 완성 못했던 제목의 소설을 계속 쓰게 될까? '러브 앤 아나키' 다음 시즌이 더 궁금해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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