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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Dec 05. 2020

'이것은 왜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질문부터 ④

<이제 여기 그 너머> 18호 '짓다'에 실린 기고를 편집하여 올림

‘이것은 왜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질문부터


아무래도 위의 변화들에 관해 계속 보도하고 있는 미디어들은 차례로 가족 제도에 대한 대안을 묻는 기획 보도들을 해왔고, 외국 사례로는 한국보다 앞서 가족 구성의 선택권을 더 확보해놓은 유럽권 국가들의 모델을 주로 다루곤 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가족 제도 중의 하나인 ‘팍스(PACS, Pacte civil de solidarité)’가 집중 조명 받았고, 국내에도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심지어 내가 아버지에게 동거 계획을 알리자 “여기가 프랑스인 줄 아느냐”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왔을 정도로.) 


팍스는 시민 간 결합을 보장하는 가족 제도로, 1991년도 프랑스 사회 맥락 속에서 탄생했다. 국내에선 ‘시민 연대 계약’ 정도로 번역된다. 이와 유사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생활동반자법)13)’이 한국에서도 2014년 당시 진선미 국회의원에 의해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었다. 팍스와 관련해서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인 전영이 비교헌법연구로서 작성한 〈프랑스에서의 혼인과 가족생활 보호에 관한 연구〉 보고서도 있다. 2017년 8월 발행했다.14) 그런데 팍스가 정말 2020년 한국사회, 그 이후까지 내다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홍혜은 씨는 2014년 발의되고 논의됐던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몰락하는 결혼’ 이후에 그 역할을 대체할 유사한 제도를 또 다시 찾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었다. 단지 그 대상을 조금 열어 놓았을 뿐, ‘나의 인생을 같이 할 단 한 명의 동반자’를 등록하고 제도적 혜택을 부과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혼인제도와의 큰 차이를 찾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분명 우리보다 앞서 있는 서구권의 동반자 제도들은, 한국의 새로운 가족 구성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참고할만한 사례다. 그러나 지금, 여기, 더 나아가서 10년 후나 그 이후까지도 상상해볼 수 있도록 동반자 구성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에겐 실존하는 많은 동반자 관계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마침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특별히 2019년 초엔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창립기념식을 가졌다. 김순남 소장은 지금 가족구성권을 말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양한 가족구성권은 각 개인이 시민으로서 평등하게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시민권의 문제와 동시에 관계를 맺을 권리에 대한 논의의 축과 만나며, 이를 통해서, 개인, 관계영역, 사회,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재사유하는 인식론이자 실천적인 영역이다. 무엇보다, 가족구성권에 대한 요구는 제도로의 편입에 대한 욕망 이전에 왜 제도가 특정한 가족만을 정상화하는지? 특정한 가족을 중심으로 공적인 가치, 제도가 구성되는지를 반문하는 토대가 된다.”


이런 때에 ‘가족에 대한 물음’을 함께 묻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다.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당장 내 옆에 있는 관계들을 놓고서 ‘이것은 왜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를 묻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더 많은 가족의 형태와 존재 의미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배제시키는, 폭력적인, 가족 말고, 포용하는, 연결되는 가족도 가능하지 않을까. 끝으로 가족구성권 연구소 창립기념식에서 김 소장의 마지막 말을 인용하려 한다.


“기존의 ‘가족’의 의미를 재구성하면서, 관계적 존재로서의 삶을 언어화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의 이름들이 만들어지기를 고대하며, 이 사회의 무수한 마이너리티의 삶들이 연결되고, 관계 맺는 그 지점 어디에서 삶의 존엄을 꿈꾸는, 관계의 평등을 모색하는 여정을 가족구성권 연구소는 이어나가고자 한다.”


‘이것은 왜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


13) ‘생활동반자법’이라고도 자주 불린다. 앞서 홍혜은 씨도 언급했다.

14)  https://ri.ccourt.go.kr/cckri/cri/study/selectPublishList.do?pageIndex=8 에서 다운로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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