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하루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에 대한 불편한 진실

by Sam Lee

자발적 실업을 택한 41세 가장의 이야기


대한민국을 사는 40대 초반 남성이라면 자기 분야에서 가장 치열하게 일할 시기일 거다.

하지만 나에겐 언제부턴가 내가 하고 있는 일 -인사, 총무분야- 에 대한 회의감과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재미없는 수준을 넘어 무기력증에 빠졌으니 말이다.


결혼 이후 10년 이상 안산에서 서울까지 편도 1시간 4~50분 거리를 출퇴근 -1년 동안 출퇴근 시간을 계산해보니 한 달의 시간이나 되는, 그래서 입버릇처럼 나는 1년을 11개월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 하며 육체적 피로를 늘 달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건 몸이 적응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버틸 만한 무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더 무거운 피로가 쌓여만 왔던 것 같다. 이 상태로 더 가다간 마음의 병이 깊어만 질 것 같은 생각이 엄습했다. 그래서 끝없는 고민과 고민 끝에 아내와 상의하여 사직을 결심했고 용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그래서 지금은 자발적 실업자, 아니 자유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 나이에 그냥 놀면서 내 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찾기에는 너무 철부지 같고 무책임하게 생각돼서 가계 경제에 조금이나마 부담을 줄여보고자 저녁 시간에 치킨집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주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자유인 만이 누릴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싶다~~ 평일 오후 카페에 앉아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마시며 이렇게 내 나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부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뼛속까지 전해져 왔다. 아르바이트 조차도 내 나이에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면접 첫 질문이 "나이가 많으신데 최저임금으로 괜찮으시겠어요?" 물론 나의 대답은 "관계없어요. 할 수 있어요" 였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상황은 더욱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사장이던 팀장이던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보니 나를 부르는 호칭이 어려웠나 보다. 아무개 씨~라고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저기요"하며 부르더란다. 나의 이름조차 상실해 가고 있었다. 이건 어느 집에서든 누구누구 아빠, 혹은 엄마~라고 불리며 자기 이름을 상실해 가는 것보다 더 큰 상실감을 안겨주는 일이 리라. 하지만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백수 가장은 다시 꿈꾸려 한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글귀 중 이런 말이 떠오른다.

삶은 계속되고

아직 꿈꿀 시간은 많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그래서 남들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할 것이고, 그런 삶을 후회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꿈꿀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나로서 충분한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자유인의 생활이 얼마큼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주어진 시간이니 자괴감에 빠지거나 자기 연민하며 보내기는 싫다. 그저 있는 그대로 누리고 그렇게 살아가련다.

2년전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글중에 아내가 남겨준 댓글이다. "멋지다. 당신의 모습들은 내가 기억해 줄께. 그리고 나중에 말해줄께."


글.Sam Lee / 사진.Sam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