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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의 기억 궁전 Jun 11. 2024

일본 속담: 절벽의 꽃(高嶺の花)


일본의 속담 중에 '절벽의 꽃(高嶺の花)'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도달하기 어려운 대상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주로 사회적 지위, 외모, 능력 등에서 뛰어난 사람이나 사물을 묘사할 때 사용되며, 이로 인해 이루기 어려운 꿈이나 목표를 의미하기도 한다. 때로는 우리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와의 거리를 실감하게 하여 좌절감을 느끼게도 한다.



'절벽의 꽃(高嶺の花)'은 어디에도 피어있다. 


일본의 거리는 언제나처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이며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인 나는 마치 거대한 시계태엽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정확하고, 체계적이며, 질서정연했다. 그러나 이런 완벽함 속에서도 나는 어딘가 모르게 불편함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낯섦 때문이었으리라.


일본에서 '절벽의 꽃(高嶺の花)'이라는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일본 사회는 겉보기에는 조화롭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숨은 긴장감과 경쟁이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그들의 철저한 예의와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때로는 너무 과도하여 개인의 감정을 억누르게 만든다. 그것이 자의던, 타의던.


회사를 만들고 사업을 일으키며 만난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미소 뒤에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프로페셔널했고,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업무 외 시간에는 각자의 세계로 돌아가곤 했다. 이곳에서는 개인의 감정보다는 사회의 조화를 중시하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들이야말로 '절벽의 꽃(高嶺の花)'과 같다고 느꼈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하는 존재.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회사 근처 작은 카페에서 일하고 있던 한 친구를 알게 되었다. 그는 언제나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이했지만, 그 미소 뒤에는 깊은 피곤함이 엿보였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걸었고, 우리는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회사를 다녔지만, 항상 높은 기대와 강한 압박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지금의 작은 카페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그와의 대화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일본인들에게 있어 사회에서의 성공과 행복은 과연 무엇인가? '절벽의 꽃(高嶺の花)'처럼 높은 곳에 있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는 존재인데, 왜 항상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일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꿈은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존재.


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오면서, 나는 점점 일본의 삶에 익숙해졌다. 그 동안, 카페에서 일하던 친구는 일본 내 손에 꼽힐만한 큰 기업 상사로 취직하였다. 그에게 '절벽의 꽃(高嶺の花)'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 아니었다. 단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희망과 열망의 상징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하느냐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절벽의 꽃(高嶺の花)'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에게 도전과 성장의 기회를 주는 아름다운 존재로 자리 잡았다.


매번 새로운 목표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절벽의 꽃(高嶺の花)'을 바라보는 방법이 아닐까. '절벽의 꽃(高嶺の花)'은 어디에도 피어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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