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살아온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면 외모, 학벌, 경제력, 직업등 많은 부분에서 순간적으로 비교하게 되고 그 결과 상대적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갖는다. 그런 비교에서 오는 교만함과 자기 비하의 부질없음을 수없이 깨달으면서도 본능적으로 비교하게된다. 자존감이 낮은 나는 대부분 우월감보다는 열등감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 전에는 나 자신이나 집안에 대해 갖는 열등감이 많았고 결혼 후에는 남편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게 되었지만 황혼에 접어드니 자식들의 직업이나 결혼에 대해 비교하게 되더니 급기야 이제는 손주까지 비교하게 된다. 이렇게 이 나이에도 비교의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지만 그런 비교를 하지 않으려 쏟는 에너지의 낭비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런 비교지옥에서 벗어나기위한 내 나름의 방법이 가능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다. 다분히 근본적인 해결이 아닌 회피적인 임시방편인 줄 알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육아에 관한 얘기를 시작하려고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놨지만 요즘의 나를 설명하려면 이런 배경이 필요하다.
근래 몇 년간 경제적인 손실이 커서 젊어서 세운 노후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고 내 딸들은 하필이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결혼을 하지 못해서 그들의 경제까지 신경 쓰이는 상황이 되었다. 남편 말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고민을 다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라는 내가 그들 자신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하곤 한다.
평생을 비교쟁이로 살아온 내가 당연히 내 딸과 친구의 딸들을 비교하곤 했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비교하기에는 너무 멀어진 내 형편 때문에 더 이상 그런 비교마저 포기하고 육아 때문에 만날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그들과의 만남을 애써 피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 몇 달 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다시 비교병이 도졌고 앞날에 대한 부정적인 연상의 끝인 절망에 도달해서 그동안 애써 유지했던 거짓평정심마저 완전히 잃고 말았다. 그들 중 딸을 전문직으로 키워서 강남 노른자에 30평대 아파트를 마련해 준 여유로운 시댁으로 시집보낸 친구의 손주 얘기를 들었다. 몇 년 전 그 친구는 자기 손주가 재벌집 손주들이 다닌다는 사립초등학교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며 축하턱을 냈다. 그의 등하교를 위해 딸은 스쿨버스가 정차하는 더 강남스러운 곳으로 이사했고 맞벌이하는 딸의 육아부담은 개인 튜터를 두어 학원 등원과 학교 숙제 등을 봐주게 했단다. 학교에 다녀온 후에 학원을 몇 군데나 다니고 학교 숙제를 하고 나면 밖에 나가 놀 시간이 없을 정도란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서 재택수업을 할 때 가서 아이의 수업 내용을 들어보니 과연 그만한 수업료를 지불할 정도로 고급스러운 교육이 이뤄져서 흡족했단다. 그렇게 극상 위 몇 프로의 교육을 받은 집단의 아이들이 앞으로의 세대를 짊어질 지도자로 성장하겠구나 싶으니 부럽기 그지없었다. '거지가 부러워하는 건 결코 재벌 회장이 아니라 자기보다 조금 더 좋은 깡통을 가진 다른 거지'라고 연예인들이 몇억이나 하는 미국 사립에 아이들을 유학시킨다는 뉴스보다 나와 비슷하게 살아온 친구의 딸이 가진 경제적 여유가 질투가 날 만큼 부러웠다.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별로 없는 집안에서 성장하는 내 손주는 강남도 아닌, 사립도 아닌, 학군을 따질 수도 없는 곳에서 살면서 다닐만한 학원도 마땅치 않아서 딸이 손수 집에서 인터넷 강의로 교육시키고 있는데 그런 그의 앞날이 캄캄해 보였다. 평소에는 실속 없이 오가는 학원보다 엄마가 끼고 앉아서 계획대로 자율적으로 공부하게 하는 게 더 낫다는 지론을 펼치며 자위해 왔는데 그렇게 요란한 세상을 듣고 나니 내 지론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내 손주의 앞날이 이미 다 정해진 듯 암울하기만 했다. 2-3시간 만나고 왔을 뿐인데 그 여파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내 딸과 내 손주가 겪어오고 있는 지난 몇 년간의 시간이 되짚어졌다. 몇 년 전 마흔이 가까운 딸이 갑자기 병명조차 알 수 없는 위중한 병에 걸려서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가 간신히 회복되었지만 평생 약을 먹으며 노심초사하며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딸이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병실에서 만난 딸 또래의 의사를 붙잡고 다섯 살짜리 아들의 엄마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울며 사정했다. 그 후에도 다달이 받는 검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시험성적표를 받아 들듯 맘 졸이며 전화를 기다리곤 하는데 몇 달 전 결과가 좋지 않다는 전화를 받고는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손주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10년만이라도 더 살게 해달라고. 그런 상황에서는 살아서 자기 아들을 보살필수만 있어도 감사하고 그들에게 복이라 생각했는데 친구와의 만남의 결과 재발한 비교병은 그런 감사를 잊게 했고 애써 유지하는 척했던 평정심을 여지없이 깨뜨리고 말았다. 이 나이 되도록 이런 쳇바퀴 도는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참으로 한심스럽다.
그러다가 어제 브런치에 실린 '일찍 실패해서 더 잘 살아가요'라는 글을 읽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 젊은 부부가 대견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처럼 살아가면 되는데, 그들의 쌍둥이 아들의 앞날이 절망적일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데. 남의 일이라서 이렇게 인심 쓰듯 생각해 주는 걸까? 아니다. 자기들 앞에 닥친 상황에서 가족 사랑으로 끈끈하게 뭉쳐서 도망가지 않고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부모의 모습이 어떤 사교육보다 가치 있고 실제적인 교육이 되고 그들의 삶의 지침이 될 거라고 굳게 믿게 된다. 그러면서 왜 내게는 그런 생각이 적용되지 못할까? 한숨이 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