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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Apr 11. 2024

주간 새미일기

2024.04.01(월)~2024.04.03(수)

2024.04.01 (월)

어제 있었던 일이다. 남편은 회사에서 진행하는 중요한 전시회 준비로 주말 내내 출근을 한 상태였다. 일요일 아침이었지만, 일찍 출근을 한 남편은 나가고 없고 (여느 때처럼) 나보다 아이들이 먼저 일어나 있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평소에도 아이들보다 늦게 일어날 때가 많다.) 평소 같았으면 먼저 일어나 놀다가도 배가 고프다며 아침밥 달라고 나를 깨우는 아이들인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첫째가 깨워 일어나 보니 집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고, 식탁에는 그릇과 수저 세 세트와, 우유와 시리얼이 예쁘게 놓여있었다. 내가 일어나기 전 집을 정리해두고 아침밥 먹을 준비까지 마친 뒤에 나를 깨운 것이었다. 어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싶다. 아마도 아이는 주말 동안 (사실은 금요일 저녁에도 남편에게 자유시간을 주었기에 금요일 저녁부터) 혼자서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나를 생각해 도와주고 싶었던 것 같다. 시켜도 하기 싫을 수 있는 일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니, 해주기를 전혀 기대도 하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스스로 해주었다는 게 감동적이고 고마웠다. (너는 그저 사랑이구나) 게다가 나는 오늘, 내일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곤지암 리조트와 화담숲에 놀러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독박육아(부정적인 ‘독박’ 대신 ’ 독점육아‘라는 말을 쓸 수도 있겠다만, 난 그래도 왠지 ’ 독박육아’라고 하고 싶다.)는 주말을 포함해 4일간 지속될 예정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첫째는 나에게 이런 말도 했다. “엄마~ 주말 동안 엄마가 혼자 우리 둘 돌보느라 정말 힘들었겠다~ 곤지암 놀러 가서는 내가 엄마 안 힘들게 동생들한테 양보도 더 많이 할게~^^“ 아이에게 이런 공감과 지지를 얻는 나라니… 우리 엄마는 내가 가을이가 이렇게 행동하고 말해서 감동받았다고 하자, 네가 너무 힘든 티를 내니까 애가 그렇게 신경 쓰는 거 아니냐며 핀잔을 주었다. 맞다. 내가 알게 모르게 불평을 했을 것이다. 힘든 걸 티도 많이 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얕은 그릇은 또 내 감정을 다 담아내지 못해, 여기 저리 칠칠치 못하게 흘렸던 것이고 내 아이는 나보다 더 깊은 그릇으로 그것들을 받아냈을지도 모른다. 나도 종종 그것이 죄스럽고 미안하지만, 그래도 미안해하기보다 고마워하고 싶다. 그렇게 행동해줘서 고맙다. 나를 걱정해 주고 위로해 줘서 고맙다. 나를 공감해 주고 나를 위해 애써줘서 고맙다. 네가 내 딸이어서 고맙다. 고맙고 고맙고 고맙다.


2024.04.02 (화)

동생과 조카들, 그리고 우리 엄마와 곤지암 리조트에 놀러 왔다. 오늘은 화담숲도 다녀왔는데 동생이 엄마차에 핸드폰을 두고 내렸다. 서로 흩어지게 되면 연락이 안 되니 내 핸드폰을 동생에게 주었고 동생은 조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갔었다. 그렇게 조카가 볼일을 보는 동안 헤어져있다가 우린 다시 만났고, 나는 동생에게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그러다 문득 핸드폰을 보는데, 나는 깜짝 놀랐고 웃음이 터졌다. 동생이 눈을 사팔뜨기를 하고 엄청 가까이서 찍은 사진을 내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해놓은 것이었다. 제법 놀랐고, 제법 웃었다. 내 동생은 그런 아이다. 삶에 웃음을 주는 사람, 재미를 주는 사람, 위트가 있는 사람. 볼 때마다 놀라는데, 볼 때마다 웃게 돼서 나는 한동안 이 배경화면을 다른 것으로 바꾸지 않을 것 같다. 영화 ‘마션’을 보면 느낄 수 있듯이 우리 삶에서 재미, 위트, 농담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릴 땐 잘 몰랐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런 동생이 새삼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문득 동생이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 낼 때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얼마 전에도 전선정리를 하면서 멀티콘센트에 각각의 콘센트 이름을 붙이려고 했다. 나는 ’ 토스터기‘, ’ 커피포트‘, ’ 조명‘, ’ 그라인더‘, ’ 충전기‘ 이런 식으로 적으려고 했는데, 동생이 옆에 앉아 ’ 빵을 굽자’, ‘물 끓이자’, ‘불을 켜자 ‘, ’ 커피 갈자 ‘, ’ 충전하자 ‘ 이렇게 적어보는 게 어떠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름표를 붙이고 나니 훨씬 위트 있고, 말이 직관적이어서 누가 봐도 이해하기 편했다. 어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남편도 그렇게 멀티콘센트를 정리해 놓은 것을 무척 잘했다며 볼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네가 나의 삶에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핸드폰 화면을 볼 때마다 웃는다. 고맙다 ㅋㅋㅋㅋㅋㅋㅋㅋ


2024.04.03 (수)

가을이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집에서도 자주 그리고, 유치원에서도 늘 그림을 몇 개씩은 꼭 그려온다. (혹은 무언가 작품을 만들어온다.) 아이가 제일 많이 그린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나다. ’ 엄마‘. 정확히 세어본 것은 아니어도 아마 가장 많이 그린 것이 ’ 엄마‘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를 그리고 나면 언제나 그 그림을 나에게 선물이라며 준다. 처음에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이상한 모양의 도형처럼 그리다가, 눈코입이 달린 얼굴이 되었다가, 얼굴에 몸통이 생기고, 나중엔 팔다리도 달리게 되었다. 이제는 머리에 장식도 달아주고, 옷도 멋지게 드레스를 입혀준다. 요술봉을 들고 있을 때도 있고, 구두에 액세서리를 하고 있을 때도 있다. 즉, 공주처럼 엄마를 그려준다. 현실에서의 엄마는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 그냥 공주를 그리고 싶어서 그렸다가 그걸 엄마라고 해주는 건지는 몰라도 아이는 요즘 나를 늘 공주처럼 그려준다. 그렇게 어제도 오늘도 아이는 예쁜 엄마를 그려온다. 나를 이렇게나 많이 그린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나도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지만) 나도 내 모습을 그렇게 많이 그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이의 ‘뮤즈’인 것이다. 누군가의 뮤즈가 된다는 것. 그리고 나를 아름답게 표현해 준다는 것이 새삼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한다. 나는 늘 이렇게 아이의 사랑을 받는다. 사랑받는 나는 언제나 공주고 왕비다. 네 덕에 나는 늘 예쁜 공주가 된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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