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7(월)~2024.06.02(일)
2024.05.27 (월)
아침부터 늦잠을 자서, 등원 준비하는데 부랴부랴 바빴다. 가을이 먼저 등원시키고 여름이를 등원시키려는데 집에서 자동차 장난감을 안 가져왔다며 다시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우기는 여름이. 매일 자동차 장난감을 한두 개씩 꼭 가지고 등원을 하는데, 오늘은 안 챙겨 나왔다는 거다. 그럼 집에서 나올 때 챙겨 나왔어야지! 오늘은 그냥 등원하래도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집에 다시 들어갔다. 자동차 하나는 골라 집어 들었는데, 또 다른 하나를 찾는 너. 어떤 자동차인고 하니, 파란색 테슬라 모델 Y였다. 꼭 그 자동차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어린이날 선물로 준 자동차다. 한국에서는 안 파는 것 같다고 해외배송으로까지 주문해서 한참만에 (어린이날도 한참 지나서) 어렵게 받은 자동차. 그 자동차를 갖고 가고 싶다는데, 하필 그 차가 보이지 않는다. 여름이는 미니카를 좋아해서 주로 미니카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작아서 잘 없어지기도 한다는 거였다. 사실 비슷하게 생긴 다른 파란색 차도 여러 대 있어서 대신 그것들을 가져가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기가 막히게 자동차들을 구분하는 여름이에게 나의 그런 ‘꼼수’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얼추 차가 있을만한데를 다 뒤져봤지만 없다. 이미 시간은 너무 지체되었고, 등원하고 나면 엄마가 찾아둘 테니 일단 어린이집을 가자고 했다. 그때부터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울어도 어쩌겠는가 지금 당장 찾을 수가 없는데. 그렇게 (다시) 시작된 등원길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아이 어린이집 가방에 낮잠이불을 이고 한 손에는 킥보드를 들고 앞서 걸었고, 여름이는 그런 나를 울며불며 뒤쫓아 걸었다. 그렇게 오열을 하면서도 따라오긴 오는 게 신기할 지경으로 아이는 목이 터져라 울어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고개를 돌려 쳐다볼만했고, 누군가는 창밖을 내다볼 만도 했다. 어린이집이 우리 집 바로 뒷 동에 있기 망정이지 후…. 어린이집 문을 열면서 선생님도 놀란 표정이시다. 좋아하는 미니카가 없어져 우는 거라고 짧게 설명을 드린 뒤 나는 죄송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그런 뒤 나는 홈플러스로 달려갔다. 미니카 진열대를 꼼꼼히 뒤져보았지만 테슬라는 없었다. 고민고민을 하다가 (자동차 몇 개를 들었다 내려놓았는지 모른다.) Jeep사의 파란색 자동차를 선택했다. 요즘 부쩍 파란 차를 좋아하는 아이이기에 좋아해 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고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이마트에도 달려갔다. 그리고 또 미니카 진열대 앞에 한참 동안 서서 자동차 이름을 신중하게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놀랍게도 테슬라가 있었다! 비록 파란색도 아니고 (검은색이었다.) 모델 Y도 아니었지만 (모델 3였다.) 그래도 혹시 같은 브랜드 차니까 좋아할까 싶어 나는 그 차도 한 대 또 구매했다. 그렇게 두 대의 새 장난감 자동차를 사들고 아이를 하원시키러 가는 길… 나는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은 마음에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동동거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동동거렸다는 사실이 약간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좀 현타가 왔다고 했더니, 엄마가 그랬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라고. 그 말에 수많은 순간들이 전기 자극처럼 찌릿하고 지나갔다. 내가 어떤 일에 막 짜증을 내면, 그게 엄마 잘못도 아닌데 엄마가 동동거리던 순간들. (사실 지금도 우리 엄마는 그런다.) 그런 셀 수 없이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내가 오늘 동동거린 건 동동거린 것도 아니구나.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앞으로 셀 수 없이 많이 오겠구나. (사춘기에 집중적으로) 아 우리 엄마도 어안이 벙벙하고 어이가 없었겠구나. 엄마란 이렇게 ‘지는’ 존재구나. 맨날 엄마를 이겨먹던 내가, 이젠 엄마가 돼서 질 차례가 된 거구나. 오늘도 ‘엄마의 마음‘을 하나 더 배운다. 나도 엄마지만, 엄마란 실로 놀라운 존재다.
2024.05.28 (화)
어제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점심식사를 했다. 서로 가까이 사는 우리는 (차로 5~10분 거리) 점심을 같이 먹을 때가 잦다. 어제는 동생의 지인이 맛있다고 했던 돈가스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내 동생이 엄마에게 “엄마는 딸 둘 있어서 좋겠다. “라고 하자 엄마가 맞다면서, 그래서 사실 네가 좀 안됬다는 생각을 한다고 대답했다. (내 동생은 아들이 둘이다.) 그러다 갑자기 엄마가 이런 말을 하시는 거였다. “엄마가 더 나이 들어도 엄마랑 같이 밥 먹어줘~” 그 말에 내 동생은 “엄마가 사줄 거야?”하고 농담처럼 받아쳤지만, 이내 ”당연히 엄마랑 같이 먹지! “라며 할 필요로 없는 부탁을 다한다는 식으로 일축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가을이한테 (동생에게는 조카다.) 나이 들면 같이 밥 먹어달라고 해야겠다는 동생. (가을이가 그 나이대에서는 유일한 딸이다.) 그런 내 동생의 말에 엄마가 한 마디 또 덧붙였다. “가을이가 할머니랑은 안 먹어주겠지?” 그러자 내 동생은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받아쳤다. “얼마 전에 우리가 할머니랑 같이 식사했잖아! 딸들은 할머니랑 식사해! 아들들은 몰라도!” 그렇게 우리는 ’ 클수록 딸이 낫다.‘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리의 결론과 무관하게, 사실 우리 옆테이블에는 두 팀이나 모자지간, 부자지간이 다정하게 돈가스를 먹으러 왔었다.) 그런데 나는 딸이든 아들이든 그런 문제를 떠나서 엄마의 그 질문이 자꾸만 맴돌았다. 엄마가 더 나이 들어도 엄마랑 같이 밥을 먹어달라던 부탁인 듯 부탁 아닌 부탁이 이상하게 가슴에 콕 박혀 슬프게 떠올랐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전혀 슬픈지 않은, 지극히 가볍고 큰 의미 없이 한 말 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나에겐 그 수많은 대화 속에서 그 문장만 몇 폰트 크고 더 두껍게 새겨졌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왜 내가 그 순간 엄마에게 대답을 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것을 묻는 엄마가 낯설고 무서웠다. 그래, 낯설고 무서웠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 말의 이면에는 엄마가 나이가 더 들면 (그러니까 더 늙으면) 우리가 엄마랑 밥을 안 먹어줄지도 모른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나는 그 전제가 거북스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말이 가슴에 턱 걸려서 내려가지 못했던 것이다. 며칠간 (사실 이 일기를 쓰는 지금은 금요일이다.) 그 말을 소화하지 못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만 35살이나 됐는데도) 내가 엄마에게 뭘 준다는 것이 낯설다. 밥을 먹어 ’ 준다 ‘는 것도 말이다. 나는 아직 내가 엄마에게 그런 걸 주는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먹어주긴 뭘 먹어줘 그냥 밥을 먹는 거지. 우리는 같이 밥을 먹는 사이지 서로 먹어주는 사이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밥을 먹어주는 그런 사소하고 쉬운 일조차 엄마에게 약속해주지 못했다. 이젠 나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환갑이 된 내 엄마의 말 한마디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끙끙댄다. ‘엄마의 말‘은 때론 너무 무겁다.
2024.05.29 (수)
여름이는 자동차를 좋아해서 미니카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집에서도 거의 미니카 아니면 기찻길을 만들어 기차를 가지고 논다. 미니카들은 작아서 얼핏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여름이는 기가 막히게 그것들을 ‘구분’한다. 나는 사실 그 정도로도 좀 놀라웠는데 어느 날은 대뜸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거였다. “왜 이 차는 운전하는 게 (운전대가) 여기 있어?” ‘토미카’라고 대표적인 미니카 브랜드가 있는데, 그 토미카가 일본 브랜드라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차들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전까지 그 수많은 미니카들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면서도, 단 한 번도 운전석이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관심 있게 들여다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아이가 미니카 운전석의 위치를 눈여겨보았다는 것에 놀라고, 원래 (우리나라에서) 자동차의 운전석이 어느 쪽이었는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그저 자동차를 좋아하는 ‘애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쩔 땐 나보다 더 예리한 시각을 갖고 있는 네가 엄마는 종종 신기하다.
2024.05.30 (목)
오늘은 가을이 유치원에서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조금 이르게 도착해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마 후, 다른 가정들도 와서 앉기 시작하셨는데 우리 옆 자리에 나와 같이 유치원 운영위원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 가족이 앉게 되었다. 나는 심심해하는 여름이를 데리고 체육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남편이 의자에 앉아 그 옆자리 어머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얼마 후 내가 자리에 돌아오니 남편이 그 분과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을 이야기했다. “부천에 오래 사셨데요!” 그 말에 호 흥하며 저도 부천에 살다가 결혼하면서 이사 갔다 다시 돌아온 거라고 얘기하니, 그 어머님이 고등학교 어디 나오셨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내가 나온 고등학교를 이야기하자 본인도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심지어 나이도 한 살 차이라 같은 시기에 (그러니까 2년을) 같은 고등학교에서 생활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기하다면서 이야기하고는 지금 친정 부모님도 두 분 다 같은 마을에 살고 계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분이랑 작년부터 같이 유치원 운영위원을 하고 있었는데도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남편이 그분과 잠깐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남편은 그런 재능이 있다. 모르는 사람과도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 사실 성향상으로는 내가 외향형이고 남편이 내향형인데, 나는 누군가에게 (특히 친분이 없는 분에게) 먼저 말을 거는 타입이 아닌데 반해 남편은 친분이 없는 사람들과도 대화를 잘 트는 편이다. 어제도 둘째 어린이집 친구의 할머니를 놀이터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남편은 잠깐의 대화로 할머니가 이 아파트 사시기 전에 어디 사셨는지 까지 알아내는 능력을 선보였다. 남편의 그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타인을 편안하게 하면서 대화를 이끌어 내는 그 능력. 요즘은 그런 둥글둥글한 남편이 있어 참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2024.05.31 (금)
오늘은 가을이 유치원에 책을 읽어주러 가는 날이었다. 원래는 늘 가을이네반 아이들에게만 읽어줬었는데, 오늘은 어쩌다 보니 5~7세 반 아이들 모두 모여 책을 읽어주게 되었다. 나도 이렇게 대규모(?)는 처음이라 퍽 긴장이 되었다. 시작인사는 어떻게 할지, 아이스브레이킹은 어떻게 할지, 책 사이사이 멘트는 어떻게 할지 오만 고민을 다 해갔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다 무용한 일이었다. 내가 인사말로 어제 운동회 얘기를 꺼내자마자 아이들은 어제의 엄마아빠 이야기부터 운동회에서 넘어진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그 이야기들은 ’ 누가 누가 많이 다쳤나(그 영광의 상처들을 일일이 보여주면서)‘와 같은 경쟁사태로 까지 번져가기에 이르렀다. 결국 내 멘트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들의 멘트를 받아내는 게 ‘진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어주던 중간에는 한 아이가 옆친구 머리를 잡아당겨 그 아이가 우는 사태가 발생했고, 아이들은 책에만 리액션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너무 즐거워해주었고,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들과 열화와 같은 성원에 나도 무척 즐거웠다. 오늘은 “From head to toe, 토선생 거 선생, 절대 누르면 안 돼” 3권을 읽어줬는데, 아이들은 ‘절대 누르면 안 돼’를 가장 좋아했다. 그냥 종이에 ‘그려진’ 버튼을 누르는 일인데도 아이들은 앞다투어 열심이었다. 고작 책 3권 읽어주고 나는 진이 다 빠졌지만, 내가 책을 읽어줄 때 흥미로워하며 집중하던 아이들의 표정은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집에 와서 들은 얘기지만, 가을이는 엄마가 자기를 안 쳐다봐줬다며 좀 서운해해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수많은 표정들 중에서 가을이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가을이 엄마기 때문에, 가을이 엄마라는 걸 너무 티 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무의식 중에도 가을이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는 그걸 기가 막히게 알아챈 것이다. 다음번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겠다. 아이들에게 (내 아이건 아니건) 공평하게 눈을 마주칠 수 있도록. 그래서 내가 책을 읽어주는 동안의 가을이의 표정도 내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2024.06.02 (일)
오늘은 교회에서 작은 운동회를 한 날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교회에는 여름이보다 어린 동생들도 있는데, 오늘따라 여름이가 한 동생을 무척 예뻐라 했다. 예쁘다며 동생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옆에서 동생을 챙겨준다고 분주하다. 그런 여름이의 모습이 귀엽다며 다들 입을 모았다. 그러다 운동회가 끝나고 같이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게 되었는데 여름이가 그 동생 옆에 앉고 싶다고 야단이었다. 그래서 자리를 바꿔 동생 맞은편에 앉혀 주었더니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까꿍놀이를 연신 해준다.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고 아끼는 자동차 장난감도 (아까는 동갑친구랑 그 자동차 같이 가지고 놀기 싫다고 울고불고했으면서) 선뜻 내어주는가 하면, 집에 있는 미끄럼틀 처분하려고 한다니까 안된다고 싫다 그러더니 그 동생네 주자니까 그럼 주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자기가 오빠라며 동생을 지켜줄 거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여름이가 낯설다. ㅋㅋㅋㅋ 사실 우리 집에서는 막내라, 맨날 제멋대로 굴고 징징거리는 모습만 보다가 저 보다 어린 동생 앞에서 오빠노릇을 톡톡히 하는 여름이를 보고 있자니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그 모습을 본 내 동생은 가을이가 여름이에게 하는 대로 여름이가 동생에게 해주더라고 했다. 역시 사람은 사랑받은 대로 사랑을 줄 수 있는가 보다. 누나에게 매번 양보받고, 징징거려도 귀엽다며 예쁨 받더니 (그래서 철이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뭐 철들 나이는 아니지만 ㅋㅋㅋㅋ) 동생에게는 자기도 양보를 하고, 예뻐라 해주는 것을 보니 사랑받은 태가 난다 싶다. ( 그 사랑은 내가 아니라 누나가 9할인 듯 하지만 ㅋㅋㅋㅋ) 다행이다. 막내라 늘 받기만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까 봐, 제멋대로여도 괜찮다고 생각할까 봐 종종 걱정이었는데. 받은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너라서 다행이다. 역시 나만 잘하면 된다. 나도 받은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지. (만) 2살 짜리도 나누는데, 나는 더더욱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