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나물은 망했지만 내 하루는 망하지 않았어!!!

감사일기가 살린 하루.

by 장새미

나는 가정주부인데, 밥 하는 게 너무 싫다. 그런데 밥을 안 하고는 살 수 없으니 이래저래 꼼수 많이 쓰는 편이다. 외식을 하거나 배달음식도 잘 시켜 먹고, 반조리 식품도 잘 사다 먹는다. 그리고 또 하나, 어떤 날은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잔뜩 사서 한상 가득 차릴 때도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반찬 가게에서 사 온 고사리나물을 첫째가 너무 잘 먹는 것이었다. 남편이야 워낙 나물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라 나물 반찬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첫째가 고사리나물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번에 나도 처음 알게 되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것에 마음속 왠지 모를 미안함이 잔잔하게 깔리는 것을 보면, 그동안 다양한 음식들을 골고루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엄마로서의 죄책감이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같은 반찬가게에서 그 고사리나물을 또 사다가 식탁 위에 내놓았다. 한 줌의 고사리나물은 한 끼 식사에 동이 나고 말았다.


매번 한 줌씩 사 먹는 것도 일이겠다 싶은 마음 반, 저렇게 좋아하는데 한 번 도전해 볼까 하는 의욕이 반 더해져서 동네 마트에 들렀다가 고사리를 냉큼 집어와 버렸다. 하지만 요리에는 전혀 전혀 취미가 없는 나는 고사리를 사다 놓고도 반찬 하기가 싫어 미루고 있다고 했더니, 집 밥을 잘 차려먹는 동생이 어렵지 않다며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래!!! 첫째도 남편도 그렇게 좋아하는데 한 번 해보자!! 용기를 얻어, 아이패드로 재미나게 보던 영화까지 끄고 고사리를 꺼내 들었다. 나는 원래 아이들이 등원을 하면 최대한 집안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 시간을 갖고, 쉼을 가져야 하원 후에도 충전된 에너지로 돌봄 노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집안일이라는 건 해도 해도 티가 안나는 반면, 안 하면 미래의 나에게 배가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공간에 있다 보면 주부란 집안일을 하게 되어있기 마련이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 등원 후에 둘째 한복을 당근 해오고, 장을 봐 온 다음,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것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돌리고, 옷장을 정리하고, 그러다 세탁실 선반에 있는 물건들을 죄다 꺼내어 싹 정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집안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나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남은 시간이라도 쉬어볼까 하고 소파에 앉았다가 문득 저녁에 뭐 먹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결국 고사리를 꺼내듬으로 인해 나는 남은 시간마저 쉬기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쉼을 포기하고 도전하게 된 고사리나물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대친 고사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걸까. 대친 고사리라고 했어도 상태를 확인해 보고 한 번 더 대쳤어야 했나.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확인하지 않은 나의 잘못일까. 아무튼 레시피대로 따라 만든 고사리나물은 질기고 심지어 시큼한 맛이 나기에 이르렀다. 먹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나의 첫 고사리나물은 대차게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결국 나는 고사리나물 한 솥을 그대로 내다 버리게 되었다. 뭐 비싼 재료도 아니고, 요리를 하다 보면 망할 수도 있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기운이 빠질 수가 없었다. 아이가 저녁에 맛있게 먹을 모습을 기대하며, 그래서 내 소중한 쉬는 시간까지 바쳐가며 만든 나물이었는데… 실패라니… 좀 싱겁고 좀 짜서 맛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예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니…아… 조금 있으면 하원하러 갈 시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참담할 수가 없었다…


영 기운이 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차리기 싫은 저녁밥이 더 하기가 싫어졌다. 기껏 잘 한 집안 청소와 정리까지 괜히 했다 싶었다. 그냥 가만히 누워 영화나 보며 쉴걸. 왜 하루종일 종종 거렸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실패로 돌아간 고사리나물을 만회하기 위해서 불고기도 하고, 김치찌개도 끓였다. 아이들도 남편도 맛나게 먹었지만 나는 내내 시무룩하게 앉아 밥을 먹었다. 그러다 문득 단체 카톡창에서 아는 언니가 “나 우울해서 지금 감사일기를 쓰려고”라고 했다. 내가 올해부터 감사일기를 같이 쓰자고 제안했던 단체 카톡창에 있는 언니였다. 원래 감사일기를 함께 공유하는 다른 단체 카톡창에서도 연달아 감사일기들이 올라왔다. 그중 한 동생은 얼마 전 송혜교가 유퀴즈에 나와 5년 동안 저녁마다 그날 하루 감사 했던 일들을 10가지씩 적었다고 한 말을 들었다며 자기도 10개를 써보려다 7개를 찾았다며 감사일기를 올렸다. 그 단체 카톡창들을 보면서 나도 울적하지만, 감사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감사일기 쓰는 걸 이틀이나 빼먹고 있었더라.) 그리고 이번엔 나도 10개를 한 번 써봐야겠다며 연필을 들었다. (평소에는 3가지 정도를 적고는 했다.)


그렇게 노트를 펼쳐 들고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감사한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아주 쉽게 10가지를 다 쓸 수 있었다.(사실 더 쓰려면 훨씬 더 많이 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늘 하루, 평범했던 다른 하루들보다 유독 울적하고 기운 빠지는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감사를 찾는 방향으로) 돌려보니 감사할게 이렇게나 많은 하루였던 것이다. 고사리나물… 그 실패한 한 가지에 온 마음을 빼앗겨 나는 오늘 하루를 다 망칠 뻔했다. 실제로는 전혀 망한 하루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감사할 것이 이렇게 많았으니 오히려 무척이나 괜찮은 하루였다고 할 수 있을 테다. 올해,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변에 이렇게 함께 감사일기를 쓰는 이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그 또한 모두 감사함이다.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다. 내가 생각만 바꾸면, 망한 하루도 무척 괜찮은 하루가 될 수 있다. 고사리나물을 망친 것도 나지만, 내 하루를 살려낸 것도 나다. 고사리나물은 망했지만, 나의 하루는 망하지 않았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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