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입원했고, 나는 감사일기를 썼다.

슬프지만 감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by 장새미


유난히 길었던 설 연휴. 아이 둘이 아팠다. 처음엔 둘 다 그냥 장염인 줄 알았는데, 결국 둘째는 B형 독감 판정까지 받고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과정을 일일이 쓰자면 아주 또 파란만장하지만 생략하겠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고,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하루하루가 흘렀다. 그런데 그런 하루 끝에 나는 감사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올초부터 습관을 들여보려고 쓰기 시작한 감사일기. 하루를 마무리하며 그날 감사했던 것 10가지를 쓰는 일이다. 부모가 자신이 가장 무기력하다고 느껴지고 좌절감이 들 때는 아이가 아플 때가 아닐까. 그래서일까. 감사일기, 그거라도 써야 내가 내 멘탈을 붙잡고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왠지 이런 심리도 작용했던 것 같다. 내가 이런 순간들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내 아이가 더 이상 괴로움을 당하지 않도록 누군가가 도와줄 것만 같은 마음.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바랄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그것이 슬프고도 괴로워 쓰는 감사일기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사 10가지를 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들이 둘 다 아프고, 속상한 순간들이 계속되고, 아니길 바라던 것들이 현실이 되고, 아이들이 힘들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봐야만 하는 나 자신이 답답하고 괴로운 하루였다. 그런 하루에도 내가 감사의 제목을 10개나 발견할 수 있을까 싶었다. 평소에도 감사한 일 10개를 쓰는 것은 제법 하루를 신중하게 곱씹고, 꼼꼼하게 돌아봐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쳐 놓고 연필을 들었는데, 감사의 제목들이 후루룩 쏟아진다. 억지로 짜낸 것도 사소한 것에서 감사를 끄집어낸 것도 아니었다. 힘든 하루였지만 돌이켜보면 감사한 것들이 많았다. 의료파업으로 진료받기 어려운 시기에다 설 연휴였는데도, 1차 병원에서 3차 병원까지 진료받고 검사를 받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것에 감사했다. 아픈 아이들이 그 과정을 잘 견뎌준 것들도, 아팠던 아이들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도 감사였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던 때에는 감사의 제목이 아니었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일상을 잃고 나니, 그 결핍 안에서 감사가 피어났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이들이 컨디션을 회복했던 날. 나는 감사일기 쓰는 것을 깜빡했다. 그리고 완전히 아프지 않았던 때처럼 일상으로 돌아왔던 그다음 날에 나는 감사의 제목을 7개밖에 적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7개도 책상에 앉아 얼마나 머리를 싸매고 오랫동안 고민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런 나의 마음가짐의 변화에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간의 마음이 어쩜 이리도 쉽게 변하는지.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고, 아이들이 아플 때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간절하고 겸손했던 마음이 아이들이 다 낫고 나니 안일하고 무뎌진 것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결핍이 있을 때 오히려 감사할 것들이 더 많아지나 보다. 다 가지면 오히려 감사하지 않게 되기 쉽다. 실제로 당연하게 주어져 있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그것들을 잃게 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그러니 어쩌면 그마저도 감사다.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면 우리 삶에는 감사할 것투성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감사할 일들이, 그러니까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일이 흘러가는 것들이 실제로 많이 일어나는 것보다 내가 그 일상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지금 아이가 안아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것도, 아이들이 투닥거리고 싸우는 것도 실은 며칠 전의 내가 간절히 바라던 일상의 모습일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잃었을 때를 생각하면 말이다. 그러니 그마저도 감사가 될 수 있다. 아이들과 험난하고 길었던 설 연휴를 보내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감사의 제목이 후루룩 써진다 해도 다시 그 시간들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의 일상 안에서도 아이들과의 하루하루가 감사로 채워질 수 있도록 이번 설연휴의 내가 가졌던 시선들을 종종 떠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선 늘 슬픔이 함께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안에서 감사도 늘 함께한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고사리나물은 망했지만 내 하루는 망하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