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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un 12.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6.05(월)~2023.06.11(일)

개미 구경하는 가을, 여름

2023.06.05 (월)

공원에서 남편이랑 산책을 하다가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더니 문득 남편이 물었다. 아이들이 없는 세상은 어떨까? 그러고는 아이들이 없으면 애니메이션 '트롤'에 나오는 '버겐'들처럼 살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버겐'들은 행복을 모르고 우울하게 사는 종족들이다. 아이들이 없는 세상이란 행복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 동의가 되었다. 우리 집에도 그런 행복이 둘이나 있다. 그런데 문득 김희애 배우가 유퀴즈에 나와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기 싫고 힘든 걸 해야 행복이 와." 아이들은 우리에게 분명 행복이지만, 우리는 그 행복을 얻기 위해 하기 싫고 힘든 걸 해야만 한다. 앞선 남편과의 대화가 아이 둘을 원에 보내놓고 우리 둘만 있을 때 나눈 대화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다. 아이들은 행복이지만, 힘들다.ㅋㅋㅋㅋㅋㅋ


2023.06.06 (화)

아이 둘을 데리고 에버랜드에 갔었다. 개장시간부터 들어와 하루종일 있었더니 힘들었는데 문득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끼리 우르르 지나가는 걸 봤다. 애들이 몇 살쯤 되면 부모 없이 자기들끼리 놀이동산에 올까? 하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초등학생 때? 하며 "아빠 카드 줘. 아빠 차 태워줘." 할꺼란다. 그렇게 생각하니 애들이 이렇게 우리와 같이 다니며 놀 날이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이랑 더 열심히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날 우리는 폐장시간에 놀이동산을 나와 집으로 향했고, 나는 그 대가로 구내염과 입술포진을 득템 했다. 애들이랑 놀려면 체력부터 길러야겠다.


2023.06.07 (수)

고깃집에 갔는데, 열무김치랑 그 국물에 말아먹으라고 소면을 주셨다. 우리 애들이 그 소면을 두 그릇이나 말아먹자, 매울 텐데 어쩜 이렇게 잘 먹냐며 연신 놀라워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첫째 만 4세, 둘째 만 1세) 내가 잘한 일도 아닌데 괜히 뿌듯하고 그랬다. 이게 뭐라고 ㅋㅋㅋㅋ 웃기다.


2023.06.08 (목)

여름이를 하원시켜 집에 오는 길에, 여름이가 갑자기 뭔가 날아가는 곤충을 보고는 연신 '나비야'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나비가 아니라 파리였다. 아이의 눈으로 보면 파리도 나비가 될 수 있다. 아이 덕분에 나도 나비를 보았다. 아이의 시선이 가끔 무척 부럽다.


2023.06.09 (금)

유치원에서 배운 것인지, 밖에서 누가 모르는 사람이 몸을 보여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해야 한다고 가을이가 말했다. 맞는 말이라며 절대 보여주면 안 된다고 재차 강조를 했다. 갑자기 어른이 되면 밖에 혼자 다녀야 하냐고 묻는 가을이. 어른이 되면 혼자 다녀도 된다고 했더니, 어른이 돼도 엄마랑 같이 다니고 싶단다. 좀 전에 말한 것처럼 나쁜 사람을 만나게 될까 봐 무서운가 보다. 어른이 돼서도 엄마랑 같이 다녀도 된다고 했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어른이 되면 혼자 살아야 하냐고 묻는 가을이. 문득 다시 무서워졌나 보다. 어른이 돼도 엄마랑 같이 살아도 된다고 했다. 엄마가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배우자나 친구)랑 같이 살면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덧붙였다. 엄마는 언제나 가을이 곁에 있을 거라고 말이다. 거짓말이었지만 진심이었다.


2023.06.10 (토)

이번주 내내 늦게 자던 여름이. 재우는 게 일이었다. 친한 동생네 놀러 갔다가 밤산책을 나갔는데, 비가 막 쏟아졌다. 비를 피해 서서, 비가 오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유아차에 있던 여름이가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가을이도 아기 때 유튜브에서 빗소리를 자주 들려주며 재웠던 게 기억이 났다. 나도 이 빗소리가 뭐라고 참 좋았다. 빗소리와 연못가의 개구리울음소리가 여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여름이가 여름의 소리를 들으며 잔다. 한낯의 땡볕에도 여름을 생각지 못했었는데, 한밤의 빗소리에서 개구리의 울음소리에서 여름을 알아차렸다. 이제 진짜 여름이구나. 다음 주 가을이 유치원에 가서는 "개구리의 여름노래" "여름이 온다" 내가 좋아하는 여름 그림책들을 아이들에게 읽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023.06.11 (일)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영역 밖의 일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 보니,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도'를 하게 될 때가 있다. 근데 요즘 내가 기도를 참 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오늘 두 번이나 눈이 간지럽다며 괴로워하던 첫째. 알레르기인가 싶은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서 원인도 모르겠고, 안약도 넣어주고 연도도 발라주지만 이게 진짜 해결책인가 싶다. 증상이 계속되면 이렇게 저렇게 검진을 받아봐야겠지만, 우선은 기도를 한다. 어쩌면 엄마는 아이의 사소한 간지럼증 하나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에 그리 있을까 싶다. (클수록 더하겠지.) 그저 기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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