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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un 19.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6.12(월)~2023.06.18(일)

2023.06.12 (월)

가을이가 요즘 나한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보라는 말 아닐까 싶다. 

“엄마 나 좀 봐봐” “엄마 이것 좀 봐봐” “엄마 여름이 좀 봐 “ 

아이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멋지거나 재미난 활동을 할 때 보라고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닐 텐데 이상하게 내가 집중하기 어려울 때 보라고 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아이가 봐달라고 하는 순간에 나는 집안일을 하는 중이거나, 둘째를 케어하고 있거나,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는 등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아이는 재차 보라고 요구하고, 나는 반복되는 요구에 보지는 않으면서 일단 ”응~“하고 대답하기도 한다. 그럼 아이는 ”엄마! 봐야지~! “하며 내가 진짜 보고 있는지 끝까지 확인을 하고서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을 보여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다가 첫째(가을)랑 나는 내렸는데, 둘째가 안 내리고 있다가 문이 닫혀 둘째(여름) 혼자 엘리베이터에 갇힌 적이 있었다. (위층에서 누가 눌러놓은 상태여서 혼자 몇 개 층을 올라갔다가 이웃분과 함께 내려왔다.) 그 사이 나도 무척 당황했었지만, 첫째에게는 그 일이 무척 충격이었었나 보다. (여름이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공포심이었을까.) 복도만 나서면 여름이가 혼자 엘리베이터에 탈까 봐 전전긍긍이다. 그래서 계속 나보고 여름이를 보라고 한다. 내 시선이 여름이를 향하고 있지 않으면, 재촉하는 것을 넘어서 화도 내고 나중엔 거의 울먹인다. 꼭 엘리베이터가 아니더라도 길 가다가 도 여름이가 다른 방향으로 가거나 멀리 가는 것 같으면 여름이를 보라고 나를 다그친다. 

그것 좀 보면 되는데, 그냥 보라는 건데 그게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인가 싶지만 그게 참 어렵다. 잘 안된다. 잠깐인데, 잠깐만 아이를 봐주면 되는데, 뭐 그리 할게 많은지 그 잠깐이 어렵다. 그런데 핸드폰은 오래도 잘 들여다본다. 인스타 릴스 한 번 잘못 보기 시작하면 한 시간도 훌쩍이다. 그래, 맞다. 나랑 상관없는 사람들 춤추고 얘기하는 거는 잘도 들여다보면서 내 아이가 춤추고 얘기하는 거는 잘 못 봐줬다 싶다. 반성하게 된다. 나한테 진짜 중요하고 귀한 아이들을 더 열심히 집중해서 봐줘야지. 봐야지. 그래야지. 내 아이들의 시간은 지나가면 다시 찾지 못하는 것인데. 봐야지, 내 눈에 담아야지. 그래야지.


2023.06.13 (화)

너무 피곤한 하루였다. 밤 9시 아이들을 재우기 전, 머리도 아프고 너무 피곤하다 했더니, 가을이가 메시지를 해줄 테니 침대에 누워보란다. 잉? 아~ 마사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을이의 말실수에 우리 둘은 얼굴을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고사리 손으로 해준 마사지도 고마웠지만, 네 덕에 터진 웃음은 확실한 피로회복제였다.

엄마 다리 주물러주는 가을

 2023.06.14 (수)

작년 9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첫째 유치원에 가서 책을 읽어주고 있다. 매달 가다 보니 계속 단조롭게 책만 읽어주는 것은 재미가 없는 것 같아, 내 나름대로 한두 가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고 있다. 오늘은 여름을 주제로 책을 준비했는데 비발디 『사계』 중 「여름」을 들으면서 보는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글이 거의 없고, 9분 45초에 달하는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보는 책이라 아이들이 좀 지루해했다. 심지어 한 아이는 점점 눈이 감기며 졸기에 이르렀다. 오늘 나의 도전은 실패였지만, 졸던 아이의 모습은 너무 귀여웠다. 사진을 못 찍은 게 아쉽다. ㅋ 아줌마가 미안해^^;   


2023.06.15 (목)

제주에 어떤 책방에서 아날로그 편지를 보내주는 프로젝트를 하신다는 말을 듣고 냉큼 신청했다. 

일상에 지쳐 잠깐 쉴까 하고 게으름을 피울 때면 언제나 번쩍거리는 핸드폰 화면을 몇 시간이고 들여다보는 나였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스스로 빛을 내는 그 기계는 나에게 쉼도 위로도 뭣도 거의 잘 준 적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에게 진짜 쉼과 위로와 무언가(감동)를 주는 것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해 반드시 다른 빛을 필요로 하는 종이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 종이가 주는 질감과 소리와 냄새와 암튼 그 모든 것들에 안정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 종이에 누군가가 이야기를 담아 보내준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육아라는 일은 생각보다 짬나는 시간이 많고, 생각보다 짬나는 시간이 없는 오묘한 일이다. 애들 보는 틈틈이 수많은 ‘릴스’를 보았는데, 어제인지 그제인지 도착한 편지를 내내 꺼내 읽지 못했다.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들었다가 선풍기바람에 오한이 나서 깼다. 양치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닦다 정신이 조금 들었고, 그제야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발견했다. 

아이들도 남편도 모두 잠든 이 시간, 참 얼마나 혼자 편지 읽기 좋은 시간인지. 사실, 종이로 된 편지를 받는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을 것 같아 신청한 거였는데 웬걸 이 편지에 담긴 글들이 마음을 콕하고 찔렀다가 와락 끌어안기도 하고 대뜸 한 대 퍽 하고 때리기도 하는 것 아닌가. 새벽감성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만, 나는 제주에서 바닷물 한 컵이 건너오리라 생각했는데 웬 파도가 철썩하고 일었다.

감사하다. ‘훗, 나 이런 편지 받는 여자야.’하며 어깨를 으쓱이게 되고, 뭔가 내가 되게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이 기분을 느끼게 해 주셔서 말이다. 그 안에 묵직한 (그러니까 중요한) 마음들이 담겨 있어서 그 마음들을 받는 나도 묵직하고 중요한 사람이 되는 이 느낌. 퍽 좋다. 

이것도 짧은 답장이 될 수 있으려나.


2023.06.16 (금)

요즘 가을이(첫째)는 나랑 옷을 똑같이 입으려고 한다. 외출준비를 할 때면 “엄마! 옷 뭐 입을 거야??” 묻는다. 문제는 아이와 비슷한 옷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오늘은 유치원을 빠지고 서울에 어린이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어김없이 똑같이 입겠다는 아이. 완전 똑같이는 힘드니 색깔을 맞추자고 달랬다. 아이는 빨간색 원피스 나는 빨간색 니트를 입기로 하고 말이다.   다행히 설득이 되었다. 근데 문제는 신발이었다. 많이 걸을 예정이라 편한 샌들을 신겠다고 했는데, 아이도 그것과 똑같은 검은색 샌들을 신겠다는 거였다. 작년 여름에도 신던 거라 약간 작아졌지만 아이는 불편하지 않다며 그 샌들을 골라 신었다. 아니나 다를까 박물관에서 한참을 놀고 있는데 신발을 벗고 싶다는 아이. 벗겨보니 엄지발가락 옆 부분에 빨갛게 쓸렸다. 아차 싶었다. 그냥 운동화를 신자고 할걸. 다행히 박물관 직원분이 난감해하는 우리를 보고는 밴드를 주셔서 발가락에 붙이고 남은 체험활동들을 재밌게 할 수 있었다. 아... 이제 옷도 딸아이랑 맞춰서 사야 하나; 난감하네;;;ㅋ


2023.06.17 (토)

만 1세. 아이가 가장 귀여운 시기가 아닐까 한다. (이 시기에서 멈춰 한 3년 있으면 좋겠다고 가끔 생각한다.) 돌이 지나 걷기 시작하고, 모유나 이유식이 끝나고 어른들이 먹는 쌀밥을 먹으며, 말귀를 알아듣고 몇 마디씩 말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 엄마도 신생아 때보다는 조금 편해지고 (물론 사람마다 다르다.) 무엇보다 할 줄 아는 것이 매일매일 늘어가는 아이를 보는 재미가 있는 시기이다. 둘째가 요즘 말이 는다. 원래는 두 글자 짜리 단어만 몇 가지 할 줄 알았는데, 요즘은 단어를 붙여 말하기도 한다. 만화를 보다가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아저씨가 나오는 장면에서, “멈머 무서워!”라고 해서 놀란 적도 있다. 할 줄 아는 몇 가지 단어들을 가지고 명확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웃기고, 찰떡같이 내 말을 알아듣고 대답하는 것도 기특하다. 하지만,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할 때도 많은데 나는 그걸 ’ 천사의 말‘이라고 한다. 아이는 분명한 뜻을 가지고 하는 말이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한다. 내가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 귀여운 목소리로 뭐라 뭐라 천사의 말을 한다. 어쩔 땐 내 눈을 보고 제법 길게 몇 문장 짜리 말을 할 때도 있다. 길게 말했지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럴 땐 눈을 크게 뜨고 ”그랬구나!! “하고 맞장구를 쳐준다. 네가 무슨 말을 했던 건지 너무 궁금하지만 나는 그 언어를 모른다. 그래도 좋다. 네가 천사의 말도 하고, 인간의 말도 하는 이 시기가. 


2023.06.18 (일)

우리 집에서 모임이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속 깊은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친한 언니에게서, 처음으로 예전 힘들었던 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듣고만 있는 나도 자연스럽게 얼굴을 찌푸리게 되는, 그렇게 힘들었던 이야기였다. 이미 지난 일이기도 했고, 언니는 덤덤하게 말을 했지만 우리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그저 듣고만 있었다. 대화의 끝에 정말 힘들었겠다고... 위로도 격려도 공감도 아닌듯한 애매한 말밖에 해줄 수 없어 머쓱했다. 그런데 모임이 끝나고 각자 헤어진 다음 언니가 카톡창에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모임이 너무 즐거웠다며, 모임하고 왔더니 에너지가 넘친다고 말이다. 미뤄둔 집안일들을 해치우고 베란다 청소까지 싹 했다며 사진까지 보내주었다. 마음이 찡했다. 우리는 그저 들어주기만 했을 뿐인데, 언니에게 그 시간이 그렇게 힘이 되었다니 오히려 고마웠다. 듣는다는 게 그렇게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다시 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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