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새미 Jun 28.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6.19(월)~2023.06.24(토)

여름 나무

2023.06.19 (월)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커다란 그늘을 볼 때마다 여름이를 생각한다. 나무가 가장 잎이 무성해 제일 큰 그늘을 만들어 내는 시기가 바로 여름이다. 네가 그런 나무들처럼 다른 이들에게 큰 그늘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이름 ‘여름’. 그러다 다시 생각한다. 큰 그늘을 만들어주려면, 큰 그늘이 어떤 건지 경험해봐야 한다. 결국 내가 여름이에게 큰 그늘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그런 어른인지 문득 생각해 보게 된다.


2023.06.20 (화)

남편이 늦게 퇴근하는 날이었다. 그런 날은 유독 지친다. 낮에는 나름 괜찮았다. 아이들이 등원한 시간, 작정하고 집안일을 했다. 원래는 얼른 마치고 한 시간 정도는 책도 읽고 자유시간을 좀 가지려고 했는데, 치우고 청소기 밀고 걸레질하고 설거지하고 빨래 돌리고 빨래 개고 하다 보면 끝나지 않는 게 집안일이다.  결국 둘째 하원 시간까지 집안일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청소를 해도 상태 유지는 몇 시간을 가지 못한다. 우리 애들 둘에 조카 둘까지 놀러 와 저녁 먹고 좀 놀다 보면 과자 흘리고 음료수 쏟고 장난감 폭탄까지. 몇 시간 동안 청소한 집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지경으로 다시 어질러진다. 조카들이 돌아가고, 어질러진 집을 다시 정리한 다음 장 보러 갈 시간이 없어 온라인 장보기를 한참 하고 있을 무렵 남편이 퇴근해 돌아온다. 남편이 돌아오면 (양육자가 나 말고 한 명 더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간신히 버티고 있던 정신력이 느슨해지면서 피로가 급격하게 몰려온다. 그제야 하루동안 흘린 땀을 씻어보지만, 얼굴에선 이미 웃음기가 사라졌다. 오늘은 아빠와 자라고 하자 첫째가 울상이다. 엄마랑 자고 싶다고 사정하는 아이를 외면한다. 첫째는 울다 잠들었다. 첫째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남편을 피해 둘째가 탈출해 나왔다. 제습기 버튼을 띵띵 누르며 장난치던 아이가 조용하다. 건조기가 고장 나 빨래를 거실에 널어놓았는데, 그 빨래를 바닥에 팽개치고 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자 너무 화가 나 아이 등짝을 한 대 때렸다. 막 소리도 질렀다. 그런데도 아이는 나에게 안아달라고 다가온다. 그런 아이를 막 밀쳤다. 계속 밀쳤는데도 아이는 계속계속 안아달라고 돌아온다. 더 이상 밀치지 못하고 가만있자 품 안에 쏙 들어와 안긴다. 하지만 나에겐 아이를 안아주고 있을 에너지가 없었다. 첫째를 재우고 나온 남편에게 둘째를 넘겼다. 아이가 안방 침대로 뛰어간다. 셋이 침대에 누웠는데 아이가 나에게 잘 자라며 안아준다. 그런 아이에게 네 방 가서 자라고 했다. 돌연 아이가 알았다며 나간다. 결국 둘째는 거실에서 아빠와 둘이 잠이 들었다. 아이를 내보내고 방 안에서 막 울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엄마의 모진 말과 행동에 상처받았을 아이들이 불쌍했다. 그리고 오늘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그동안 매일 아이들이 잠들기 전 책도 읽어주고 옆에서 함께 해주던 나였는데 오늘 하루 그렇게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미안해하며 우는 나도 불쌍했다. 


2023.06.21 (수)

결국 생리가 터졌다. 그래서 어제도 그렇게 짜증이 솟구쳤나 보다. 거기다 생리대를 하고, 생리통이 시작되면 신경은 더 곤두선다. 짜증 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짜증을 안 내게 되는 건 아니다. 애들 등원 준비를 다 시키고 나서 집을 나서려는데 둘째 콧물약을 안 먹인 것이 생각났다. 원래는 약을 잘 먹는 아인데, (누나 꺼까지 뺏어먹는 정도;) 약을 먹기 싫다고 버틴다. 약간 짜증이 올라왔다. 비도 오고 가뜩이나 등원도 늦었는데 어르고 달랠 시간이 없다. 스스로는 먹을 것 같지 않아(원래 약을 스스로 먹는다.) 먹여주었더니 뱉는다. 웃옷이 젖었다. 결국 그 순간 내가 이성의 끈을 놓쳤다. 아이의 등짝도 때려주고 막 윽박지르며 혼을 냈다. 결국 두 번째 시도에도 아이는 약을 뱉었고 나는 소리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아이도 눈물콧물 빼며 울기 시작했다. 신만 신고 나가면 등원준비 완료였는데, 고지를 코앞에 두고 결국 등원 ‘전쟁’이 되었다. 그냥 먹이지 말고 보낼까 하다가, 어차피 옷도 갈아입혀야 하고 이렇게 까지 난리를 쳤는데 약도 못 먹이고 보내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았다. 약통에 다시 새 약을 넣으러 부엌으로 돌아갔다. 그런 내 옆에서 첫째는 계속 괜찮다고 위로를 했다. 여름이(둘째)가 진정되면 약을 먹이자며 나를 달래기까지 한다. 그 말에 놓쳤던 이성의 끈을 다시 잡았다. 여전히 울고 있는 둘째에게 돌아가 아이를 안아주었다. 내게 안겨서야 울음을 그친 아이 손에 약병을 쥐어주며 스스로 먹으라 했다. 진정이 돼서 스스로 먹기까지 안고 기다려주었다. 그러는 동안 첫째가 둘째에게 얘기한다. "여름아 엄마는 그래도 여름이를 많이 사랑해~" 아... 내가 했어야 할 말이다. 그러면서 아까 흘린 약을 닦을 때 썼던 물티슈를 집어 들며 "내가 이거 버리고 올까?" 묻더니 쓰레기도 치워주며 뒷정리까지 해준다. 참 누가 엄마고 누가 딸인지. 난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엄마지만 내가 딸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내가 딸아이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이다. 아이는 오늘도 나의 멘탈키퍼가 되어주었다. 나의 정신적 지주. 호르몬의 노예인 나를 구원해 준 구원자. 네 덕에 오늘 아침을 버틸 수 있었다. 아니, 난 버티지 못하고 넘어졌는데 네가 그런 날 잡아주어 일으켜주었지. 난 진짜 언제 철이 들까. 그냥 생리를 그만하고 싶다. 애도 둘 다 낳았으니 그만해도 되는데... 오늘도 가을이(첫째)라는 대접에 담긴 간장종지가 되었구나. 후... 못났다. 


2023.06.23 (금)

남편이 퇴근하고 같이 저녁을 먹었다. 오늘은 남편이 아이 둘을 보고, 저녁시간에 나에게 자유시간을 주기로 한 날이다. 저녁을 차려먹고 나니, 나갈 기운도 나지 않는다. 그냥 방문을 닫아놓고 안방에서 쉬겠다고 했다가 결국 그 안에서 처리해야 할 집안일들을 하고 있는 나는 발견하고는 짜증이 솟구친다. 다시 한번, 나는 집안에서는 절대 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가기로 한다. 준비해서 나가려는데 건조기가 다 돌아간 것이 생각났다. 남편에게 빨래를 개야 한다고 말했더니 지친 기색을 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오던 남편은 작은 한숨을 쉬었다. 기분 나쁘게 한숨을 쉰 것도 아니었는데, (그의 잘못은 절대 아니지만) 거기서 내가 무너져 버렸다. 이번 한 주 생리 때문이었는지 남편의 늦은 퇴근 때문이었는지 유독 지쳤었는데 그동안 꾸역꾸역 참고 있던 설움이 터졌다. 그 자리에서 가방을 팽개치고 엉엉 울었다. 집안일하는 게 너무너무 싫다고 했다. (정확히는 토나온다고 했다.) 이렇게 청소 빨래만 하다가 늙어 죽기는 더더욱 싫다고 했다. 너네 셋 뒤치다꺼리하며 사는 게 지겹다고, 아침에 일어나 잠들 때까지 하루종일 회사에서 사는 것 같이 퇴근 없는 이 삶이 끔찍하다고 했다. 집에 있는 게 싫고, 집 자체가 싫다고 했다. 나는 하루종일 집안일만 하는데 몇 시간도 못 가 도루묵이 된다고, 그런데도 너는 물걸레 청소기도, 식기세척기도, 음식물처리기도 사지말자고만 하니 내가 물걸레 청소기가 되어야 하고, 식기세척기가 되어야 하고, 음식물처리기가 되어야 한다고... 가뜩이나 맨날 하는 빨래에 지치는데 건조기까지 고장 나서 (고작 가전제품하나 고장 난 건데) 일주일 내내 우울했다고. 나 이렇게 살기 싫다고... 울었다. 아이들이 없는데서 울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늘 아이들과 함께 있고 사람 감정이란 게 원하는 시간대에 터져주는 게 아니라 난감하다. 그걸 참을 단단함이 나에게 있으면 좋겠다만 그러기엔 나는 아직도 물러터졌다. 그렇게 쏟아내고 다시 추스르고 나가려는데, 첫째 딸이 할 말이 있다며 나를 불러 세운다. 문간에 서서 얘기해 보라고 했더니 그동안 자기가 짜증내서 미안하단다. 내 우는 소리는 결국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들게 했다. 아니라며 아이를 안아주었다. 가을이는 엄마의 최고의 딸이라고, 고맙다고 했다. 어른인 나도 수시로 짜증을 내는데, 네가 짜증 낸 건 (첫째는 짜증을 잘 내지 않는 편이다.) 절대 미안할 일이 아니다. 또 나만 못난 엄마다. 또 나만 간장종지다. 그나저나 집안일 말고 다른 일을 찾아봐야겠다. 돈을 벌든 못 벌든 다른 일을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2023.06.24 (토) 

남편이 로봇청소기든 물걸레청소기든 식기세척기든 다 사주겠다고 했다. 아싸.


매거진의 이전글 주간 새미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