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새미 Jul 03.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06.26(월)~2023.07.02(일)

엄마가 안 놀아주니 혼자 책을 읽던 가을

2023.06.26 (월)

가을이가 소파에 엎드려 책을 읽는다. 아직 글자를 읽을 줄은 모르지만 내용은 다 아는 책이다. 내가 무척이나 여러 번 읽어줬던 책이기 때문이다. 가만 들어보니 얼추 내용을 비슷하게 이야기하며 책장을 넘긴다. 집안일하랴 둘째 챙기랴 바쁜 엄마가 놀아주지 못하자 책을 선택한 네가 기특하다. (하지만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ㅋ) 그리고 아이가 책 내용을 줄줄 꿰고 있을 만큼 여러 번 열심히 읽어주었던 나 자신 기특하다!


2023.06.27 (화)

남편이 회사에서 교육이 있어 늦게 들어오는 날, 아이들 하원하고 동생네 놀러 갔다. 저녁도 먹고 놀다 보니 제부도, 남편도 퇴근해 동생네에 두식구 모두 모였다. 7살(만 5살) 첫째 조카가 그동안 색종이로 잔뜩 접어둔 표창을 한 바구니 챙겨 나온다. 표창 던지기 게임을 할 사람은 손을 들라며 한껏 목청을 높인다. 남편이랑 내가 대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 손을 들지 않았는데 (방에서 노는 둘째들 빼고 우리 집 첫째 포함 동생네 부부는 모두 손을 들었던 상태였다.) 조카는 우리 둘이 손을 들 때까지 게임참여자 모집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뒤늦게 눈치를 채고 얼른 손을 들었다. 그렇게 강제로 게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조카는 그때부터 갑자기 태권도 학원 관장님을 빙의해서 게임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순서와 게임 진행 방식을 정해주며 어찌나 으름장을 놓는지 태권도장 선생님들이 왜 늘 목이 쉬어 계신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한 순서를 종이에 적어 나오고 싶었는지 우리더러 거실에 떠들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제차 강조를 하고는 방에 들어가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 나온 조카. 무언가 잔뜩 적힌 색종이를 자랑스레 들고 나와서는 “1번 000! 2번 000!” 하며 큰소리로 번호와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짐짓 거들먹거리듯 (태권도 관장님 바이브) 당당하게 이름을 부르더니 갑자기 4번에서 멈칫한다. 그러더니 재부(조카에게는 아빠)를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4번 이름이 뭐지?”하는 게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모부 이름을 부를 일이 없으니, 금방 생각이 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만 한참을 들어가서 종이에 적어 나와서는 그렇게 쩌렁쩌렁 자신 있게 부르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4번 이름은 모르는 게 뭐냔 말이다. ㅋㅋㅋ 조카의 그 한마디에 어른들 모두 쓰러지듯 웃었다. 그런데 그렇게 웃음보를 터트려준 조카가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그렇게 한참 게임을 진행하다가 갑자기 또 쉬는 시간이라며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게임 진행하다 말고 갑자기 무슨 쉬는 시간이냐는 반발도 잠시, 조카가 이번에는 동생(조카에게는 엄마)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나 똥마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근래 들어 제일 크게 웃었다. 진짜 바닥을 치며 뒹굴며 웃었다. 아니 울었다. 너무 웃다 울었다. 혼자서 태권도 관장님 빙의해서 엄격 근엄 진지하게 게임진행하더니 갑작스러운 큰일 신호에 다급하게 쉬는 시간을 외친 조카 덕분에 진짜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우리 조카가 어떤 성격인지 알면 이 상황이 왜 그토록 웃긴지 더 알 텐데. 그걸 다 설명할 길이 없어 아쉽다. 그래도 기억하고 싶어 남긴다. 아 진짜 웃겼다. (ps: 우리 첫째 조카는 뉴스 시청을 좋아하는 팩트체커에, 엄청난 기억력과 정보력으로 우리가 AI라고 놀리는 아이랍니다.ㅋ 개그캐릭터가 아니에요. ㅋ)


2023.06.28 (수)

요즘 둘째가 안아병에 걸렸다. 잘 못 걷는 애기도 아니고, 12킬로짜리 이제 혼자 못 가는 데가 없는 애가 자꾸만 안아달라 울고불고 하니 미칠 노릇이다. 힘도 세져서 매달려서 울면 안아주지 않고 버티기도 힘들다. 자동차만 있으면 혼자 정말 잘 노는 아이인데, 요즘은 집안일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자꾸만 와서 안으라 하니 부쩍 애 보는 게 더 체력적으로 힘이 든다. 밤에 재우는데도 어찌나 안 자려고 버티는지, 한참을 아이와 씨름을 해야 한다. 오늘 하루도 그랬다. 아이를 재우려 옆에 누워 안아주고는 말한다. “여름아, 사랑해~” “우리 여름이 엄마가 많이 많이 사랑해~” 아이는 심드렁하게 어~어~ 하고 대답한다. 사실 그 말은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계속 상기시키는 것이다.  내가 힘들지만 이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나 자신에게 주문을 외듯 하는 말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에게 ‘사랑’에 대한 정의는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상대를 위해 힘든 것을 얼마나 참아줄 수 있느냐가 사랑의 척도가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사랑은 참고 노력해야 하는 분야 이기도 하다. 그렇다.


2023.06.29 (목)

남편이 회사에서 조금 늦게 퇴근을 했다. 같은 팀 형과 얘기를 하느라 늦었다 했다. 그 얘기의 주제는 남편을 싫어하는 상사였다. 전에도 몇 번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오늘도 들어보니 그랬다. 일을 가지고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괜히 별 것도 아닌 걸로 시비를 걸며 이유 없이 싫은 티를 팍팍 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기만의 이유가 있을 순 있겠지만, 그걸 성숙한 방법으로 전달하는 사람은 아닌 듯했다. 게다가 남편은 성격이 까칠한 사람도 아니다. 처음 보는 사람도 되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타입의 그런 사람이다. 오죽했으면 동생이 나에게 남편을 처음 소개해줄 때 그 사람의 특징을 이렇게 말했겠는가. ”착하고, 착하고, 음... 착해! “ 두드러지는 특징이라고는 착한 것뿐인 사람. 진짜 ‘착한 ‘ 사람인지는 몰라도 누가 봐도 순한 사람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그가 직장에서 이유 없이 미움을 받는다니 속상했다. 사실 아이들 때문에 얘기를 자세히 들어주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본인도 이유를 몰라 답답하다 하니 듣는 나도 가슴팍에 턱 막힌 고구마가 따로 없다. 본인은 오죽하겠나 싶어 그저 편을 들어주었다. ”그 사람이 이상하다. 네 잘못이 아니다. 속이 꼬일 대로 꼬인 사람인가 보다. “ 했다. 위로가 됐으려나. 그래 나도 집안에서 힘들지만, 너도 집 밖에서 힘들겠구나 싶다. 아이들에게 벗어나 밖에 있는 네가 자주 부러웠는데, 적어도 난 귀여운 애들이랑 투닥투닥 하지 너는 귀엽지도 않은 놈들이랑 투닥투닥하는 게 짜증 나겠다 싶다. 우리 둘 다 고생이 많다.


2023.06.30 (금)

엄마랑 동생이랑 이케아에 다녀왔다. 차를 타고 가면서 셋이 수다를 떨다 보면 서로에게 잔소리를 할 때가 많다. (엄마만 딸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ㅋ 이쯤 되면 딸들도 엄마에게 못지않게 잔소리를 한다.ㅋ) 그럴 때 동생이 하는 말이 있다. “지지와 격려 부탁해요~” 우리 가족은 지지와 격려를 잘 안 해준다면서 말이다. 뭐 대부분의 가족들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보다는 잔소리나 조언, 첨언을 하지 않는가. 이케아에서 쇼핑을 마치고 우리 집에 모였다. 내가 산 책상을 셋이 자연스럽게 함께 조립한다. (업무분담 척척) 아이 욕조도 샀는데, 크게 붙어있는 설명스티커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자 엄마랑 동생이 드라이기까지 동원해서 한참을 스티커 떼는데 열의를 불태운다. 완벽하게 스티커를 떼어주고는 각자 집으로 쿨하게 돌아갔다. 고맙다며 마중인사를 하고는 돌아서는데, 엄마랑 동생이랑 가까이 살아서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전처럼 남편 직장 때문에 멀리 (안 막혀야 차로 1시간 거리) 살았다면 누리지 못했을 이것. 이것이 바로 우리 가족의 지지와 격려구나 싶다. 말하지 않아도 내 살림을 척척 도와주는 것. 서로의 집에 가도 자연스럽게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미는 것. 내가 써보고 좋은 살림템을 알려주고, 나눠 쓰고, 내 일처럼 함께 하는 것. 잔소리에 잔소리를 얹으면서도 품을 나누고 손을 보태주는 것. 내가 그런 가족의 테두리 안에 살고 있다는 게 오늘따라 고맙고 또 감사하다.


2023.07.01 (토)

첫째 유치원에서 부모참여수업으로 상반기동안 진행 했던 프로젝트 발표와 플리마켓을 여는 날이었다.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하지 못했던 행사다. 나는 사실 한 달에 한 번 아이 유치원에 가서 책을 읽어주고 있기 때문에 아이 유치원에 간다는 게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아니었다. 엄마랑 함께 교실에 들어가서 수업을 진행하고, 아빠랑 동생까지 유치원에 다 온다는 게 그렇게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었나 보다. 한참 전부터 유치원에 언제 오는 거냐고 재차 묻고, 엄마도 아빠도 여름이도 다 오는 거냐고 여러 번 확인을 했다. 다음 주 토요일이야, 이번주 토요일이야, 내일모레야, 내일이야 할 때마다 아이는 설렘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가족이)가 없이 너 혼자 지내던 공간과 시간에 우리가 들어가는 일. 그것이 너에게 이렇게 행복한 추억이 되는 일이라 다행이다. 행사가 끝나고 다른 반 친구들은 모두 떠난 뒤, 선생님이 이제 정리를 해야 한다고 양해를 구할 때까지 끝까지 유치원 교실에 남아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놀던 네가 자꾸만 기억에 남는다. 내가 보기에 특별할 것 같은 일이 아니라 너에게 특별할 일들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너에게 그런 특별한 추억들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어쩌면 나는 특별하지 않은 일들을 더 많이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자던 여름

2023.07.02 (일)

유치부 예배에 갔다가 여름이가 설교시간부터 잠이 들었다. 사실 설교시간이라 해도 유치부 예배라 엄청 큰 목소리로 (약간 연극톤 ㅋ) 하시는데 (애들도 엄청 떠들고 돌아다님ㅋ) 정말 기절하듯이 자는 거였다. 설교가 끝나고, 찬양도 부르고 만들기 활동도 하는데도 깨지 않았다. 이모가 머리를 묶어도, 심지어 어떤 누나가 귀에 대고 나팔을 불어도 깨지 않고 자던 너. 그도 그럴 것이 어제 늦게 잠든 데다, 아침에 새벽 5시 반에 일어난 터였다. 어린이집에서도 그렇게 낮잠을 많이 자고, 심지어 낮잠시간이 아닌 특별활동 수업 중에도 혼자 들어가 자겠다고 자주 선생님을 조른다는 둘째... 집에서는 밤에 그렇게 안 자려고 버티고, 아침에 그렇게 일찍 일어나면서 왜 어린이집만 가면 그리 자는 것이냐... 집에서 좀 그렇게 자라! 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주간 새미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