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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partners 샘파트너스 Jan 20. 2017

익명성이 만드는 새로운 관계와 소통 방법

그 속에서 얻는 오늘의 위안(慰安)

이전의 싸이월드뿐만 아니라 그다음 세대의 트위터, 페이스북 등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친구 맺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서비스다. 하지만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SNS들을 보면 대부분 익명성과 콘텐츠의 휘발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자신의 일상과 관심사, 생각을 공유하며 온라인에서 사교(Socializing)하는 것을 SNS의 본질이라고 여긴다면, 자신을 드러낼 만한 표식도 없이 스스로 남긴 흔적들이 일정 시간 뒤에 사라져 버리는 최근의 SNS 방식이 선뜻 이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의 SNS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얼마 전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반짝 유행했던 애플리케이션 게임이 있다. <BARK>라는 이 게임은 이름 그대로 강아지가 되어 ‘짖는’ 게임이다. 앱을 열면 화면 한가운데에 버튼이 딱 하나 있다. 짖고 싶은 만큼 그 버튼을 누르면, 주변에 이 게임을 설치한 다른 ‘강아지’들이 듣게 된다. 소리를 들은 ‘강아지’는 똑같이 ‘짖어대는’ 것으로 화답할 수 있다. 그렇게 서로 짖다가 동일 구역 내에서 가장 많이 짖은 강아지는 Top Dog이 되어 해당 구역의 이름을 직접 지을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이것이 이 게임의 유일한 Task이자 Goal이다.


‘게임’을 만드는 기본 원리가 ‘겨루기’ 혹은 ‘임무 완수(mission complete)’를 바탕으로 보상을 얻는 것 - 상대방을 이기거나 레벨업 - 에 있다고 본다면, 사실 이것은 ‘게임’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플레이어가 할 일이 없고, 특별한 보상조차 없는 난이도 제로의 게임이다.


그런데 몇 번 하다 보니 좀 달리 보인다. 짖을 때마다 주변의 가까운 ‘강아지’들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그 무리 사이에서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걸 보니 ‘게임’이라기보다는 이성 만남 데이팅앱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이 앱은 자신을 ‘게임’이 아닌 ‘위치 기반 SNS’로 규정하고 있다. 스스로 그렇다고 하니 그제야 SNS 같은 면모가 보이긴 하지만, <BARK>를 ‘사회관계 구축망 서비스’라고 단번에 말하기 머뭇거려지는 이유는 이 서비스가 이용자들 간에 강하고 지속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멀리하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회사 사람들도 이것이 SNS임을 알아채지 못하고, ‘요상한 게임’을 알아냈다며 서로에게 소개하지 않았을까.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SNS와 뭔가 다르다고 느껴지는 것은 <BARK>만의 몇 가지 특징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1) <BARK> 가입 첫 화면 - 8종의 강아지 캐릭터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다.

2) 한 구역에서 가장 많이 짖은 개가 되면 그 구역의 Top Dog 이 된다. Top Dog이 되면 왕관을 얻고, 구역 이름을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3) 이 구역에서 오가는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는 메시지 보드.



우선 사용자를 나타내는 정보를 최소화한다. 등록할 때 여타 서비스에서는 당연한 듯 요구하는 내 이름, 생년월일, 이메일 따위를 묻지 않는다. 하물며 닉네임 설정조차 없다. 그저 8종의 강아지 캐릭터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결국, 이 앱에서 나를 나타내는 정보는 8종 중에 고른 강아지 캐릭터와 내가 등록한 순서에 의해 부여된 숫자뿐이다. 본인조차도 외우기 힘든 이 숫자로 된 아이디는 특정 유저를 기억하기 어렵게 만든다. 즉, 매번 마주치는 동네 강아지는 알아보게 만들지만, 지금 짖어대는 강아지는 쉽게 기억하기 어렵게 만들어서 한번 만난 강아지 정도는 그냥 무리 중 하나의 존재로 유지시키는 것이다.


메시지 기능을 최소한으로 제한한다. 같은 구역 안에 있는 모든 ‘강아지’들이 볼 수 있는 메시지를 쓸 수 있다. 하지만 특정 ‘강아지’와의 1:1 채팅은 불가능하다. 하물며, 공개 메시지 작성도 10자 이내로 한정되어 있고, 이마저도 여러 번 쓰면 에너지가 떨어져 다시 쓸 수 있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야 한다. (즉, 도배가 안 된다). 트위터도 글자 제한이 140자였는데 단 10자 내에 무슨 말을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이용자들 간에 충분한 대화가 오가기가 힘들다. 각자가 들어줘도 그만, 안 들어줘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짖는’ 행위의 연장 선상에서 단편적 메시지를 남기는 편이다.


‘게임’이라 하기에도, ‘소셜미디어’라 하기에도 생경한 이것은 베타 버전 출시 두 달 만에 전 세계 6개 대륙에서 1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IT 전문 커뮤니티인 ‘클리앙’에서는 앱을 사용해 본 유저들이 앱 인증샷을 올리는 것이 한때 유행이었을 정도다.


출근하다 왈. 점심 먹고 왈왈. 야근하다 왈왈왈. 마지막으로 자기 전에 한번 왈. 이렇게 이루 말할 수 없이 단순한 task에 사람들은 왜 흥미를 느끼는 것일까? 이용자들은 처음에 이 의미 없는 짓을 내가 왜 하고 있나 싶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짖게’ 된다. 그 이유를 단번에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이 앱이 어떠한 실용적 이유도 들이밀지 않고, 도전심도 자극하지 않으며, 그 어떤 과제도 던져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노출하는 것에 피곤해진 사람들,

하지만 여전히 소통을 원한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까지의 SNS는 일종의 ‘자기 편집’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구축해야 하는 곳이었다. 타인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사교의 장(場)에서는 우선 서로를 구분하게 하는 개인의 아이덴티티가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참을 고심해서 프로필 사진을 설정하고, ‘좋아요’와 공유를 함으로써 나의 현재 관심사와 기분을 표현하며, 때로는 내가 쓴 글과 사진으로 내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SNS에서의 소통을 위한 기본자세다.  


지금까지의 SNS들은 나에 관해 무엇이든지 드러내주길 원했다. / Source: zurb.com


하지만 <BARK>는 기존의 SNS가 설정한 일반적인 소통방식을 완전히 벗어나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익명성이 자리하고 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이렇게 더 강화된 익명성을 바탕으로 기존과는 다른 대안적 소셜라이징 경험을 만드는 SNS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익명 SNS’라고 하면 우선 단번에 떠오르는 것이 <BLIND>다. 약 3년 전에 론칭한 블라인드앱은 직장인 전용 ‘익명 SNS’다. 사실 익명게시판 타입은 PC 통신 시절부터 존재했었기에 그다지 새롭다 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런 단순 게시판이 이제 와서 독립적인 서비스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회사 이메일 인증을 통해서만 가입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장치가 더해져서이다. 가입 승인 후에야 자신의 회사 익명게시판과 동종 업계의 게시판 이용이 가능하다 보니 해당 게시판의 글은 그 회사의 직원이 쓴 것이고, 그 업계 사람이 쓴 것이 되기에 익명임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정보에 신뢰감이 더해진다. 사내연애, 연봉협상, 인사고과 등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것들이 주요 화제가 되고, 이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BLIND>는 직장인들의 ‘대나무숲’과 같은 공간이 된다. 철저한 익명임에도 불구하고 회사 이름은 공개되다 보니 여타 익명 커뮤니티와는 달리 진위여부가 불분명한 정보나 욕설 등이 난무하지 않고, ‘믿을만한 정보’가 많은 것으로 여겨진다. 일종의 내부고발도 이루어져서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이나 두산인프라코어의 ‘20대 희망퇴직 권고’ 사건들도 블라인드앱을 통해 사회적 이슈로 불거지게 되었던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회사 계정으로 블라인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차단해버리기도 한다. 어찌 됐든 보수적인 우리나라 기업 환경에서 직원 개개인이 자유로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여전히 어렵기에 익명이란 도구를 활용해서 조직 내 소통을 늘리고, 갈등을 줄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BLIND>의 목표라고 한다.


주목할만한 또 다른 ‘익명 SNS’는 대표 힐링앱으로 꼽히는 <AROUND>다. 익명 커뮤니티라고 하면 으레 익명성에 기대어 막말과 악성 댓글이 난무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되지만, 이 곳은 오히려 욕설, 비방 글, 광고 없는 청정앱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실제로 <AROUND> 글에 달린 댓글 반응들을 보면 생각보다 훨씬 따뜻한 분위기에 놀라게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런 분위기가 가능한 것은 <BLIND>처럼 작은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를 쓰려면, 다시 말해 답답한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다면 ‘버찌’가 필요하다. ‘버찌’를 얻으려면 먼저 남의 글에 댓글을 달고, 누군가로부터 내가 단 댓글에 대한 공감의 표시로 ‘버찌’를 받아야 한다. 진정성이 느껴지고, 정성스럽게 쓴 댓글이 많은 공감을 받게 되다 보니 댓글들은 자연스럽게 따뜻해진다. 다른 사람의 글을 먼저 읽고, 댓글까지 살펴보게 하는 이 방식은 주변의 이야기에 먼저 귀를 기울이게 만들고, 따뜻한 소통으로 이어지게 하는 장치인 것이다. 게다가 내 글이 자칫 ‘중2병’이나 ‘허세’로 보이지 않을까란 부담을 덜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서인지 마치 한 편의 시 같은 좋은 글귀들도 많다. <AROUND>는 이런 글들을 모아 출판물로 만들거나 전시를 하기도 하고, 이용자 역시 놓치기 싫은 좋은 글들을 캡처해서 다른 SNS에  ‘#어라운드 #좋은글’로 해쉬태그를 달아 공유하기도 한다.


<BLIND>로 접속하면 본인의 회사에 따라 접근 가능한 게시판만 보인다. 하나는 회사 익명게시판이고, 그 외는 ‘라운지’라고 불리는 업계 익명게시판이다.


대표 힐링앱으로 평가받는 익명 SNS <AROUND>. 철저한 익명성을 위해 글쓴이의 지난 글과 댓글을 확인할 수 없다. 또한 댓글로 대화가 이어지지 않도록 서로를 지명하지 못하게 사용자를 표시하는 정보는 랜덤 아이콘으로만 표시된다.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이미 충분합니다.


위에서 말한 ‘익명 SNS’는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을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잘 사는지’ 보여주기에 바빴던 SNS에 싫증난 사람들은 익명앱에서 오히려 자신을 감추지 않고, 자유로운 표현을 하고 있다. 자신의 좋은 일상보다 슬프고 힘든 오늘을 털어놓을 수 있게 만든 곳에서 작은 해방감과 위안을 얻는 것이다.


아니면 굳이 고민이니 슬픔이니 같이 심각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것에 목적이 있어야 하고, 적절한 의미를 지녀야만 존재 가치를 부여받는 지금의 세상에 우리는 쉽게 피곤함을 느낀다. 더불어 늘어난 개인의 온라인 계정들과 그에 상응하는 SNS 사용량은 누군가가 항상 날 보고 있다는 부담감마저 준다. 그뿐인가. 넘쳐나는 채널에서 타인의 생각과 관심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며 집단에서 격리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어느 날 문득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고 만다.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고독함이 밀려올 때, 우리는 그저 적당한 거리에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묘한 안정감,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을지 모른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가까이 있는 그 누군가가 날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쓸 필요가 없으며, 그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혹은 내가 내뱉은 말에 누군가의 좋아요나 댓글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새로운 소통법을 원하는 시대에 이들이 익명성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고객 가치는 결국 ‘나를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자유’ 일 것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정서적 가치는 꽤 매력적이나 ‘익명 SNS’가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으로서 더 크게 확장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서두에서도 말했듯 <BARK>는 회사 무리 사이에서 반짝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으나 그 흥미가 오래가진 못했다. 단발적이고, 바로 휘발되어 버리는 일회성의 상호작용들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게다가, 이용자와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해서 어떻게 비즈니스로 연결할 것인지가 SNS의 성공 여부가 된다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최소한으로만 얻는 ‘익명 SNS’들이 갈 수 있는 길은 어떤 모습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어찌 됐든, 3세대 SNS들이 어떻게 지속성과 사업성을 획득해 나갈 것인가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우리가 더 탐구해봐야 할 것은 이런 ‘익명 SNS’들을 나오게 만든 시대의 요구, 즉 유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그들의 ‘hidden desire’를 포착하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good service’로 만들어낸 과정일 것이다.




Epilogue...

어느 날, 집에서 동네 Top Dog이 되기 위해 열심히 짖고 있을 때, 문득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서 이번 주 인사이트룸 주제를 찾았습니다. ‘나는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 앞으로 <BARK>를 언뜻 본 누군가가 ‘근데 너 이걸 왜 하는 거야?’라고 물었을 때, 그래도 해줄 수 있는 말이 생겨서 다행입니다. 저는 동네 Top Dog이 되기 위해 앞으로 800번만 더 짖으면 됩니다.   

|BXRS 김현진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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