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만드는 서브컬처
우연히 ‘아는형님’이라는 예능을 보게 되었다. 슈퍼주니어 김희철이 일본 애니메이션 ‘러브라이브’의 나오는 대사 ‘니코니코니’ 애드리브에 다른 출연진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김희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10대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애드리브에 잠시나마 입꼬리가 올라간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김희철은 자신이 스스로 이야기했듯 TV 프로그램 덕후에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들어간 옷을 즐겨 입는 유명한 공식 인증 덕후다. 나도 ‘니코니코니’ 드립을 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러브라이브’라는 애니메이션을 챙겨보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やれやれ
나는 만화, 피규어, 한정판 굿즈에 대한 관심이 많아 그것에 대해 구매하거나 경험하는 것에 있어 거리낌이 없다. 필요하다면 웃돈을 주고 구매하기도 한다, 우리 집 한편에는 박스도 뜯지 않은 피규어들과 쓰지도 않으면서 사놓은 펜들, 작동이 될지 모를 오래된 전자기기들이 빛을 볼 날을 기다리며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나의 모습을 두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 킁킁, 어디서 덕후 냄새 안 나요?”
덕후는 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 말 ‘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꿔 부른 ‘오덕후’의 줄임말이다.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대상을 발견해 몰두하며 전문성을 쌓는 덕후는 자신과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정보를 교류한다. (게임 / 피규어 - 루리웹 힙합 - 디씨트라이브, 힙합 LE 스니커즈 - 나이키매니아 등) 과거 덕후는 아키하바라의 안경 뚱땡이, ’파오후 / 쿰척쿰척’ 등 외모적으로 비하될 만큼 비호감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발전했다. <능력자들><덕후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와 같은 오타쿠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제작될 만큼 오타쿠 문화는 이제 우리 생활에 있어 밀접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아래의 덕후 용어들을 모른 체 마시라. 안다고 해서 창피한 일이 아니니 말이다.
덕후 용어 정리
* 덕후 : 특정 관심사에 깊이 빠져 고립된 생활을 하는 사람. 1970년대 일본에서 생겨난 단어 ‘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줄여서 부르는 말.
* 덕질 : ‘덕후’와 무언가를 하다는 뜻의 ‘질’이 합쳐진 말. 덕후의 취미 생활을 의미.
* 입덕 : ‘입문’과 ‘덕후’가 합쳐진 말로, 새로운 분야의 덕후가 되었다는 뜻. 반대말은 탈덕.
* 성덕 : 성공한 덕후의 줄임말.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거나 덕질 대상과 만남이 성사된 경우 등.
* 덕심 : ‘덕후’와 ‘마음’이 합쳐진 말로, 덕질 대상을 향한 애정 어린 마음을 의미.
* 덕력 : 덕후의 공력을 뜻하는 말. 덕질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함.
* 덕밍아웃 : ‘덕후’와 ‘커밍아웃’이 합쳐진 말로, 스스로 어떤 분야의 덕후임을 공개하는 것.
* 덕업일치 : ‘덕후’와 직업을 뜻하는 ‘업’이 일치한다는 말로, 덕질이 직업이 된 경우.
자신의 일상을 타인과 공유하는 SNS를 통해 본인의 관심사를 알리는 문화가 보편화되고 엄지손가락과 하트를 주고받으며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분위기로 우리의 문화가 바뀌어 가면서 과거 하위문화에 제한되어 수준 낮은 문화 소비자로 취급을 받았던 오타쿠들의 개인적 취향과 관심사가 그들의 열정 발휘에 힘입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SNS와 온라인의 사용은 더 많아질 것이고,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는 새로운 서브컬처로써 또 다른 대중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가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흔히 말하는 오타쿠 문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례들을 알아보자.
장난감이 아니다’ - 다양한 주제와 스타일의 개성적인 캐릭터를 피규어에 담아내는 아트토이 디자이너 쿨레인
아이들을 위해 단순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로 만들어진 토이를 넘어 ‘아트 토이’는 말 그대로 장난감에 예술적 감각을 덧입힌 것이다. 어른들의 장난감, 장난감 아닌 장난감, 마니아들의 수집품, 현대 미술의 한 장르….., 이처럼 아트 토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다양하다. 대한민국 1세대 피규어 아티스트 쿨레인도 애니메이션이 좋아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었던 그가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로 무작정 덤벼들어 나이키, 리복, 삼성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협업하고 아티스트들의 러브콜을 받는 독보적인 아트 토이 디자이너로서 주목받고 있으며, 그의 ‘아트 토이’들은 또 다른 덕후들의 워너비 덕질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빈티지 덕후들의 보물창고에서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 동묘시장
어른들의 고상한 취미를 위한 골동품이나 중고 가구, 어떤 이에게는 쓰레기, 어떤 이에게는 보물들이 모여있는 전국 최고의 구제 옷 쇼핑 메카 서울 동묘 벼룩시장, 수년 전,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코니(데프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니(정형돈)가 지드래곤의 패션을 완성한 곳으로 명성을 얻으며 최근에는 고등학생들부터 20대 초반까지 과거 동묘시장을 찾지 않던 연령대들의 유입이 늘어났다. 빈티지 패션 덕후들의 나만 알고 있던 곳에서 이제는 자신이 패피라고 생각된다면 한 번은 가봐야 하는 곳으로 변모한 것이다. 덕후들의 눈을 빛나게 만드는 물건들이 어딘가에 잠들어 있고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동묘시장은 쿨하고도 멋스러운 감성이 골목골목마다 가득하다.
요즘 10대나 20대 사이에서 유행하고 소비되는 브랜드들은 대부분 서브컬처를 기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이나 사용할 것 같은 귀여운 캐릭터를 내세운 ‘카카오프렌즈’나 ‘라인프렌즈’ 들의 캐릭터에 어른들이 더욱 열광하며 ,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 덕후를 자처했던 이들은 옛날이야기를 하는 아재가 되어버릴 정도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문화가 되어버린 힙합이나 스케이트보드 문화 모두 시작은 서브컬처였다. 이제는 이들을 빼놓고는 트렌드를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다. 스케이트 보더 그들만의 감성과 철학을 담아 전 세계의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수많은 명품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며 발매와 동시에 상품마다 매진되어 리셀러들에 의해 웃돈이 붙는 스트릿 브랜드 슈프림의 제품들은 젊은 세대들의 과시욕과 수집욕을 자극해 또 다른 덕후로 만들고 있는 듯하다. 대중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덕후들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으며 많은 기업들과 브랜드들이 그들이 만들어 내는 서브컬처를 이해하려 하고 있다.
돈과 많은 시간을 투자한 사람만이 오타쿠인가? 정도의 차이지 누구나 살아가면서 좋아하고 관심을 갖는 무언가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무엇이든 순수하게 열정을 다해 애정 했을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덕후가 되어보자. ‘엄마 덕후’도 좋고, ‘아빠 덕후’도 좋으니 말이다.
SCDㅣ이해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