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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partners 샘파트너스 Jun 27. 2018

내가 꿈꾸는 공간, 인테리어 중심.

함께 마주하는 상(床)과 상(想). 

7살, 아직 학교를 입학하기 전이었다. 할머니 댁이 ‘ㄷ’ 자 형태의 기와집이었는데 여기서 3~4 가족이 함께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6남매 형제인 아버지와 삼촌들(작은아버지, 작은 아빠보다는 삼촌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더 친근하다.) 가족과 할머니가 함께 지내던 시절이다. 강아지 2마리, 고양이 한 마리도 마당 한켠에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시절 향수와 추억이 정말 많다.  


유사한 기와집 형태. 문도 창호로 있었고, 대청마루도 있었다. <출처 : https://brunch.co.kr/@travie/298 경주 글사진 강화송 기자> 


 


비가 오는 날이면(작성하는 오늘 이번 여름의 장마가 시작이란다.) 신발을 신고 나가 들어가야 하는 부엌에서 전을 부치는 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온 집안을 가득 채웠고, 마루에 둘러앉아 소주와 막걸리의 안주 삼아 전을 한 점씩 하며 담소를 나누곤 했다. 초겨울이 다가오면 마당에는 김장김치 준비로 작은 소형차만큼 절인 배추들이 김장 대야에 수북하게 담겨있곤 했다. 사랑채에서 신혼을 보내던 셋째 삼촌은 줄곧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거나 기타를 가르치려 했고, 무엇인가 만들어 보여주곤 했다. 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프라모델을 선물해 주기도 하셨다. 디자인하는 지금의 나에겐 많은 영향을 주셨다. 어느 날 삼촌이 불러서 사랑채를 찾았다. 삼촌은 아크릴을 잘라서 만든 이층 집 모형을 하나를 보여주며 "나중에는 이렇게 생긴 이층 집을 짓고 살 거야” 흐뭇하게 이야기했다. 하얀 벽에 빨간색 지붕이 있는 집이었다. 소형 전구를 달아놔 인테리어 조명으로도 사용 가능했다. 내 마음 한편에는 꿈꾸는 이상적인 집은 아니지만 꿈꾸는 집에 대한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나게 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도 삼촌들도 본인 만의 보금자리를 찾아 독립하며 다 함께 지내던 대가족의 모습도 사라지게 되었다.  


대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면 난 항상 옛 드라마 “대발이네 가족”이 떠오른다. 집의 구조, 형태나 형제들이 모여 사는 모습이 내 추억과 비슷하다. <출처 : 사랑이 뭐길래 (1991) 왓챠> 


 

 

국민학교(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 개명되었으니 그 시절 시대상을 반영하고 싶어 사용한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내며 이사도 많이 다녔고 집의 형태도 다양했다. 주거의 형태로 보면 주택, 빌라, 아파트를 다녀봤고, 지역도 강북, 강남, 경기도를 순항했다.  

내가 어릴 때는 집안 장식장 한편에 각종 양주와 해외여행 사진을 두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요즘 언어로 이야기한다면 그 시절 가장 핫한 집안 인테리어 하나였다. 아버지도 이런 장식장을 꾸미는데 열심이셨다. 내 취향과는 다르기도 하고 집안에 없었으면 하는 물건들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집에 있어야 하는 물건, 집의 형태, 집안의 모습 등 이상향에 대한 밑그림들이 그려지기 시작한 듯하다. 


가족관계의 권력을 살펴볼 수도 있다. 접시의 양은 어머니 권력/ 양주의 양은 아버지의 권력이다. <출처 : 헬로마켓 - 부산 엔틱양주장식장> 


 


한동안 집에 대한 그림이 없다가 다시 아지랑이 올라오듯 머릿속에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 결혼하며 독립을 한 뒤였다. 관심 없던 경제적 여건들이 눈에 들어오고 원하는 집의 모습을 갖기엔 나 스스로 가진 게 별로 없기도 했다. 아파트와 같은 주거의 형태는 대한민국이 만들어놓은 괴상한 방식이라며(나는 닭장 같은 곳이라고 헐뜯곤 했다.) 아파트에선 다시는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랬다. 그런 마음이 강했다. 이런 고집도 아이가 하나 생기고 둘 생기며 내 관념을 모두 뒤바꿔 놓았다. (아이는 인생에서 중요한 방점이자 결과물이다.) 아파트만큼 대한민국에 최적화된 주거형태는 없다. 아파트는 그렇게 점점 최적화돼왔다. 


우리나라만큼 아파트 전문가는 없을 듯. <출처 : 두산 위브> 


 

 

아파트를 닭장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사실 지금도 집안의 구조와 다가구가 모여 사는 건축 형태는 별반 다르진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한국 사람들에게 맞춤형인 듯 최적화돼 있다. 자연스럽게 아파트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우리 가족의 집을 갖게 되면 꼭 하고 싶은 몇 가지가 있었다. 하얀색 배경(인테리어 테마)과 큰 테이블이다. 하얀색 배경에 대한 로망은 굉장히 오래되었고 큰 테이블은 둘째 아이와 함께 생겼다.  

어린 시절 큰 밥상에 5~6명이 둘러앉아 식사했던 기억이 최근에서야 떠오르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또 과거 대부분 가정에는 4인 식탁을 두고 가족 식사나 개인 식사를 하지만, 친지들이 방문하여 함께 앉을 수 없을 때는 좌식 밥상을 폈다.  

지금도 처가에서 식사를 할 때는 5~6명이 앉을 수 있는 밥상에서 아이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밥을 먹고 나면 다음 사람들이 밥을 먹는 한 상에서 2번의 식사가 이뤄진다.  


서양 식문화에서 익숙한 테이블 모습 <출처 : http://tedxbusan.kr/> 

  


집안에 친지들이 방문하여도 함께 앉아 식사하고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이 꿈꾸는 집의 중심이 되었다. 최근 식사에 대한 다양한 테마로 맛을 다루고 음식을 다루는데 그 트렌드 영향도 있을 듯하다. 이 테이블은 항상 가족이 모여 앉아 있고 식사도 하며, 아이가 책을 읽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3~4명의 친지가 방문하여도 함께 앉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테이블을 1년간 찾아다녔다. 주방의 공간, 테이블의 크기, 소재, 형태, 집과의 조화,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니지만 혼자만의 업보(業報)라 생각하며 즐거움이기도 했다. 사실 마음에 드는 어떤 것이라도 살만큼 경제력이 있다면 즐거움이 덜 하기도 했겠다. 쉽게 고를 수도 있었겠다 싶다.  


 

디자인을 하다보니 디자이너 테이블을 열망했다. 정확하게는 디자이너 가구를 판매하는 브랜드 테이블을 갖고 싶었다. 디자이너가 우선이 아닌 내 안 몫이 우선이고, 내 주머니 사정과 맞아야 하며, 믿음 있는 브랜드여야 했다. 비트라, 마지스, 구비, 헤이 등 욕심나는 브랜드가 많다. 고민 끝에 고른 테이블은 디자이너 테이블도 믿음 있는 브랜드 테이블도 아니다. 가끔 느끼지만 '선택'에는 항상 비논리적인 무엇인가가 들어있다. 여하튼 이 테이블이 꿈꾸던 집에 가까운 즐거움을 줄 거라 믿는다. 아이들과 또 친지들과 모여 앉아 있을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어릴 시절 추억인 전 부치던 고소한 기름 냄새와 이야기들이 우리 가족에게는 어떤 추억과 향수를 만들어 줄지도 기대된다. 


가공법과 라인이 멋진 테이블 셋, 의자 다리라인은 굳!!<출처 : MAGIS TABLE FIRST RECTANGULAR> 


선의 조화는 역시 디테일 <출처 : MAGIS BAGUETTE TABLE> 


가격대비, 품질과 디자인으로 인기 많은 Loop Stand Table, 구매버튼 클릭까지 갔던 테이블, 지금보다 Simple Life가 가능해진다면 들여올 테다. <출처 : HAY LOOP STAND TABLE> 





사진으로 보여주니 시큰둥했던 아내가 실물을 보여주니 “이쁘다. 좋다” 한다. 아내를 설득해 그 자리에서 주문하고 돌아왔다. 주문이 밀려 7월 중순이나 받아볼 수 있다 한다. 테이블이 도착하는 날 다 같이 앉아 즐거움을 만끽할 테다. 악!! 이제 의자는 어떻게 고르지.........;;; “비트라 할”이면 좋겠지만.......... 



BX | 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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