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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카톡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망자의 것은 다시 망자에게

by 이정욱 교수
당신이 만약 갑자기 죽는다면?


늘 가지고 다니던 폰은 당신의 가족 누군가에게 상속되길 바라는지?
아니면 삭제되거나 폐기되는 것을 바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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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당신이 어디론가 움직이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필요한 것을 사고 음식을 먹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간

모든 기록은 디지털로 소위 '박제'된다.


낯선 사람을 만나기 위한 데이팅앱 채팅 내역을 포함해
좋은 사진, 좋은 영상, 행복한 사진, 행복한 영상도 많지만
굳이 공개하지 못할 은밀한 사진, 은밀한 영상, 은밀한 기록도 함께 다 기록된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메타), 카톡에도 많은 기록들이 담겨있다.



어릴 때 찍은 사진을 보면 촌스럽다.



우리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이 바뀐다.

진정한 '정의'같았던 행동들이 젊음의 혈기였던 행동으로 생각되기도 하고

문득문득 '그 순간에 이러이러했다면...' 하면서 때론 후회하기도 하고 통쾌해하기도 한다.


이미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과의 다정한 사진이 있을 수도 있다.
차마 삭제하지 못할 이유가 있었겠지만...


당신폰의 모든 내용을 직계 식구(배우자, 부모님, 자식들)에게

모두 보여줄 수 있을까? 아니 보여줄 자신이 있을까?


당신의 시각과 당신의 생각이 묻어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당신의 배우자조차도 몰랐던 당신의 진짜 모습을
사후에 '디지털에 저장된 비밀'을 통해 공개하는데 찬성? 아니면 반대하는가?


디지털 시대는 죽음의 의미를 어떻게 바꿨고,
개인의 사후 온라인상의 데이터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연구해 온 영국의 심리학 교수 일레인 카스켓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522---Elaine-Kasket---WEB.jpg 출처: wlv.ac.uk 울버햄프턴대학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죽은 사람들이 SNS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Q. 내가 만약 죽는다면, 스마트폰 어떻게 할까?
선택 1) 스마트폰에 저장된 기록 싹 다 지워줘.
선택 2) 우리 같이 찍은 소중한 사진, 영상 다운로드하여 줘. 나의 좋은 모습 많이 기억해 줘.

KBS에서는 싸이월드 사건을 계기로 이 문제에 관심을 둔 다큐를 제작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의견은 팽팽하게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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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생각을 말하고 싶다.


소중한 사진, 소중한 영상이 있다면 미리미리 SSD나 USB에 백업을 받아놓아야 한다.

디지털 자료들 중에서는 당신이 큰 의미 없거나 장난스럽게 했던 말과 행동, 약속, 사진, 영상들이 있다.

당신이 살아있다면 변명이나 오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당신은 이미 이승사람이 아니다.


만약, 그런 오해가 생겼다면 어떻게 풀 것인가?
풀 방법이 없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들 있는 곳에 자꾸 어슬렁거려서는 안 된다.

그게 바로 이승에 미련이 남아 올라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잡귀다.

죽은 사람의 사진이 있는 카톡 프로필, 구글계정,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남긴 것들

이 모든 것들은 죽은 사람의 것이다.

죽은 사람의 손 때가 묻은 것은 모두 불로 태워서 재로 망자와 함께 보내야 한다.

모두 다 태워서 재가 되면 막걸리 한 병 뿌리면서 저승에서는 고달프지 말고 편안하게

살도록 빌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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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으면 내 폰도 그대로 같이 묻어줘라.
그래야 니들하고 가끔 카톡이나 할 수 있지
통신요금정도는 내줄 수 있는 거지?
사는 동안 참 고마웠다.



- 안산술공방 이정욱 의학전문작가

- 공방 주소: http://kwine911.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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