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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Mar 25. 2018

혼자 패키지는 처음이라,

자유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니었어.


프로 자유여행자에서 초보 패키저로!


‘진정한 나를 찾을 거야’라며 호기롭게 떠났던 여러 번의 자유여행. 아쉽게도 원하던 답을 얻어서 돌아온 적은 한번도 없다. 막상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삐 움직이느라 정작 나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키지 여행은 시간과 일정에 대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내 몸과 여권만 잘 챙기면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관계도 자유여행과는 완전히 다르다.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려 놀다 '스치듯 안녕'하는 자유여행과 달리, 나이부터 직업 어느 하나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 무려 10일 동안을 함께 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정(情)이 들게 된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면 10일 간의 여행이 큰 추억이 되어 회포 아닌 회포를 풀 자리도 생기게 된다. 이처럼 자유여행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패키지. 그저 이직 전 비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떠난 패키지 여행에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과 깊게 사귀며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 원래 인생에는 정답이 없을 뿐더러,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 것. 그리고 그동안 '나 자신을 정의'하겠다는 목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됐다. 어쩌면 주변 선배들에게 몇번이나 들었던 말인데 진짜 내 생각이 된 건 처음인 것 같다.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 명성만큼 가우디는 행복했을까?


한해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는 여행자는 3천만명 이상. 수많은 사람들 중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 작품을 하나도 안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르셀로나 하면 가우디를 빼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멀리서도 보이던 성가족 성당(Sagrada Familia)의 첫인상은 신비롭다 못해 기이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아직도 공사 중인 이 성당은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고 하는데, 그때까지는 어려울 거라는 설이 많다. 이유 중 하나는 후원 없이 오직 헌금과 입장료로만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란다. 이 성당 외에도 건물이 춤을 추는 듯한 곡선의 카사밀라(Casa Milà), 카사바트요(Casa Batlló), 자연과 건축의 위대한 조화를 보여주는 구엘공원 등이 있다. “인간은 창조하지 않는다. 단지 발견할 뿐이다. 독창적이란 말은 자연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라는 가우디의 철학은, 그가 탄생시킨 모든 건축물에 녹아있는 것 같다. 그렇게 일에만 빠져 평생을 보낸 가우디. 지금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건축물도 있고 전세계 많은 이들에게 추앙 받는 존재이지만 생전엔 괴짜라 불리며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생애 마지막까지 혼자였던 가우디. 그는 하늘에서 지금의 바르셀로나를 보면 어떤 기분일까?


수상해. 왜 이렇게 날 챙겨주지?


꽤 쌀쌀했던 날씨 탓에 약간 으슬으슬하던 기운이 금방 감기로 발전해버렸다. 어떻게 아셨는지 한 어머님은 츤데레 늬앙스를 풍기며 약을 쥐어주셨고,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두 분만 꼭 붙어 다니던 언니들도 한국에서 챙겨온 약을 잔뜩 주셨다. 홍삼 진액을 타서 주신 분도 있고 목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며 머플러를 갖다 준 분도 있었다. 그럴 때면 주책없게 눈물이 날 뻔 했지만 꾹 참았다. 그 외에도 행여나 외로울까 장난치고 사진도 찍어주며 챙겨주신 가이드님 등. 가끔 ‘날 좀 내버려두세요’라는 생각 들기도 했지만, 여행이 끝나고 보니 눈으로 본 풍광보다 사람들에게 받은 따뜻한 정이 더 크게 남은 것 같다. 대가없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어주신 어머님, 아버님, 언니들. 삶이 반드시 기브앤테이크의 원리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습니다. 저도 많이 베풀고 살게요. 감사합니다. (_ _)



충격의 플라맹코!

스페인 예술의 꽃이라 불리는 플라멩코(Flamenco).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발달한 집시들의 무용과 음악이다. 정통 플라멩코를 보기 위해 세비야의 한 공연장으로 향했다. 자유여행이었다면 아마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공연장을 찾고 예약했겠지만 패키지 여행이라 수월하게 좌석까지 안내 받았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탭댄스로 인한 강렬한 진동. 울부짖음에 가까운 표정 연기. 손끝 발끝까지 서려있는 감정, 처연한 노래 자락. 가사를 알아 들을 수도 없는데 내 심장은 왜 이토록 뜨거워지고 쿵쾅거리는가? 아마도 공연장 공기를 통해 집시들의 설움, 기쁨, 애잔함이 그대로 전달된 게 아닌가 싶다. 공연이 끝나고도 한동안 여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공연을 보기 전, 별로라는 후기를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이 흥분되는 공연을 보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감흥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사람들에게 오지랖 넓은 안타까움까지 들었다. 내가 훗날 또 스페인에 간다면 그때는 전문 공연장이 아닌 플라멩코 바에 가서 보고 싶다. 더욱 가까운 곳에서 현지의 리얼한 분위기를 느껴봐야지.



보기만 해도 힐링, 미하스

미하스(Mijas)는 바다가 보이는 고산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도착했을 때 이탈리아 남부의 아말피가 떠올랐지만 조금만 둘러보니 같은 고산지대라도 전혀 다른 분위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훨씬 정돈된 느낌이었고 조용하고 특유의 건축물들이 주는 운치가 있었다. 미하스의 건축물은 안달루시아 전통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흰색 벽은 법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정돈된 모습만큼이나 사람들도 평화로워 보였다. 상인들 누구 하나 인상 찌푸린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구경만 하는 손님에게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등 여유가 느껴졌다. 이런 곳에서 남은 생을 보낸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패키지에서 만난 언니들과 둘러앉아 고소한 Café Con Leche (카페라떼의 스페인어)를 마시며 현지인처럼 여유를 만끽했다. 패키지라고 해서 무조건 시간에 쫓겨 다녀야 한다는 선입견까지 깨 준 곳이다.



편견을 깨면 새로운 가치가 보인다.

나이도, 사는 지역도, 하는 일도 달라서 도무지 공통점이라곤 없어 보이던 패키지 멤버들. 소규모로 진행된 그라나다 야경 투어를 통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예쁜 골목을 구경하는 재미부터 지구 반대편 집값의 시세까지! 로컬의 삶을 가까이서 보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맥주 타임. 우리 테이블엔 회갑 기념 여행을 오신 아버님과 어머님, 유명 대학병원 간호사 언니들이 앉았다. 참 안 어울리는 조합인데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었다. 회갑 어머님 아버님은 내 또래 자녀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으셨고, 나는 “결혼을 재촉하시는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 드리면 좋죠?”라는 고민 상담을 하기도 했다. 친구들에겐 들을 수 없는 지혜로운 답변을 들었다. 나이도, 직업도 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이렇게 통할 수가 있다니 가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자유여행에서 비슷한 또래끼리 모여 그저 신나게 놀았다면, 패키지는 전혀 다른 매력이 존재한다. 사회였다면 절대 섞일 수 없는 조합. 예를 들면 부모님과 자식, 상사와 부하직원, 아파트 다른 동 주민 같은 관계의 재발견이랄까? 이 신기한 이 경험들이 내 마음만 열면 모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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