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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Apr 09. 2018

연봉보다 워라밸

풍부한 소유보다 풍요롭게 존재하기

기성세대와 달리 청년세대는 삶을 대하는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 끼니 해결이 과제였던 80년대는 대학교만 나오면 취업이 가능했고 근면 성실하게 돈을 모으면 아파트 한 채는 마련할 수 있었다. 즉, 노동의 가치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런 과거와 달리 요즘은 '젊어서 고생하면 나중에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감 조차 품기 힘든 현실이다. 밥 굶을 걱정은 없지만 고용 불안과 과잉 경쟁 등으로 미래 비전은 고사하고 그저 현재를 꾸역꾸역 버텨내는 수준 같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불투명한 미래보다는 현재 시점에서 확실히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택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작년 말 그 길을 선택했다. 잘 되면 오너만 행복한 회사에 올인하지 않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찾아서!


상사 모습이 내 미래라고 생각하니,

몇 번의 이직을 하며 구직장과 현직장에서 여러 선배를 만났다. 고생하는 선배들의 연봉은 매년 올랐지만 삶이 더 편해지거나 나아지지는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 미래일 선배들의 모습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고 할까. 돈은 많은데 사람 만날 시간은 없고, 일에 쫓겨 신경은 항상 예민해져 있고, 결혼은 뒷전이었다. 심지어 새로 산 집에 제대로 된 인테리어를 몇 달째 못한 분도 있었다. 돈 쓸 시간이 없어 한 번씩 비싼 옷이나 명품 등을 사지만 허한 마음을 한순간 채워 줄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사는데, 그 치열함에 대한 보상이 너무 허무해 보였다. 그들을 보며 나는 확신을 얻었다. 출근은 있지만 퇴근은 없는 회사에서 아예 나오기로.


적게 벌어도 살아지더라.

전 회사에 다니던 작년 대비 카드값이 절반도 채 나오지 않는다. 내 씀씀이가 큰 걸 알던 동생이 '어떻게 소비를 참냐'라고 물어봤다. 대답을 생각하며 나도 놀랐다!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그냥 안 쓰게 되는 거더라. 지금 버는 정도로 충분히 살아지는 거였다. 야근을 안 하니 퇴근할 때 택시 탈 일도 없고, 스트레스가 적으니 당 보충에 드는 군것질과 술값이 줄었다. 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한 충동 쇼핑도 줄었다. 사실 연봉을 대폭 줄이며 현재 회사로 올 때, 당시 내 지출 상황에서 계산해 보면 눈앞이 깜깜했다. 돈 대신 시간을 얻는다는 걸 알지만 과연 만족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하지만 살아진다. 쪼잔하게 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무실 밖에는 다른 세상이 있었다.

사적인 모임이 있을 때면 "나 없다고 생각하고 놀아. 일 끝나는 대로 합류할게"가 일상이었던 시절. 그때는 상상도 못했던 것들을 지금은 마음껏 하고 있다. 해보고 싶었던 모든 것이 가능하다. 큰 돈이 들지도 않는다. 주 2회씩 운동을 다니고, 퇴근 후 듣고 싶은 강연도 듣고, 배우고 싶었던 언어를 배우고, 퇴근길에 장을 봐서 저녁도 해먹을 수 있다. 누적 피로가 적어지니 주말엔 보고 싶던 공연이나 전시도 볼 수 있다. 예전의 나였다면 '치열하게 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이라며 별로라고 했을거다. 젊을 때 열심히 살지 않고 저렇게 놀다가(;) 나중에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기 힘들거라고.. 그때의 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은 잠시 희생하는 게 맞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라는 노래 가사처럼 나도 변했다. 당장의 성과가 없고 내 생업에 영향이 없는 일일지라도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분명한 가치 하나는 지금 내가 즐겁다는 것이다.

'그림왕양치기' 작가의 그림 중


어쩌면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정년은 짧아지는데 고령화는 심해진다. 그래서 노후가 더 불안한 시대에 미래를 위한 대책 마련은커녕 워라밸을 지키려 하면서 욜로(YOLO) 마인드로 산다는 것이 언젠가는 '참 한심했구나'라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며 느낀 가장 큰 장점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일상의 활기와 여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줄 여유, 좋은 것을 보고 들으며 감동을 할 수 있는 마음,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할 용기 등등 매사 피곤하고 늘어져 있던 나 자신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그 변화가 아주 미미해서 오히려 일을 하지 않는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삶이 무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삶이 풍요로워짐이 느껴진다. 담배를 끊을 때도 금단현상이 있듯, 삶의 방식 자체가 바뀌는데 어찌 금방 홱 달라질 수 있겠는가.


'그림왕양치기' 작가의 그림 중


치열하게 일했던 그 삶이 헛되었다는 건 절대 아니다! 많은 것을 경험했고 배웠으며 지금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다만, '직장에서의 나'와 '내 인생에서 나'를 골고루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 좀 아쉽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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