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쉬운 헌옷 기증
몇 년 전 미니멀리즘 열풍이 불었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그 열풍에 동참하지 못하다가 작년 가을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읽고 나에게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른 것들은 어느 정도 줄여지는데 이상하게 옷, 신발, 가방 등 잡동사니는 아무리 버려도 미니멀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이번 달 초쯤 빈 공간 없이 꽉 차있는 옷장을 보다 '이래선 안돼!!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결심 후에도 한참을 뭉그적 대다 월말에 하게 된 옷 정리 후기를 적어본다.
사실 가장 쉬운 방법은 종량제 봉투에 몽땅 담아서 배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헌옷은 아스팔트와 혼합하여 도로포장을 할 때 쓰인다는 걸 알게 됐다. 옷도 재활용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최소한 그냥 쓰레기는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꼬박꼬박 헌옷수거함에 옷을 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모인 옷들은 사설 업체가 가져가서 재판매를 한다는 사실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무슨 못된 심보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고는 헌옷수거함에 옷을 넣기가 싫어졌다. 내가 행한 의도와 달리 엉뚱한 사람들 배만 불리는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다 보니 헌옷을 사는 업체가 있었다. 어쨌든 사설 업체이지만 수거함 업체와 다른 점은 나한테 옷값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번 이용해 봤는데, 옷과 잡화가 담긴 큰 포대자루 3개를 주고 2천원 정도를 받았다. 아 그냥 헌옷수거함에 넣을 걸... 번거롭기만 했다.
옷 기증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저 ‘내 물건이 아까워서’였다. 준명품 가방들과 사이즈가 안 맞아 한 번도 신지 않은 신발을 버리려고 하는데 너무 아까운 것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그걸 살까 말까 고민했던 나의 마음, 구매하고 한참을 행복하게 들고 다녔던 시간, 추억 등등. 그래서 조금 더 의미 있게 처리하는 방법은 없을까 찾다가 아름다운가게 옷 기증을 알게 됐다. 나에게는 더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유의미한 물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바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물건의 재사용과 순환을 통해 친환경적 세상을 만든다는 의미도 참 좋은 것 같았고. (옷 기증을 받는 단체/업체는 다른 곳도 있으니 그 선택은 개인이 필 꽂히는 곳으로 하면 될 듯하다)
옷을 기부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아름다운가게 사이트를 통해 품목과 개수를 적고 수거 원하는 날짜를 선택해 신청하면 된다. 부재 시에는 집 앞에 내놓고 ‘아름다운가게 기증품’이라고 적어놓으면 수거해간다. 옷 수거 후 1주일쯤 지나면 문자가 오는데, 기부금 처리가 되었다는 알림이다. 솔직히 기다리지도 않았고 기부금이라고 해봤자 아주 소액일 거라 예상했는데, 무려 4만 5천원이라니!! 왠지 감격스러웠다. 내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누군가에게 줬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더 큰 걸 받은 느낌이었다.
영국에서 한해 버려지는 옷이 100만 2천 톤,
서울에도 하루에 100톤씩 쏟아져 나온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아무튼, 딱따구리(2018)’에 나오는 내용이다. 다시 봐도 너무 소름 돋는 통계치다. 사실 안 사는 게 가장 좋고, 꼭 사야 한다면 빈티지샵에서 사는 게 좋을 테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ㅠㅠ 개인적으로 외적인 요소가 사람의 자존감과도 아주 밀접한 영향이 있다고 믿는 나에겐 더욱이 어려운 미션이다. 나는 구제 옷을 스타일리시하게 소화하지도 못할뿐더러, 매번 같은 옷만 입는다면 사회생활을 하며 분명 어려움이 닥칠거라 생각한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어쩌면 핑계)에 대해 고민하다가 내가 내린 옷 구매 철학은, 저렴한 맛에 구입해서 한철 입고 버리는 싸구려가 아닌 좀 더 비싸도 질이 좋은 브랜드 제품을 사서 오래 입는 것이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양의 옷이 생긴다는 것 그만큼 쓰레기가 늘어난다는 거니까! 그렇게 생겨난 엄청난 쓰레기는 동식물을 죽게 하고 지구를 오염시키는 거니까! 근데 이렇게 열라리 구구절절 적었지만, 결론은 한 줄이다. 물건을 구매할 때는 최대한 신중하게 하자!
대표적인 국제구호단체의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면서 좋은 일을 한다는 단체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빠듯한 살림에도 기꺼이 낸 내 돈이 엉뚱한 사람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 될까 봐 걱정스러워졌다. 그래서 돈을 기부하는 것은 더더더 신중하게 고려하고 선택하겠지만, 이러한 물품 기부와 같은 시도는 한번 해보는 것도 손해는 아닌 것 같다.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