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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Apr 19. 2021

심리상담 이야기 2. 심리검사 결과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고 생각하자.

 2021.4.17. 일주일만에 다시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지난 1주일 동안 MMPI-2 와 TCI 검사지를 온라인으로 받아 제출했고 그 결과를 갖고 얘기하는 시간이었다. MMPI-2는 예전에 숨고에서 심리상담사님을 만나서 진행했던 검사이지만 상담을 도중에 포기하는 바람에 검사결과를 듣지 못했으니 처음하는 검사라고 할 수 있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쭉쭉 풀어나가니 체감상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금요일 업무시간이 끝나고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상담소가 있는 서울 한복판으로 향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너무할 정도로 북적거리는 2호선. 평소 출퇴근을 버스로 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와 본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 많은 곳은 여전히 싫다. 거침없는 보폭으로 최대한 빨리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상담시간이 9시인데 8시 59분이 되도록 앞 시간 상담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상담실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가 웅얼웅얼 들린다. 대화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두 사람이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소리는 계속 들린다. 그러고는 터져나오는 화기애애한 웃음소리. 저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왜 심리상담을 받는 걸까. 나처럼 벼랑 끝에서 시작해서 저만큼 회복이 된 걸까. 아니면 자뭇 심각한 얼굴로 내게 '심리상담소나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본 적 있느냐'는 매우 개인적인 상담을 요청해 묘한 동지애가 피어나게 만들더니 딱 두 번의 상담으로 그 깊은 고민이 다 해결됐다며 활짝 웃으며 좋아하던 직장 동료 P와 같은 사람인걸까. 아, 두 번의 상담으로 해결될 고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돈도 아낄 수 있고 여러모로 참 좋을텐데. 이 날 상담을 받으러 오기까지 일주일동안 많이도 울었다. 생각에 잠겨있다 울컥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아무 이유없이 눈물이 흘렀다.


 "오늘은 저번주에 제출해준 검사결과를 가지고 얘기를 해볼게요."

 한 주 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얘기가 나올 줄 알고 어디서부터 얘기할까 했는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실 지난 주에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말하고 싶은 게 많았다. 남자친구가 저녁약속이 있는 날이면 친구도 없이 혼자 있는 내 모습이 더 부각돼 극도로 불안해지는 것이나, 회사 상사가 그늘진 내 얼굴을 보고 걱정한답시고 지은 지 30년이 더 된 옛날 아파트에 혼자 살면 무섭지 않느냐는 둥, 술쳐먹고 옷벗고 돌아다니는 놈이 있지는 않냐는 둥,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어도 결혼은 비슷한 집안끼리 해야 편하다는 둥 불편한 얘기들을 다른 팀원까지 있는 자리에서 해댈 때 왜 그렇게 해맑은 얼굴로 맞다고 맞장구 쳐줬는지에 대해서. 뭐 거기까진 사회생활한다고 그럴 수 있다 치지만, 그러고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결국 못사는 집안 출신이라는 걸 자인한 거 같은 자괴감에 자리에 돌아와 혼자 남몰래 훌찌럭거리는 건 도대체 무슨 심리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한 주 동안 쌓인 불안과 분노와 슬픔에 버무려진 채 반쯤 넋이 나간 채로 검사 결과를 들었다. 기억을 최대한으로 끌어모아 남기는 나의 심리결과는 다음과 같다.


- 자기 절제력 낮음, 인내력 낮음, 사회불안 높음, 전통적인 여성상에 부합하려고 애씀, 위험부담을 갖지 않으려 함, 그에 반해 충동적인 경향 다소 높음,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어함, 나와 다른 상대방의 생각을 잘 수용하지 못함, 자기 감정에 확신을 갖지 못함, 참고 참다가 폭발하듯이 감정을 표출함 등


 대다수 너무 정확하게 맞는 설명이라 그냥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상담 선생님은  검사결과가 나를 100% 나타낸다고는   없다 했지만 평소에 생각해오던 문제점들이 검사 결과로 나오니까 덜컥 겁이 났다.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는 나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막막하고  그만 두고 싶어졌다. 나는 괴물인걸까.


 이런 심리상태가 된 원인을 찾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 얘기부터 해야했다. 선생님이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냐고 물었다. 한동안 대답할 수 없었다. 그건 너무도 막연한 질문이었다. 어떤 분들이었냐니. 그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한단 말인가. 너무 질문이 포괄적이라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동안 자꾸 상담을 일회성으로 받고 끝내버렸던 이유도 가족 얘기를 깊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고도 했다. 그렇게 가정환경에 대한 얘기는 다음주로 미뤄졌다.


 두번째 심리상담을 끝내고 오랜만에 부모님 댁에 갔다. 얼마 전 수술한 강아지가 너무 보고싶어서였다. 귀여운 우리집 강아지 방울이. 최근에 수술을 연달아 세 번을 했는데도 해맑다. 방울이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우리 가족은 긴 시간동안 아팠고 또 슬펐다. 어쩌다보니 강아지를 키우게 됐지만 어떻게 해야 강아지가 행복한 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방울이는 우리를 많이 좋아했고 감사하게도 14살이 된 지금까지 나름 건강하게 우리 곁에 있다.


 나는 아무한테도 보일  없는 눈물이 걷잡을  없이 터져버리는 날이면 방울이를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 방울이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도 있었지만 자기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돌아누워 쿨쿨 잠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그런대로  웃음이 새어나와 위로가 되곤 했다. 방울아, 이미 충분히 길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언니 안에는 아직도 이토록 슬픔이 가득  있는 걸까?


 현관문을 최대한 천천히 닫으면서 방울이의 얼굴을 보고 또 봤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어디 가냐고 묻는 것 같았다. 언니 또 올게. 잘 있어 방울아. 한참을 잡고 있던 손잡이를 놓고 돌아서는 데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집에 가는 내내 연신 눈물을 쏟았다. 나의 이런 어지러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날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화창했다. 문득 내가 이 따뜻한 봄바람을 맞을 자격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같은 건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엄마, 아빠는 한평생 허리가 휘도록 일만 하다가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 편안해지려고 하는데 큰 딸이 우울증이라니. 그러다 내가 중2때 돌아가신 작은외삼촌 생각이 났다. 삼촌도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이렇게 외로웠을까. 이렇게 스스로가 싫었을까?


*

 "자기야, 내가 너무 구제불능이어서 도저히 이 많은 문제들이 해결이 안되면 어떡하지? 너무 무서워."

 "시간이 걸릴거라 예상은 했잖아. 잠깐 앓아온 게 아니라 오랜시간 깊이 박혀있던 문제이기도 하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무엇보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없다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풀어나가보자."


이 얘기를 듣고 다음날 야근하면서 먹을 샐러드를 사러 마트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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