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나도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1)
2021.5.7. 이번 상담에서는 내 반드시 말하고 말리라. 도대체 상담에서 얻는 효과가 무엇인지, 어떤 원리로 어느 정도 괜찮은 상태가 될 수 있는건지, 그리고 나는 어디까지 진도가 나간 것인지를.
심리상담은 한 회기에 보통 8,9만원~10만원 초반대의 비용이 발생한다. 결코 대수롭지 않은 금액이 아니다. 나처럼 소소한 월급을 받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부담스러운 돈이며, 그래서 심리상담에서 하루빨리 얻어가는 게 있길 바라는 마음에 더 조급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한 주의 피곤을 온 몸에 짊어지고 상담센터로 향하는 길에 들었던 생각이다. 피같은 내 돈...그놈에 돈을 생각하면 내가 조금만 독해지면 되지 않을까, 마음이라는 건 결국 종이 한 장의 차이 아닐까. 종잇장 넘기 듯이 마음을 휙 하고 뒤집으면 되는건데 그걸 매 회 10만원돈을 주고 배우고 있다니. 그런데 과연 이 말을 상담선생님한테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과 함께.
"오늘은 저번주보다 얼굴이 확실히 좋아보이시네요. 이번 한 주는 좀 어떠셨어요?"
오면서 계획했던 소박한 쿠데타는 실행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그보다 더 하고싶었던 말을 먼저 해야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음...지금은 그냥저냥 괜찮은데 기분이 계속 왔다갔다 했어요 파도치듯이. 한없이 가라앉기도 하고 조금 기운이 올라오기도 하고요."
"한없이 가라앉는다 느꼈을 때는 특정한 일이 있었던 건가요?"
"네, 사실 엊그제 남자친구랑 조금 언쟁이 있었어요. 그거 땜에 다음 날 밤을 꼬박 샜을 정도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너무 힘들었어요."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 중 하나가 결혼한다 하여 청첩장을 준다기에 오랜만에 그 친구들을 만나고 나서 남자친구를 만났다. 원래는 평소에 주변 친구들 얘기를 잘 하지 않는 나다. 일상을 나눌 만큼 자주 만나는 이들도 없을 뿐더러 사람과의 관계가 너무 어려워져서 '친구'라는 말이 어느 순간 매우 어색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날 만났던 친구들은 워낙 친했던 사이이기도 하고, 그냥 내 주변 사람이라고 할 만한 몇 안되는 사람들 중에 하나이기도 해서(그렇다고 현재 내 삶에서 그렇게 의미가 크다는 건 아니지만) 남자친구에게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좀 물어봐주기를 바랬다. 이것저것. 그런데 이상하게 남자친구는 그날따라 자기 얘기를 그렇게 해댔다. 원래도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유난히 나는 더 들어줘야 했다. 하고싶은 얘기가 있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두 사람 중 한쪽의 대화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말 많은) 상대가 육체적 관계를 갖고 싶어할 때 (말 없는) 또 다른 상대가 느끼는 걷잡을 수 없는 공허함이다. 있는 힘을 다해 거부했다. 애써 그 시그널을 무시했고 웃지 않았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하고싶지 않다'는 의사표현을 에둘러서 했다. 차츰 남자친구도 백기를 들어갈 때 쯤 어깨가 아프다는 남자친구에게 같이 요가를 하자고 했다. 남자친구는 요가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고 열이 받은 나는 혼자 방에 들어가서 20분 간 요가를 하고 나왔다. 분위기가 매우 냉랭해졌다. 함께 나눌 수 있는 게 많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대화도 일방적, 같이 운동도 안하겠다, 그럼 나랑 하고 싶은 건 오직 섹스란 말인가?
안되겠다 싶어 남자친구를 불러놓고 말했다. 나랑 하고 싶은 게 뭐냐고. 있기나 하냐고. 오늘같은 날 하고싶은 얘기가 많았는데 어쩜 그렇게 질문 하나 안하고 자기 얘기만 하느냐고. 나한테 그렇게 궁금한 게 없느냐고. 그러고 나서 나랑 하고 싶은 건 오직 몸을 탐하는 것밖에 없는 거냐고. 남자친구는 자기가 좀 더 관심을 갖고 물어봤어야 했는데 미안하다면서도 대화를 할 때 좀 더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나하나 물어봐줘야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내 얘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대화 주제가 남자친구에 관한 것으로 바뀌었는데 갑자기 또 내 얘기를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던 얘기가 있는데 갑자기 손들고 "어! 나 하고싶은 얘기 있어! 잠깐만." 이렇게 하라고?
그랬더니 남자친구는 자기는 그게 된단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무조건 하고 보고, 문맥이며 분위기며 신경쓰지 않고 나랑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우리 둘 사이에서는 대화의 규칙이나 매너같은 거 신경쓰지 않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거 아니냐며 내가 살면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대화 방식을 요구했다.
생각해보면 내 얘기를 하다가 남자친구 얘기로 넘어가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데, 한 번 바뀐 대화의 흐름을 다시 내 쪽으로 가져오는 건 세상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난 수고스럽게 다시 내 얘기로 방향을 트는 대신 남자친구 얘기를 성심성의껏 들어주는 편을 선택했다. 보통은 그렇게 되도 큰 문제가 없는데 가끔가다 그게 그렇게 서운한 날이 있다. 나는 얘기하고 싶지 않은 줄 아나? 내 얘기에 이렇게 관심이 없다고? 하는 서운함.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것이다. 남자친구에게 나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그걸 기꺼이 받아들일 사람이지만 과연 내가 할 얘기가 있냐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가 있었다.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하면서도 막상 멍석을 깔아주면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는데 막상 내 차례가 오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 지 모르겠고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마치 나 너와 대화하고 싶지 않아, 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그리고 말을 해도 보통은 길어야 두 세 문장에서 할 말이 끝나곤 했다. 여기서 시작된 고민이 날밤을 새게 만들었다.
"역시 내가 문제야. 모든 문제는 나한테서 시작해. 할 말도 없으면서 상대방이 나한테 물어봐주길 바라는 건 무슨 모순이야. 남자친구더러 어쩌라는 건지. 진짜 문제야 나는..."
"OO씨는, 항상 본인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이신가요?"
"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보통 제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내가 잘못해서, 내가 속이 좁아서, 내가 소심해서 등등...다 제가 문제여서 그런 문제들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편이예요."
"그렇게 본인이 문제라고 생각해왔다면 그동안 사는 게 너무 힘들었을 거 같네요. 그럼 지금까지 그렇게 본인이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OO씨를 살아있게 해준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은 작년 이맘때 쯤 정신과 의사선생님한테서도 들었던 이야기다. 그때 그 의사선생님도 도대체 그런 상태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느냐고 물었다. 종교가 있는 것인지, 누군가 나를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때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종교도 없고 나를 믿어준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혹시 OO씨를 전적으로 믿어준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때와 마찬가지로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잘해야 한다'는 채찍질과 그걸 해냈을 때 칭찬을 받아본 적은 있지만 그런 조건없이 나를 믿어준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없었던 것 같다고 했고, 상담선생님은 그래도 가만히 기다렸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듯 천천히 지난 시간들을 되짚었을 때 스물네 살의 내가 만났던 한 분이 떠올랐다.
"스물네 살 때 영어학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을 때 학원 부원장 선생님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