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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Feb 06. 2023

생일케익 없는 생일에 대하여

외로움에 대한 고찰 - 서문  

 다정한 바람이 뺨을 간지럽히던 나른한 어느 봄날의 오후. TV에서는 세기의 결혼식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2011년 4월 29일, 영국 왕실의 윌리엄 왕세손과 그의 오랜 연인이었던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전 세계 20억 명이 시청할 것이라는 화제의 그 결혼식을 21살의 나도 오도카니 혼자 방에 앉아 보고 있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나의 생일의 역사는 대충 이러하다. 초등학교 때는 엄마의 주도 아래 동네 피자가게나 햄버거집에 반 친구들 몇 명을 불러 모아놓고 ‘축하 받는 날’의 외양을 얼추 갖춘 생일을 두어 번 보냈다. 친구들에게서 생일 축하 노래와 선물도 종종 받았다. 고학년이 되니 내 생일파티 전선에서 엄마는 슬그머니 은퇴를 해버렸다(딸의 사춘기라는 구단주와의 잦은 마찰로 강제 은퇴를 한 것일수도 있다). 중학생이 되자 하필 중간고사 기간 때마다 생일이 끼게 되는 안타까운 형국이 되었다. 친구들 중 누구도 내 생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듯 했다. 대학의 중간고사는 생일보다 일주일이나 먼저 끝났지만 생일 때 절친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는, 진부하지만 그래도 마냥 좋을 것 같은 그런 류의 축하는 받아본 적이 없다. 


 대신 위에서 말했듯 생면부지 유명인의 결혼식과 함께하거나, 생일에도 여지없이 평소처럼 저녁 알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이라는 책(‘인기없는 존재들을 위하여’라는 목차가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을 사서 집에 들어와 읽거나, 다음날 학교 수업을 종종 빼먹음으로써 어제 생일을 어떻게 보냈냐는 다른 사람들의 열정적인 물음으로부터 냅다 도망치거나 하는 식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지금도 비슷하다. 같이 사는 가족들 말고는 생일에 나는 거의 혼자였다. 물론 지금은 나를 무척이나 좋아해주는 연인이 있지만 그런 애정관계와 친구들과의 우정은 분명 다르다. 그걸로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범주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 말하고 싶은 건 생일이 아니라 마음을 온전히 터놓고 편히 지낼 수 있는 친구의 부재이다. 친구들과의 진한 우정을 알 턱이 없는 사람에게는 생일을 같이 즐겁게 보낼 수 있는 한 줌의 친구들이 곧 우정이요, 삶이 낙이겠거니 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나는 왜 친구가 없을까에 대한 물음은 20대 내내 나를 수렁에 빠뜨린 그림자였다. 그 그림자는 자기혐오, 자신감 부족, 의기소침 등의 가면을 쓰고 내가 더욱더 세상에 나갈 수 없도록, 자꾸 자기만의 세상에 갇히도록 만들었다. 30대가 된 지금, 겉으로 보기엔 남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한 직장생활을 한다. 업무적으로 교류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20대 때보다는 아주 조금  인간관계가 넓어지긴 했지만 친밀한 관계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부지불식간에 외로움에 압도될 때가 종종 있지만 이제는 남들 앞에서 ‘친구가 그리 많지는 않아요’라고 은근슬쩍 속사정을 내비칠 수 있는 정도의 솔직함이 생겼다. 사실 친구가 전혀 없다는 표현이 훨씬 정확한데 ‘그리 많지 않아요’라고 말함으로써 자존심에 스크래치나는 걸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또 요즘 유행하는 MBTI의 흐름에 편승해 친구 없음과 그로 인한 외로움을 어찌할 수 없는 타고난 성격의 일부로 밀고나가는 나름대로의 받아들임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솔직한 것은 내가 그다지 솔직한 사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나는 한번도 다른 사람과 나 사이에 벽을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는 철의 장막이 있다. 돌이켜보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이 항상 거기 있었다. 가능한 한 ‘정상적으로 보이고, 심지어 잘나 보이는’ 쪽으로 나를 포장해서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는 시도가 내가 아는 인간관계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런 말도 안되는 얄팍한 거짓부렁을 다른 사람들이 모를 리 없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무섭고 어려웠다. 그들은 내 속을 나보다도 훨씬 잘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이러한 상태로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영겁과 같은 그 시간과 번뇌의 퇴적층을 일일이 다 헤집어놓고 근본을 찾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성격이 안 좋아서, 잘 보이고만 싶어서, 타고난 수줍음 때문에, 체력이 딸려서 등등-나는 외로움에 이따금 압도당한다. 아니 어쩌면 나는 혼자 있는 걸 원래 좋아하는 사람인 건 아닐까? 그치만 감당하기 힘든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그 수많은 밤은 어떻게 설명할거지? ("그만, 그만 좀 하자!")

 

 언제나처럼 약속이 없는 주말.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 광고 문자 말고는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애써 외면하며 오늘도 책 속으로 나를 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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