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교야구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규칙 - 4)
(수정: BBCOR, USSSA, USA Baseball 인증 배트 부분. BBCOR 수치와 BPF 수치는 각기 다른 것이기에 USSSA 인증 배트가 1.15의 BBCOR값을 갖는다는 부분을 삭제)
(수정2: 리스판스 배트가 BESR 인증 이후 만들어진 배트이기에 이 부분 삭제)
(수정3: 박병호가 사용한 배트가 TPX Vapor이기에 수정)
(수정4: BPF 계측 방식 추가)
(수정5: 금속 -> 비목재)
2022년 8월 미국 아마추어 야구계에 조그마한 소동이 일어났다. 2022년 미국 고교와 대학 야구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배트 중 하나이자 미국의 유명 야구 배트 리뷰어 Baseball Bat Bros가 리뷰 영상을 두 개나 올릴 정도로 극찬한 배트 Stinger Missile 2의 33/30 버전이 미국 고교와 대학 야구에서 퇴출당한 것이다. NCAA(전미대학체육협회)는 Stinger Missile 2 33/30에 대한 임의 성능 검사를 진행한 결과 BBCOR 규정을 초과하는 반발력 계수가 계측되었고, 이에 따라 이 배트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NCAA는 이 결과를 NFHS(미국고등학교체육연맹)와 공유했고, NFHS 역시 곧바로 고교 야구에서 Stinger Missile 2 33/30의 사용 금지를 공표했다. 아마추어 선수의 상당수가 33인치 배트를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NCAA와 NFHS의 이번 결정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대체 미국 아마추어 야구계는 왜 이 배트를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을까? 그런 의미로 오늘은 어떤 관점에서는 특이하기도 어떤 관점에서는 전혀 특이하지 않은 규정이지만,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규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NFHS Rules Book에 나와 있는 배트 규정이다.
NFHS Baseball Rules Book
1-3 BATS, BALLS AND GLOVES
ART.2...a Each legal wood, aluminum or composite bat shall:
1-3 배트, 공, 글러브
2조...a 사용할 수 있는 나무, 알루미늄, 컴퍼짓 배트는 다음과 같다.
벌써부터 특이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고교야구에서는 나무 배트, 알루미늄 배트, 컴퍼짓 배트가 공존할 수 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은 독자가 대부분일 것이다. 왜냐하면 알루미늄 혹은 컴퍼짓 배트과 같은 비목재 배트 나무 배트보다 더 강하고 빠른 타구를 내보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누가 고교야구에서 비거리와 타구 속도 손해를 보게 나무 배트를 사용하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규정을 더 읽어보자.
NFHS Baseball Rules Book
1-3 BATS, BALLS AND GLOVES
ART.2...d Bats that are not made of a single piece of wood shall meet the Batted Ball Coefficient of Restitution (BBCOR) performance standard, and such bat shall be labeled with a silkscreen or other permanent certification mark. No BBCOR label, sticker or decal will be accepted on any non-wood bat.
1-3 배트, 공, 글러브
2조...d 하나의 목재로 만들어지지 않은 배트는 반발계수(BBCOR) 규정을 준수해야 하며, 규정배트에는 실크스크린 혹은 다른 영구적인 방식으로 인증 마크 표시가 있어야 한다. 비목재 배트에 붙어 있는 BBCOR 라벨, 스티커, 혹은 데칼을 허용하지 않는다.
첫 문단에서 언급한 Stinger Missile 2 33/30이 퇴출된 사유, BBCOR 규정 준수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하나의 목재'로 만들어지지 않은 배트, 즉 하이브리드 나무 배트, 알루미늄 배트, 컴퍼짓 배트에는 BBCOR 규정을 통과했다는 마크가 있어야만 경기에서 사용할 수 있다. 그럼 BBCOR란 무엇일까? BBCOR는 NCAA가 고안한 배트 반발력 계수로, 날아오는 공이 배트에 맞고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상실하는지 측정한 것이다. 2011년 1월 1일부터 NCAA에서는 배트의 BBCOR가 0.500 이하를 기록한 배트만 경기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어 NFHS도 2012년 1월 1일부터 BBCOR 인증 배트만 고교 야구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미국 아마추어 야구에서 BBCOR 이전에 BESR(Ball Exit Speed Ratio)이라는 배트 규제가 있었다. BESR은 타구 속도를 공의 속도와 배트의 속도를 합한 것으로 나눴을 때 나오는 수치로, 흔히 '97mph' 규제라고 불렸다. 왜냐하면 인증 과정에서 비목재 배트의 타구 속도가 97mph를 넘지 않으면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BESR은 미국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2003년 1월 1일부터 사용되어 BBCOR가 도입되기 전까지 사용된 후 퇴출당했다. 왜일까?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새로운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무엇 때문에 BESR과 BBCOR가 나온 것일까? 첫째도, 둘째도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배트 규제가 도입되기 전, 배트 제조사는 정말 다각도로 비목재 재료 연구하면서 세계 최강의 너도나도 배트를 만들어냈다. 도깨비 방망이로 불리는 Easton Z2K, 박병호가 고교 시절 4연타석 홈런을 칠 때 함께한 TPX Vapor 등이 출시되면서 아마추어 야구계는 타고투저 현상이 심해졌고 타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다치는 선수가 늘어났다. 비목재 배트 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그 과정에서 2000년대 초반 등장한 것이 BESR이었다.
BESR이 새로운 배트 규제로 등장했지만, 이 규제는 10년도 버티지 못했다. 왜냐하면 BESR은 오로지 타구 속도만 계산했기 때문에 BESR배트는 미규제 배트보다는 강력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힘이 실린 타구를 계속 생산할 수 있었다. 특히 BESR배트는 배트 끝에 맞아도 힘이 실렸기에 여전히 나무 배트와 다른 차원의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야구 배트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컴퍼짓 배트의 특이한 특성이 BESR 규제의 발목을 잡았다. 컴퍼짓 배트의 성분인 카본 섬유는 충격을 받을수록 강해지는 성질이 있는데, 그로 인해 신상품 배트를 가지고 검사를 받을 때와 '길들여진' 배트와의 성능 차이가 크게 났기 때문이다. NCAA와 NFHS는 결국 2010년 BESR 인증을 받은 컴퍼짓 배트를 모두 금지하기에 이르렀고, 미국 아마추어 야구계에서는 나무 배트에 근접한 비목재 배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나왔다. 그리고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BBCOR이다.
BBCOR 규제는 비목재 배트가 프로 선수들이 사용하는 나무 배트와 비슷한 성능을 갖도록 규정하는 것이 목적이다. BBCOR 인증 배트는 기존 비목재 배트가 보여준 성능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BESR 인증 배트로 친 타구와 BBCOR 인증 배트로 친 타구의 평균 타구 속도를 비교했을 때, BBCOR 인증 배트의 평균 타구 속도는 전자가 만들어 낸 속도보다 5% 느렸다. 또한 BBCOR 인증을 받기 위해서 만들어진 배트는 스윗 스팟의 크키가 BESR 인증 배트보다 2인치가량 작았다.
0.500이라는 수치는 상당히 낮은 것으로, BBCOR 인증을 받은 배트는 같은 비목재 배트 사이에서도 성능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Baseball Bat Bros는 시중에서 가장 최고로 잘 나가는 BBCOR 인증 배트와 미국 아마추어 야구, 특히 유소년 야구를 위한 다른 배트 규제인 USSSA 인증 배트, USA Baseball 인증 배트를 가지고 비교 시연을 선보였는데, USSSA 배트가 가장 빠른 타구 속도를 보여줬다. BBCOR 인증 배트가 만들어 낸 타구 속도는 USSSA 배트가 만들어 낸 평균 타구 속도보다 무려 10mph나 낮게 측정되었다.
(주: 시연에 사용한 USSSA 인증 배트와 USA Baseball 인증 배트는 5드랍이고, BBCOR 인증 배트는 3드랍이다. USSSA는 BPF(Bat Performance Factor)라는 다른 기준을 사용하며, 1.15라는 계수 이하의 배트만 통과할 수 있다. 2018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USA Baseball 배트 규제는 BBCOR 규제처럼 비목 배트가 나무 배트와 유사한 성능을 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BBCOR 규제와 달리 USA Baseball 규제는 드랍 제한이 없기에 5드랍, 8드랍, 10드랍 배트도 인증을 받을 수 있다 USA Baseball은 BBCOR 인증 배트와 USA Baseball 인증 배트의 성능이 거의 동일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나무가 아닌 재질 만들어진 배트의 성능을 나무 배트와 유사하게 만드는 것이 BBCOR 규제다. 미국 아마추어 야구계가 오랫동안 학생 선수들이 안전하게 공놀이를 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만들어 낸 결과이다. 우리나라 아마추어 야구가 '안전' 이라는 목적이라면서 현재 시행 중인 배트 규제와는 확연히 다른 규제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99%가 배트 재질, 즉 알로이냐 컴퍼짓이냐를 가지고 배트가 규제 대상인지 판단한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매년 사진을 첨부하며 어떤 배트만 '사용 가능'한지 목록을 업데이트하는데, 2023년 공인 배트(비목재) 목록을 보면 모든 배트의 소재가 알로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컴퍼짓 배트가 알로이 배트보다 더 파괴적이라는 잘못된 상식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링크 연결 기능이 작동하지 않음으로 주소 복사 후 확인 요망 http://www.korea-baseball.com/board/exec/down?board_idx=4&file_idx=14478)
물론 우리나라도 시행 중인 우리나라만의 배트 기준이 있다. KBN 1.21이라 불리는 기준인데, 이 수치는 반발 계수가 아니라 배트의 특정 부위에 1.21mm의 압축을 가한 후 하중을 측정한 값이다. (링크 연결 기능이 작동하지 않음으로 주소 복사 후 확인 요망 https://www.korea-baseball.com/board/exec/down?board_idx=4&file_idx=14223) 그러나 값이 선수 안전하고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선수 안전과 직결되는 것은 배트에 맞아 나가는 공인데, 인증 과정에서 배트와 공은 만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사회인 야구에서 홈런 만들기 좋은 배트라고 정평이 난 배트들이 모두 KBN 1.21을 통과한 공인 배트로 등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실명 사고를 일으킨 후 전국에서 금지 배트 대상에 오른 이른바 단무지(Easton XL1) 배트는 당연히 공인 목록에 없다.)
근데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어차피 프로에서 나무 배트를 써야 하는데, 비목재 배트와 나무 배트의 성능 차가 별로 없다면 왜 비목재 배트를 쓰지?' 답은 '경제성'이다. 물론 비목 배트도 오래 사용하다 보면 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나의 목재로 만들어진 배트보다는 내구성이 좋기 때문에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절충점으로 등장한 것이 하이브리드 나무 배트로, 나무 배트의 타격감을 느낄 수 있으면서 동시에 내구성을 보완한 제품이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하이브리드 나무 배트는 BBCOR 인증을 받아야만 정식 경기에서 사용할 수 있다.
NFHS 배트 규정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배트의 반발력 계수 측면에서만 초점을 맞춰왔는데, 이는 사실 미국 아마추어 배트 규정을 관통하는 세 가지 핵심 중 고작 한 측면만 이야기한 것이다. 남은 두 개의 핵심은 바로 '크기와 드랍 규정'과 '배트 변형 금지 규정'이다. NCAA와 NFHS 규정에 따르면 하나의 목재로 만들어지지 않은 배트는 배럴의 지름이 2 5/8인치 이하여야 하고 배트의 최대 길이가 36인치를 넘을 수 없다. 또한 배트의 길이(in)와 배트의 무게(oz)의 차이가 3 이하여야 한다. (3드랍) 그러나 배럴의 지름이 2.625in(=2 5/8인치)이하이며 동시에 3드랍 이하인 배트만 BBCOR 인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BBCOR 인증을 받은 배트는 당연히 이 규정을 통과한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크기와 드랍 부분과 관련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참고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공인한 비목재 배트(16세 이하, 동호인부)는 모두 배럴의 지름이 2 3/4인치이고 5드랍 배트이다.
그리고 하나의 목재로 만들어지지 않은 배트를 사용할 때는 제조사가 제작한 상품을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 즉, 비목 배트를 길들이는 방식인 롤링, 배트 안쪽을 깎아서 탄성을 높이는 쉐이빙 등 '닥터링(Doctoring)'를 해서는 안 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컴퍼짓 배트는 길들일수록 파괴력이 강력해지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략 300~500번의 타격이 필요하다고 한다. NFHS는 닥터링이 범죄 행위라고 Rules Book에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과 유사한 내용이 공식야구규칙에 명시되어 있기에 때문에 고교야구만의 특이한 규칙이 아니라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WBC에서 믿기지 않는 3연속 1라운드 탈락을 맛본 후, 국내 야구계에서는 아마추어 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 사용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연일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비목재 배트를 사용할 준비가 과연 되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과연 우리나라 야구계가 비목재 배트를 도입한 후 NCAA와 NFHS가 Stinger Missile 2 33/30을 금지한 것처럼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독립적인 배트 성능 시험 기관이 공정한 방식으로 배트를 인증할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까? 혹시 미국의 BBCOR 제도를 직수입하면, 그러면 우리나라 고교야구 시장이 계속 미국산 BBCOR 배트를 수입해 사용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할 수 있을까?
미국 아마추어 스포츠계는 지난 수십 년간 학생 선수가 ‘안전하고 즐겁게 운동을 하면서 바람직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해 왔다. 우리나라 야구계도 선수들이 안전하게, 오랫동안, 그리고 즐겁게 뛸 수 있는 환경이라는 목적으로 알루미늄 배트 사용을 고민하고 있을까?
필자는 궁극적으로는 고교 선수가 비목재 배트를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게 학생 선수가 야구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아마추어 야구에서 잘 나가는 비목재 배트의 가격이 약 $400에 형성되어 있으며 나무 배트는 $150에 형성되어 있다. (세금 제외) 사용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무 배트가 한 달에 한 번꼴로 부러진다고 치면, 석 달이면 이미 비목재 배트 한 자루 이상의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학생 선수에게나 학부모에게나 지속적인 소모품 지출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부담이 쌓이다 보면 나무 배트를 망가트리지 않기 위한 소극적인 움직임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마음 속 한 켠에 배트를 부러뜨리면 안 된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타자는 거침없는 스윙을 보여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