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강산갈래 Mar 04. 2023

오늘은 내가 우리 팀의 오타니!

(미국 고교야구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규칙 - 3)

 이 글은 코치라운드 뉴스레터 제50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오타니 쇼헤이(Ohtani Shohei)의 전설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이미 그가 야구계에 남긴 영향은 상당하다. 한 경기에서 선발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하려는 선수를 위해 메이저리그는 공식 규칙(OBR)에 투타겸업 선수를 위한 규정을 신설했다. 선발투수이자 타자인 선수는 마운드에서 내려가더라도 지명타자의 지위를 누리면서 경기 끝까지 타순을 지킬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메이저리그를 다루는 게임 MLB The Show 22에서도 오타니의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투타겸업 시스템이 추가되었다. 이전 시리즈까지는 완전체(?) 오타니를 사용할 수 없었다면, 이제는 게임에서도 투타 만능 선수를 육성하거나 플레이할 수 있다. 


내가 표지로 나온 시리즈인데, 당연 나를 위한 시스템도 추가해야 는 거 아냐?


 하지만 미국 고등학교 야구에서는 OBR에 오타니 룰이 신설된 2022년보다 2년 앞선 2020년에 투타겸업 선수를 위한 규칙이 제정되었다. 더 나아가 OBR은 투수와 지명타자 겸업만 허용하지만, 고교야구 규칙에서는 어떤 야수도 지명타자 역할을 겸할 수 있다.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하는 미국 고교야구의 특이한 규칙, Player/DH 제도 덕분이다.


  Player/DH. 한국어로 하면 '지명타자 겸업 선수'라고 부를 수 있겠다. 한국 야구계에게 이 규칙은 앞 두 글에서 설명했던 '지명주자', '재출장 규칙' 보다 더욱더 낯설 규칙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투수부터 우익수까지, 수비번호 1번부터 9번까지 어떤 선수든 지명타자를 겸직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규칙이다. 다른 측면을 이야기하자면, 전통적인 지명타자 제도에는 선발 라인업에 10명의 이름이 적힌다면, '지명타자 겸업 선수' 제도를 사용하면 9명의 선수가 선발 라인업에 적힌다.    


NFHS Baseball Rules Book

3-1 SUBSTITUTING

ART. 4...b The starting designated hitter may be any one of the starting defensive players. In this manner, the starting defensive player has two positions; the defensive player and the designated hitter. 


3-1 선수 교체

4조...b 선발 출장하는 지명타자는 선발 출장하는 야수가 될 수 있다. 이 방식을 선택한다면, 선발 출장 야수는 는 자신의 수비 위치와 지명타자라는 두 가지 포지션을 갖는다. 


 물론 어떻게 쓰이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지명타자 겸업 선수' 규칙 또한 '지명주자'와 '재출장 규칙'처럼 아직 한쪽 능력이 부족한 선수가 경기에 나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타격이 강력하지만 수비가 다소 아쉬운 선수 A가 경기에 선발 출전해 경기 초반 타격과 수비 모두 담당하다가, 후반 더욱 탄탄한 수비가 필요하다면 A를 대신해 "전문 수비수"가 경기에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교체를 하더라도, 타격이 강력한 A는 경기 마지막까지 자신의 타순을 지킬 수 있다. 


 '지명타자 겸업 선수' 규칙을 더 읽어보자.  


NFHS Baseball Rules Book

3-1 SUBSTITUTING

ART. 4...b The role of the defensive player may be substituted for by any legal substitute. If the defensive player has been substitued for, the original player/DH may re-enter one time. 


3-1 선수 교체

4조...b 언제든지 정당한 교체 방식을 통해 야수 역할을 맡은 선수를 교체할 수 있다. '지명타자 겸업 선수'는 한 번에 한해 재출장해 야수 역할을 다시 맡을 수 있다. 


 지난 화에 언급한 재출장 규칙이 여기에서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서 유격수와 지명타자를 겸업하는 5번타자 A라는 선수를 대신해 3회초 수비에서 B라는 선수가 유격수 자리에 들어섰다고 하자. A는 그대로 5번 타순을 지키게 되며 B라는 선수는 타격을 하지 않는다. 4회초 수비 때 휴식을 취한 A 선수는 5회초 다시 수비를 다시 나설 수 있으며, 이 때 수비 위치는 어디로 가든 상관이 없다. 6회초 A를 대신해 C라는 선수가 수비를 하러 출전했다면, A는 더 이상 이 경기에서는 수비를 할 수 없다. 


 다음은 '지명타자 겸업 선수'의 소멸 방식에 대해 알아보자.

 


NFHS Baseball Rules Book

3-1 SUBSTITUTING

ART. 4...b The role of the DH is terminated for the remainder of the game when:

                 1. A substitute or former substitute for the defensive role subsequently participates                           in an offensive role; or

                 2. The starting defensvie player/DH is sustituted for either as a hitter or a runner. 


3-1 선수 교체

4조...b 다음의 경우 남은 경기 동안 지명타자가 소멸된다.

            1. 수비 역할을 맡은 선수가 공격을 하게 될 때

            2. 선발 출장한 '지명타자 겸업 선수'가 대타 혹은 대주자와 교체되었을 때. 


 일반적인 지명타자 제도의 경우, 지명타자 자리에 대타 혹은 대주자를 투입한다고 해서 지명타자 제도가 사라지지 않는다. 지명타자 위치에 있는 선수가 수비에 나서거나, 혹은 지명타자에게 타격을 맡긴 선수가(보통은 투수) 타석에 들어선다면 지명타자가 소멸된다. 하지만 '지명타자 겸업 선수' 제도를 사용하고 있다면, 선발 출장한 지명타자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공격에서 제외가 된다면 지명타자가 소멸된다. 예를 들어서 '지명타자 겸업 선수'인 투수/타자 A가 강판되어 다른 투수 B가 등판하더라도 지명타자는 살아남지만, A 대신 C가 타석에 들어선다면 지명타자는 사라진다. 


 그러면 1화, 2화에 나온 규칙을 더해 '지명타자 겸업 규칙'을 좀 더 심층적으로 다뤄보자. 다음 내용은 미국 스포츠 심판 전문 잡지인 Referee.com에서 정리한 Player/DH Cheat Sheet이다. 



Davis 선수: 4번타자 1루수/지명타자

Davis 대신 지명타자를 누군가가 지명타자를 할 수 있는가? X => 지명타자 소멸 

Davis 대신 수비를 한 선수가 4번타자가 아닌 다른 타순에 출전할 수 있는가? X => 부정한 선수 교체

Davis가 두 번 이상 수비 역할을 맡기 위해 재출장할 수 있는가? X => 부정한 선수 교체

Davis가 지명주자를 활용할 수 있는가? X => 대주자는 가능, 그러면 지명타자 소멸 및 Davis 경기 제외

Davis와 Davis의 수비 역할을 맡은 선수가 동시에 수비를 할 수 있는가? X => 부정한 선수 교체



 마지막으로 NFHS Case Book에 나온 다소 복잡한 상황을 보자.

 


NHFS Baseball Case Book


DESIGNATED HITTER (DH)

3.1.4 SITUATION I:

In the fourth inning, Montalbo replaces Colgate as the starting P/DH as pitcher. In the fifth inning, Colgate sprains an ankle while sliding into second base on a double. Colgate cannot continue and requires a pinch-runner


지명타자(DH)

3.1.4. 상황 I:

4회, 몬탈보가 투수/지명타자인 콜게이트를 대신해 투수로 등판했다. 5회, 콜게이트가 2루타를 치고 2루에 슬라이딩을 하다가 발목을 접질렸다. 콜게이트는 더 이상 경기에 뛸 수 없고 대주자가 필요했다. 


 사례집의 해설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콜게이트를 대신해 대주자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면 지명타자는 소멸하고 콜게이트는 경기에서 제외된다.   

 2. 몬탈보가 콜게이트 대신 대주자로 나설 수 있다. 몬탈보는 투구를 이어갈 수 있고, 콜게이트 타순에서 타격을 할 수 있다.

 3. 몬탈보 대신 다른 선수를 대주자로 사용할 수 있다. 대주자가 콜게이트 타순에 들어서게 되고 이러면 몬탈보는 투구를 이어갈 수 없다. 


+@: 몬탈보는 투수/지명타자기 때문에 지명주자를 활용할 수 없다. 



 실제 현장에서는 오타니가 선발투수와 지명타자를 겸업하듯이 팀의 선발투수가 지명타자를 겸업하는 경우가 가장 많이 나온다. 아무래도 고교 팀에서는 가장 운동신경이 출중한 선수가 투수를 맡는 편이고, 그런 선수가 타격도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다. 선발투수의 체력이 다했거나, 혹은 규정 투구수를 초과한 상태에서 선발투수로 출전한 선수는 수비 때 휴식을 취하면서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다. 


 야수/지명타자는 많이 사용되지 않는데, 전통적인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데 수비를 잘 못하지만 타격은 일품인 선수에게 굳이 수비를 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미국 고교야구만의 '전통적인' 지명타자 규정의 특징이 드러난다. 



NFHS Baseball Rules Book

3-1 SUBSTITUTING

ART. 4...a The designated hitter may be a 10th starter hitting for any one of the nine starting defensive players. 


3-1 선수 교체

4조...a 지명타자는 10번째 선발 출장 선수로, 선발 출장한 야수 누구든 대신해 타격할 수 있다. 


 그렇다! 미국 고교야구에서는 지명타자가 투수뿐만이 아니라 어떤 야수를 대신해서 타격할 수 있다. 우익수의 지명타자, 2루수의 지명타자가 가능하다. 다른 각도로 이야기하자면, 위와 같은 지명타자 규칙 덕분에 수비만 특출나게 하는 선수도 선발 출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번 글에서는 야구인에게는 친숙한 지명타자 제도가 어떤 다른 모습으로 미국 고교야구에서 사용되는지 알아봤다. 앞서 소개한 두 가지 규칙과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 고교야구에서 운용되는 지명타자 규칙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선수가 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지명타자 겸업 선수' 규정은 선발 출장하는 선수를 9명으로 고정하지만, 타격이 약간 부족한 선수가 경기 중반에 야수로 부담 없이 출전할 수 있도록 해준다. 전통적인 지명타자 제도는 어떤 야수를 대신해 다른 선수가 타격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주기에 선수 운용의 폭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지명타자 겸업 선수' 규칙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규칙이기 때문에 아직 이 규칙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팀들이 이 규칙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한 사례와 연구가 더 필요하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2020-2021 학년에 경기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세 번째 해를 맞이한 규칙으로, 여전히 이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감독과 선수가 많으며, 심지어 심판도 많다. (실제로 매 년 치러지는 심판 재교육 시험에 Player/DH 규칙 비중이 상당히 크다) 특히 고교야구에 익숙하지 않은 신입 심판들이 자주 잘못을 저지르는 규칙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미국 고교야구는 매 년 규칙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야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스포츠도 규칙이 매 년 바뀐다. NFHS의 규칙위원회는 매 년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 학생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든다. 야구를 예를 들자면, 2022-2023년에는 와인드업/셋포지션에 대한 정의가 새로 내려졌고(이에 대해서는 차후 글을 통해 설명), 선수는 장신구를 착용할 수 없다는 규정이 삭제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KBO가 사용하는 규칙 책과 고교야구가 사용하는 규칙책이 동일하다. 로컬 룰, 특수 룰이라고 별도의 문서와 부칙이 추가될 뿐, 고교야구만 사용하는 고유한 규칙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이 체육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특별한 환경을 만드는 위원회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현장에서의 혼동을 줄이기 위해 아마추어와 프로가 같은 규칙을 쓰는 것이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 학생 체육이 프로 선수를 양성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만 취급되는 것이 아닌지라는 걱정이 든다. 학생 시절 체육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학생만을 위한 규칙을 다 같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심판은 코치의 친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