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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강산갈래 May 16. 2023

[땡큐, 블루!] 야구를 하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下

공놀이가 너무 좋아 멈출 수 없는 사람의 심판 이야기 - 4화

 바야흐로 2014년이 밝았습니다. 스누리그 사무국장이 된 저는 2014년 시즌 대표자회의에 앞서 저의 야심찬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하면서 여론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누리그에서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대표자회의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만 했기에, 가맹팀 대표들에게 저의 계획을 상세하고 친절하게 소개했습니다. 어떤 계획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매우 중요한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대표자회의를 개최하기 전, 서울대학교 체육부로부터 상당히 놀라운 소식을 전달받습니다. 서울대학교 야구장에서 공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2014년 서울대학교 야구장 공사. (주)풍산의 지원을 받아 우측에 있는 거암 제거, 내외야 그물망을 설치, 라이트 교체 등의 시설 개선이 이뤄졌다. 

 서울대학교 야구장은 태생적으로 기형적이었습니다. 우측 외야는 큰 돌을 비롯해 언덕이 있어서 상당히 좁고 위험했습니다. 좌측 외야는 입학본부(150동)가 있어 역시 짧지만 이른바 '관악몬스터'라고 불리는 철창이 높게 쳐져 있었습니다. 포수 뒤에는 백스탑만 있었으며, 야구장을 아우르는 그물망은 없었습니다. 조명탑이 있기는 했지만 조도가 낮고 조명의 숫자가 적어 야간에 경기하기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인근 차량의 피해가 심했고, 저녁 경기에는 부상자가 속출했습니다. 경기 중 우익수의 안전 문제도 항상 제기되었습니다.  


 저의 전전 사무국장인 정도원 사무국장은 위와 같은 열악한 시설을 개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진행해 다수의 서울대학교 학생 및 구성원이 야구장 개선을 원한다는 의견을 취합했습니다. 그 결과 정 사무국장은 당시 서울대학교 총장과 면담을 진행할 수 있었고, 서울대학교의 시설 개선 목록에 야구장 개선이 당당하게 포함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야구를 사랑하는 기업인 중 한 명인 류진 (주)풍산 회장님께서 야구장 시설 개선에 큰 보탬을 주셨습니다. 원래 서울대학교의 시설 개선에는 우측 거암 제거와 그물망 설치만 있었지만, 류진 회장님의 기부 덕분에 새로운 조명탑이 세워졌으며, 조명탑의 개수도 늘어났습니다.  


 다만 문제는 공사의 시점이었습니다. 산에 있는 서울대학교의 특성상 한겨울에는 땅이 얼어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스누리그는 보통 개학 전후인 2월 말~3월 초에 개막하고는 했는데, 공사가 2월부터 진행되었습니다. 시설 개선 공사는 약 3개월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서 스누리그의 개막도 자연스럽게 늦춰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14년 스누리그는 6월 첫 번째 주에 개막했습니다.  


 길게 본다면 스누리그에 큰 도움이 되는 공사이지만, 당장 이번 시즌을 치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조명탑의 설치 덕분에 평일 저녁에도 경기를 배정할 수 있게 되면서 일정 문제는 손쉽게 해결되었습니다. 평일에도 최대 두 경기를 더 배정할 수 있게 된 만큼 모든 경기를 더 짧은 기간 안에 치를 수 있었습니다.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079

 

 다시 저의 스누리그 개혁안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계획은 리그 개편이었습니다. 2007년 관악리그와 방학리그의 통합으로 결성된 스누리그는 2부제 리그였습니다. 상위리그가 공식야구규칙을 따르는 리그라면, 하위리그가 도루와 보크가 없는 리그였습니다. 그러나 통합 이후에도 잡음은 계속 일어났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하위리그 우승팀의 승격 거부였습니다. 스누리그에는 상위리그와 하위리그의 팀을 교환하는 승강제가 있었지만, 하위리그에 속한 일부 팀이 하위리그에 계속 남고자 승강전에서 일부러 패배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또한 스누리그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고 몇 년이 흐르면서 팀 전력의 상향평준화가 이뤄졌고 그로 인해 하위리그에서 안타깝게 상위리그로 승격하지 못한 팀 중에 실력이 출중한 팀이 꽤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정식 야구 규칙으로 경기하는 것을 원했습니다. 반대로 대학교 동아리팀의 특성인 급격한 세대교체로 인해 상위리그에 남아 있지만 사실상 신생팀에 가까운 팀들은 하위리그에 들어가 경험을, 특히 이기는 방법을 배워보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상위리그 팀을 대폭 확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17개 팀으로 구성된 상위리그와 16개 팀으로 구성된 스누리그를 26개 팀의 메이저리그와 7개 팀의 마이너리그로 재구성했습니다. 메이저리그는 각각 13개 팀으로 구성된 VERITAS조와 LUX MEA조로 나누었고, 각 조 상위 8개 팀이 포스트 시즌으로 진출합니다. 각 조를 우승한 팀은 대망의 관악시리즈에 나가게 됩니다. 메이저리그 각 조의 최하위 팀은 자동으로 마이너리그로 강등되며, 각 조의 12등은 서로 최종 강등전을 치러 패배한 팀이 마이너리그로 강등됩니다. 마이너리그도 포스트시즌이 있었으며, 최종 1~3등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합니다. 신생팀은 마이너리그에서 첫 시즌을 반드시 보내야 했습니다. 


 관악시리즈에서 누가 홈 어드벤티지를 갖는지 결정하기 위해 올스타전을 개최했습니다. KBO와 비슷한 올스타전 투표 시스템을 활용했으며, 올스타 선정은 스누리그 구성원 투표로 진행되었습니다. 올스타전에는 메이저리그 선수뿐만이 아니라 마이너리그 선수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해서 스누리그 모든 팀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다 같이 바베큐를 먹으며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장소도 마련했습니다.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025


 두 번째 계획은 스누리그식 퓨처스리그의 개최였습니다. 스누리그는 대학교 신입생부터 졸업생, 교직원, 병원 직원 등 서울대 구성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리그란 장점이 있지만, 이 점이 단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잘하던 구성원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으면 신입생이 출전하기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고 신입생 시절, 그리고 야구를 배워가던 시절에 경기를 자주 출전하지 못했고, 어느덧 선배분들이 졸업하시면서 자리를 비운 다음에야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급격한 세대교체 속에 경기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경기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스누리그를 통해 처음 야구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저 역시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당연히 실수가 잦고,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게 당연했습니다. 신인들이 경기 경험 부족으로 보여주는 미숙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플레이가 연속이니 경기에 이길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첫 주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즌(?)에는 한 시즌에 고작 1승만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저는 스누리그만의 퓨처스리그를 만들었습니다. 학부생 저학년이 주로 경기에 나설 것이기에 여름방학을 대회 시기로 잡았으며, 낮에는 덥기 때문에 저녁 경기로만 진행했습니다. (조명 시설이 있는 서울대 야구장이어서 가능한 일이지요.) 최소 경기수를 보장해 선수들이 모두 경험을 충분히 쌓을 수 있도록 대회를 꾸렸고, 마지막에는 최종 우승팀을 가리기 위한 토너먼트도 진행했습니다. 


https://www.snu.ac.kr/snunow/snu_story?md=v&bbsidx=121595

 세 번째 계획은 관악시리즈의 영상 기록화였습니다. 서울대학교 동아리 야구의 역사가 정말 길지만, 그 때까지 한 번도 리그 차원에서 영상 자료를 남긴 적이 없었습니다. 마침 2016년 서울대학교 개교 70주년을 앞두고 저는 기록물을 남기기 위해 스누리그의 최종전인 관악시리즈 촬영을 결심했습니다. 


 관악시리즈 촬영은 교내 영상 제작 동아리인 이미지밴드에게 부탁했습니다. 저는 당시 스누리그 예산 중 예비비를 과감하게 관악시리즈 촬영비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미지밴드에서 활동하던 스누리그 선수이자 제 과반 후배인 현 J모 방송국 PD 오OO에게 정식으로 관악시리즈 촬영을 제안했고, 카메라 추가 대여비, 촬영비, 편집비, 영상 제작비에 대한 견적을 받은 후 스누리그 예산을 과감하게 투자했습니다. 영상이 완성된 후 제가 캐스터, 뮤턴츠의 최OO 분께서 해설을 하는 후녹음 처리까지 진행된 후 다음과 같은 영상이 만들어졌습니다. 


https://youtu.be/Y3jjjXcRkzs

2014 스누리그 관악시리즈 (2015.03.22.)


  관악시리즈를 위해 외부에서 주심 한 분을 섭외했으며, 나머지 3심은 지난 2년 동안 스누리그에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가장 평가가 좋았던 심판을 배정했습니다. 시구는 이광환 당시 서울대학교 감독님께 요청했습니다. 한편 2014년 관악시리즈는 일정의 문제로 인해 2015년에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초에 2014년 시즌을 공사로 인해 6월부터 시작했는데, 2014년에 유독 비가 자주 오면서 경기하지 못한 날이 많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2015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3월 말에 (2015년 2월과 3월 초에도 야구장 공사가 있었습니다.) 관악시리즈를 개최했으며, 2015년 스누리그는 4월에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스누리그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변화가 많았던 해인 스누리그 2014년 시즌이 끝났습니다.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와 새로운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준 스누리그 임원진과 스누리그의 모든 구성원이 있었기에 시즌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10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제게는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한 해였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2015년 시즌, 스누리그 사무국장의 임기가 보통 2년인 점과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것을 생각해 저는 스누리그 임원진으로는 계속 활동을 하지만, 스누리그 사무국장에 다시 도전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사무국장 자리를 내려놓으면서 저는 또다시 그 누구도 하지 않은 결정을 발표합니다. 


-다음 화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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