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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강산갈래 Apr 29. 2023

[땡큐, 블루!] 야구를 하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中

공놀이가 너무 좋아 멈출 수 없는 사람의 심판 이야기 - 3화

 사회복무가 끝나고 복학을 준비하던 2012년 말부터 2013년 초, 저는 감정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를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가정사가 복잡해졌고, 그러다 개인의 미래에 대한 고민 속에서 방황과 일탈이라는 것을 처음 겪었습니다. 불안함과 우울한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억지로 일을 하고 몸을 괴롭혔습니다. 


 그때 제가 좋아하던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서울대의 동아리 야구 리그인 스누리그의 운영진에 큰 공석이 생긴 것이었죠. 사실상 총재 자리를 제외한 모든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리그 운영이 어려워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저는 큰 고민 없이 스누리그에서 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차피 내가 야구를 하려면 리그가 있어야 하고, 제가 리그를 운영해도 재밌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렇게 시작한 스누리그에서 처음 맡게 된 일은 심판위원장이었습니다. 심판 지원자를 모집하고, 경기에 심판을 배정하고, 규칙에 대한 해석이 필요할 때 해석을 내리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무국장이 없었기 때문에 사무국장의 역할도 겸임했습니다. 차기 리그 운영 방향을 설정하고, 각 커미셔너가 작성한 일정 초안에 따라 최종 일정을 조정하고, 운영비 관리와 학교와의 소통도 도맡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누리그를 위해 해야 했던 일이 정말 많았던 것 같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2013년 시즌을 맞아, 저는 스누리그가 부족했던 점들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일 처음으로 추진했던 일은 심판비 지급이었습니다. 그동안 스누리그에서 심판은 경기 앞뒤팀이 의무적으로 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방식은 심판 부족이라는 문제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지만, 심판이라는 자리가 기피 직업이 되어버리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금 더 세세하게 들어가자면 첫째, 각 팀에서 심판을 볼 수 있는 사람보다는 신입을 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야구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심판을 보는 만큼 오심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둘째, 심판에 대한 보수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심판을 맡게 된 선수들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상당했습니다. 2~3시간의 노동에 대한 평가를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이죠. 셋째, 각 팀별로 심판을 균등하게 배분해야했기 때문에 일정을 관리하는 커미셔너가 느끼는 부담이 컸습니다.


 저는 스누리그의 심판 체계를 다음과 같이 바꾸자 했습니다. 첫째, 저는 스누리그 각 팀이 부담하는 비용이 늘어나더라도, 심판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심판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합당한 보상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심판을 각 팀에서 의무적으로 보는 방식을 폐지하고, 심판을 볼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선발한 후 배정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스누리그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운영진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새로운 심판을 키워낼 수 있는 강습회를 운영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다행히도 저의 아이디어를 스누리그 총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새로운 시즌부터 곧바로 심판 체제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시즌을 위한 대표자회의가 시작되기 전, 저와 총재는 각 팀에 심판 개선안을 설명하고 찬성 여론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스누리그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에 과반의 팀이 동의하지 않으면 규칙과 규약을 개정할 수 없었고, 특히 참가비가 늘어나게 되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일부 팀들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심판을 자원한 사람들을 공평하게 배분해야 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고, 종종 지원자가 없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에는 제가 하루 종일 밥도 못먹고 운동장을 지켜야 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제 스스로가 야구 규칙에 어긋나는 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베이스가 원래 위치에서 이탈했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잘못된 판정을 내렸죠.) 경기 결과에 영향을 준 판정이었고, 저는 제 스스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제 스스로 감봉과 일정 기간 경기 배정 금지를 내렸습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많은 스누리거분들께서 심판에 지출하는 비용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된 거 같습니다.


 5월이 되어, 저는 공식적으로 사무국장 자리에 취임했습니다. 3달가량 사무국장 대리를 하다가 정식으로 스누리그 회원들의 동의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무국장에 취임 후 첫해인 2013년에는 현재 틀에서 리그를 잘 이끌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스누리그에서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이를 위해서는 대표자회의를 통한 의사 결정 과정이 필요했기에 제가 단독으로 일을 시작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2013년 시즌, 스누리그는 심판에게 심판비를 지급한다는 아주 중대한 결정을 마친 후였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제도가 옳은 방향이라고 스누리그 구성원에게 확신을 줄 수 있도록 더욱 공부하고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2013년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새로운 심판 제도는 자리를 잘 잡았고, 저도 스누리그도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 시작에 앞서 열린 대표자 회의에서 저는 그동안 제가 머릿속으로 구상하던 계획을 과감하게 발표했습니다.


-다음 화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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