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 가기, 또는 새롭게 시작하기
나는 10년 넘게 앓아왔던 병을 완치했다.
바로 월요병.
얼마만일까. 십수 년간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매일 규칙적으로 집을 나서고 해야 될 일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오던 일상에서 벗어난 것이. 이제 나는 더 이상 아침에 어딘가를 향해 나서지 않는다. 대신, 잠이 덜 깬 상태로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며 하루를 시작하는 육아휴직.
내가 딱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그 십수 년 전, 친형의 육아 휴직은 내게 있어 뭐랄까,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다. 아빠의 육아휴직이란 개념이 생소하던 그 시절, 오랫동안 주말에도 나가던 직장을 가지 않고, 조카를 돌보고 있는 모습에 그저 철없이 부러워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조카들의 육아를 같은 집에서 지켜봤던 경험이나, 친한 친구들의 육아를 간접 경험하면서, 그리고 가끔 베이비 시팅을 해준 경험만으로 육아를 다 아는냥, 아는 척을 하던 내가 얼마나 육아에 대해 무지했는지를 느끼게 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회사의 고마운 배려로 3개월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일과'로부터의 방학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방학이라고 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걸 하루하루 몸소 체험을 하며, 몰랐던 세상을 하나씩 새로이 알게 되었다.
수유를 하고, 소화를 시키고, 잠을 재우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다시 수유를 하고.. 헤어 나올 수 없는 시시포스의 굴레에 빠진 것인가 탄식하면서, 하루하루 연명을 하던 어느 날, 내 인생에 업무란 것이 아닌 나와 내 가족만 바라보고, 그리고 생각하고 지낼 수 있었던 이런 시간이 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의 내 생각을 기록해보자. 기억은 희미해져 가겠지만, 기록은 남아서 내 기억을 다시 가져와주겠지라는 생각에, 글을 쓰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친구들과 만나서 실없는 농담도 하고, 서로의 삶의 굴곡들을 나누고, 세계정세까지 거창하게 들먹이고, 그렇게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해서, 항상 입이 쉬지 않고 지내왔다. 지나고 나면, 내가 무슨 얘기를 했지 하다가, 가끔 우연히 그 기억이 조금 부분 부분 날 때가 있다. 그때, 그 순간순간의 -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 감정들, 기억들을 떠올리다 보면, 희미해져 가는 기억들이 아쉬워지곤 한다. 그 기억을 이젠 활자로 기록해서, 나도, 그리고 나와 공감할 사람들과도 교감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이 일과로부터의 탈출의 시간이 내게 주는 작은 선물이자 기회라 생각하여 이렇게 시작한다. 의식의 흐름대로, 그때그때 생각나는 일들, 감정들을 적어나가다 보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시대의 동료, 혹은 친구들에게도 소소한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