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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나이트 Jan 04. 2017

페미니스트 아빠의 분노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나는 사실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 아니 페미니즘을 몰랐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심지어 결혼 전, 나는 페미니스트란 별 이유 없이 남자들에게 악을 쓰면서 억울하다고 외치는 못생긴 노처녀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다 결혼 후, 부부싸움을 하던 중에, 아내에게 “당신 페미니스트처럼 굴지 마”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내가 “당연히 나는 페미니스트야.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자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면 똥이지. 내가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뭘 배웠다고 생각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었다.


나의 예쁜 아내가 페미니스트라니!!!


그 부부싸움을 계기로 나는 아내를 통해 페미니즘을 조금씩 교육받기 시작했고,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남녀 양성평등을 응원한다”라는 나의 생각이 얼마나 웃긴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경지에까지 온 것이다.


물론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말을 당당하게 말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알지만,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남자이고, 고집쟁이였기에 한순간에 사상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두 딸의 아빠가 된 이후로, 나에게 페미니스트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당연히 되어야만 하는 필수 항목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아빠는 페미니스트여야만 한다. 본인의 딸이 여자라는 이유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차별받는 것을 원치 않을 테니까 말이다.



세상의 아빠는 모두 페미니스트여야만 한다.


그렇게 나는 딸을 낳은 이후, 차츰 여성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나의 편견부터 깨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며칠 전, 참으로 웃긴 기사를 보았다.


정부기관에서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링크 - 여성은 이 나라에서 ‘출산 도구 몸뚱어리’에 지나지 않습니까? http://www.womennews.co.kr/news/110837)


바로 대한민국 가임기 여성 지도에 대한 내용이었다. 정부기관에서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이 지도를 보면서 참으로 할 말이 없었다.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든 목적은 결국, 가임기 여성에게 애를 낳으라고 압박을 한다는 것 같은데, 이 사건은 결국, 여성을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보지 않고, 기계처럼 애 낳는 도구로만 보고 있다는 사상의 적나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상은 극단적으로는 인터넷에 누군가가 남긴 댓글처럼 ‘성폭행을 한 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라는 주장까지 옹호해버릴 수 있는 것이기에 매우 위험한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두 아이를 낳았다. 내 아이들은 각자 한 사람으로서 즐겁게 인생을 살아갈 것이고, 자궁을 포함한 본인의 몸을 스스로 판단하여 관리할 것이다. 그 누구도 나의 아이, 내 딸에게 ‘너는 자궁이 있으니까 아이를 낳아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 누구도 나에게 ‘너에게 성대가 있으니까. 노래를 해야 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저출산이 걱정이라면, 단순한 해결책이 있다. 결혼한 커플, 결혼 안 한 커플, 미혼 남자, 미혼 여자, 누구나 아이를 낳고 싶어 할 만큼,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사회를 만들면 된다.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이고, 아이를 위한 다양한 보호 및 보육, 양육 시스템이 안정화되어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아이를 보고 미소 짓고, 아이들에 대한 범죄를 매우 엄하게 벌하면 된다.


꽤 오랫동안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해답이 신문, 방송, 대담 등을 통해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길래, 저렇게 쉽고 상식적인 접근 방법을 두고 ‘여자들은 자궁이 있으니 일단 애를 낳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하고, 애를 안 낳는 여자는 손가락질을 받게 하고, 낙태는 법으로 금지시키면 된다.”라는 사고를 저렇게 당당하게 발표할 수 있는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내가, 우리가 낸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무원들이 말이다.


인터넷이든 어디든 정상적인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은 다 허상인 건지, 어째서 현실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다 생각이 없어 보이는지. 이렇게 분노하는 내가 비 정상인 건지 헷갈리는 나날이다.



페미니스트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의 사람을 하찮게 대하는 태도에 분노한다


어쩌면 나는 이번 가임기 여성지도 사건에 딸을 낳은 아버지로서, 페미니스트로서 분노하는 것도 있지만. 현재 대한민국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분노한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여성은 애 낳는 도구, 젊은이는 싼값에 부릴 수 있는 노예, 노인들은 사용불가 폐기 처분돼야 할 존재로 단정 짓고, 사람의 존재를 값싸고 하찮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정부 정책을 보면 마치 ‘힘들면 이민 가. 너를 대처할 싼 인력을 사 오면 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물가도 엄청나게 오르는데, 사람 값만 제자리인 사회이기에 경제학적인 면에서도 사람값이 싸진 것은 확실하고 말이다.


우울한 것은, 이런 사회에서 하찮은 이들끼리 힘을 합쳐 한 목소리를 내서 근본적으로 사회를 바꿔야 하는데, 먹고살겠다고 하찮은 취급을 받는 사람들끼리 서로 그나마 내가 낫네, 어쩌네 하면서 싸우기만 한다는 사실이다.


더 우울한 것은 결국 내 딸들은 서민+여성으로서 최약체라는 점이다. 그나마 낫다 라는 위안조차 없다.



음악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는데, 자꾸 시대를 말하게 되는 우울함


그리고 그중 가장 우울한 것은 "음악"을 말해야 하는 내가 자꾸 시대를 말하게 되는 현실이다.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 이야기를, 부모는 자식 이야기를, 회사원은 회사 이야기만 할 수 있는 시대가 빨리 오면 좋겠다.


보통 이런 글의 마무리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보자고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밤새 고민해봐도 긍정적인 마무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써 긍정적인 말을 해봤자, 공감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래도 뭐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나아질 테니, 그래야 조금이라도 희망을 볼 수 있을 테니, 

가만히만 있지 말자고, 나를 포함한 세상의 페미니스트 아빠들에게 부탁을 하고 싶다.


우리 가만히만 있지는 맙시다.




글, 작성 : 이그나이트, 성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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