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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닿 Mar 05. 2022

‘정답 없는 몸’에 대한 여성들의 이야기

《말하는 몸》, 박선영 유지영

우리들의 이상한 죄책감


먹고, 죄책감 느끼기. 최근 살이 찐 이후 겪는 일상이다. 마른 편이던 내 몸에 살이 붙기 시작한 건, 경구피임약을 복용하면서부터였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을 진단받고 먹기 시작한 이 약은 렌틸콩 크기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호르몬제다. 이후 생리를 아주 규칙적으로 하게 되었지만 여러 부작용이 (특히 복용 첫 달에) 찾아왔다. 그중 가장 당혹스러운 건, 생전 처음 경험하는 식욕. 배가 고프지 않은데 허기가 졌고,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받으면 뭔가를 입에 넣고 있었다. 채식을 지향한 후 입에 대지도 않던 과자와 빵을 먹었으며, 다 먹고 나서 부스러기나 껍데기를 보며 ‘내가 왜 이러지’ 하는 날들을 보냈다. 그러다 약 설명서에 쓰인 부작용을 읽고 납득했는데, 조금 울적했다. 오랜만에 본 사람들은 조금 놀라워했고, 기도까지 하면서 내 살이 찌기만을 바랐던 엄마는 좋아했다. “너가 말라서…”로 시작하는 온갖 종류의 잔소리도 사라졌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몸이 낯설었고, 체중조절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결코 놀랍지 않지만, 또래 여자 친구들은 비슷한 경험을 한 번쯤은 겪었노라 고백했다. 약을 복용해서든 마음의 병이 생겨서든 가볍거나 심한 식이장애를 한 번쯤은 겪어보았으며 자신의 몸에 만족하지 못해 (날씬한 편인데도!) 항상 체중조절을 하는 편이라고 했다. 페미니즘을 만난 후 우리는 여성의 몸에 대한 강박이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내 몸’에 대해서만큼은 너그럽지 못한 모순과 혼란을 종종 겪는 것 같다. 살을 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는 이유가, 같은 ‘나’인데 체형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적 시선 때문인지 건강이나 순수한 자기만족 때문인지 헷갈린다. 그래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이 모든 게 다 섞여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말랐던 내 몸을 보고 타박하면서도 부러워했던 양면적인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나의 몸, 여성으로서의 몸에 대한 생각이 깊어져 갔다.


22명의 여성, 22가지 몸 이야기


최근 출간된 《말하는 몸》은 이 고민 속에서 만난 책이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 - 내가 쓰는 ‘헝거’〉에서 다뤄진 사연들을 엮은 것인데, 이 팟캐스트에는 다양한 여성들이 출연해 몸에 대한 각자만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한다.(집단성폭력과 식이장애 경험을 고백한 록산 게이의 《헝거》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팟캐스트는 인터뷰어가 던지는 질문과 출연자의 답변으로 구성된 회차도 소수 있지만, 대부분 출연자의 목소리만 15분 남짓 전달한다. 대본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긴장을 풀어주고 독려하는 인터뷰어가 눈앞에 있기에, 출연자들의 말은 독백이되 독백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런 형식의 팟캐스트 사연들을 엮어냈기 때문일까. 책도 입말로 쓰여 독백처럼 읽히지 않는다.


이 책만의 차별성이 있다면, 각 사연 서두에 엮은이인 담당 PD와 기자가 쓴 글이 붙어있다는 점이다. 출연자를 만나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그녀들과 비슷한 자신들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내용이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만난 여성들로부터 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쓰기 어려웠을 거라는 그 말이 이해가 갔다.


목차를 보면 1권에만 무려 22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사람도 있지만, 취재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 사연을 보낸 청취자도 섞여 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하거나 주목받지 못하는 몸들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우울증 겪는 몸, 채식하는 몸, 장애여성의 몸, 털이 많은 여성의 몸,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했던 몸, 운동하는 여성의 몸, 식욕이 많은 요가강사의 몸, 콜센터 노동자의 몸, 임신한 몸, 성매매 경험 당사자의 몸, 퀴어 정체성을 가진 크리스천의 몸, 아시아 여성의 몸, 친족 성폭력 생존자의 몸, 여성 정치인의 몸, 식이장애 겪는 몸, 가슴이 작은 몸, 미인선발대회 출신 교사의 몸, 죽어서까지 외모 평가를 당하는 몸, 키가 크거나 작고 뚱뚱해서 ‘호박에 줄 긋는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꾸미는 걸 포기했던 몸…. 이 가운데 비슷한 사건(특히 성폭력과 식이장애, 성적 대상화, 외모 평가 등)을 경험한 이들도 다수 존재하지만, 들어보면 모두 다른 ‘나만의’ 이야기다.


더 다양한 ‘몸’ 이야기가 들려지길


비슷한 경험을 고백하며 여성의 몸을 획일화하고 억압하는 사회에 결연히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는 나의 무의식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살을 빼고 싶은 건 이전의 몸이 익숙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마르다는 걸 부러워했던 사람들의 기대에 계속 부응하고 싶어서일까? 이도 아니라면 ‘덜 여성스러운’ 마른 체구로 성적 대상화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롭고 싶어서일까? 동시에 친족 성폭력과 노동착취를 겪은 몸, 국가폭력 생존자, 성소수자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내 몸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몸이 하는 일과 몸이 증언하는 것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에 아파하면서.


한 권의 책을 읽는다고 사람이 금방 변하진 않는다. 내일이라도 소위 살찌는 음식을 먹을 때 다시 죄책감이 들거나,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힐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몸에 대해 말하는 많은 목소리들도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지워지지 않을 테다. 솔직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내 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내 탓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들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비슷한 사건들을 경험한 나의 몸에 대해 말하는 힘도 조금 얻는다. 나처럼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어 자책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좀 더 다양한 몸들에 대한 이야기가 절실하다. 물론 이는 여성의 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불완전하고 흔들리는, 그러나 정답 없는 몸들. 모든 몸이 자유롭게 활보하고 떠들 수 있는 일상을 소망한다.


※ <복음과상황> 2021년 3월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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