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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주 Feb 17. 2023

느리게 하는 산책



산책 길에 감자 삶는 냄새가 몸으로 온다

코끝이 시린 겨울 한가운데

오뉴월 감자가 보실 보실 아롱거린다


말을 탔던 사람들이 차를 몬다는데

언제나? 자유로이 차를 몰아볼까

전생에도 여자였을까

신라나 고려의 지체 있는 여자가 아닌

발목이 묶여버린 조선 여자?


산막 낡은 집에 유난히 반짝이는 장독대

살아 있음을 눈부시게 뽐내고

아래 빈집 유채꽃 노랗게 꽃대 올려

폐허의 무참함을 지그시 누른다


겨울 끄트머리를 발바닥에 동여매고

생각을 조근조근 불러내어 낡고 익숙한

기억의 몸피를 눈으로 안으며

감자의 여리고 뽀얀 속살에

겨울의 나머지를 내어준다


201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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