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VC(벤처캐피털) 그 꿈의 직장_2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by San Baek 백산

그래 이제 사람도 만나봤고 생각도 정리가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이게 진짜 가능성이 있는지를 타진해볼 차례였다. 이 당시 나의 솔직한 심정으로서는 VC에 상당히 가고 싶었다. 스타트업에서 몇 년간 고생해보신 분은 공감할 수 있으리라. 사모펀드(Private Equity)에 있다가 스타트업에 와서 몇 년 구르다가 다시 사모펀드(Private Equity)에 돌아간 후배가 내게 남긴 명언이 있다.


형, 저 그냥 많은 거 안 바래요. 회사에 오면 회사가 깨끗하면 좋겠어요. 커피 같은 게 내려져 있으면 좋겠어요. 현금 떨어질 걱정 좀 없으면 좋겠어요. 그냥 그런 별거 아니고 당연한 거 같았던 게 너무 그리운 게 있죠. 아무래도 전 더 이상은 못 버틸 것 같아요.


그래 난 정말 헝그리 한 사람이지만, 스타트업에서 펀드레이징 하면서 저쪽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부러울 때가 없었다면 거짓말 이리라. 나도 저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도 조금은 더 편한(?), 조금은 더 안정적인(?), 그러면서도 나의 장점을 살려서 신나게 세계를 누비며 일할 수 있는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merson Collective


어느 날 이런 링크된 메시지가 왔다.

Chief of Staff opportunity

Dear San, I’m an executive recruiter. I’m working with a prominent Silicon Valley mission driven investment office in search of an Investments Team Ops Director, essentially a Chief of Staff to the Managing Director. They make both impact investments in early stage companies as well as philanthropic grants. We envision this as a hands on role that the right candidate will fill for 2+years then rotate into a more meaningful role. Major components are: strategy planning, calendar & operating rhythms & events, executive briefing & preparation, key project initiatives/execution, and corporate communication. This role will help the investment office in expanding their ability to seek out and make new investments. While the individual in this role will focus on the investment process, s/he may also participate in ongoing management and support of the investment portfolio. Preferred experience/passion in social innovation and education technology. Would you like to learn more?

Alex Huang CFP®
alex@mackenzietalent.com

오호라, 상당히 끌리는 기회였다. 일단 난 VC에 관심이 많았고, 투자도 하고 싶었지만 내부 오퍼레이션도 잘 정비하고 싶었는데, 이건 투자사 대표의 Chief of Staff으로서 그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유니크한 기회처럼 보였다. 이 사람과 통화해보니 진짜 이건 내가 꿈꾸던 그런 직장 같았다. Investment 50%, Operations 50% 의 완벽한 조합이었고, 펀드도 엄청 크고 탄탄했다.


이건 Emerson Collective란 회사의 기회였다. 그전엔 못 들어본 회사였지만 알고 보니 (고) 스티브 잡스의 아내인 로렌 파웰 잡스가 만든 회사였다. 수십조 자산가인 그녀는 교육, 이민 등의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았고, 스티브 잡스 유고 이후 본격적으로 펀드를 키워서 이제 100명이 넘는 펀드였다. 직접 non-profit 비영리 일도 했지만 투자는 다 영리 목적으로 하면서도 사회적인 임팩트가 있는 에너지, 교육, 신물질 분야에 주로 했다.


전화 면접 보고 이 회사에 다니는 MBA 후배와도 이야기해보고 알면 알수록 더 끌렸다.

- 1) 나의 경력, 특히 정부 경력을 좋아하고 인정해주는 거의 최초의 회사: 이건 진짜 눈물 나는 경험이었다. 드디어 나를 알아주는 회사가 나타났어. 내 경험을 인정해주는 회사가.

- 2) 미국 사회 주류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다. 힐러리 캠프에 있었던 사람들도 꽤 있었고, 로렌 파웰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미국의 탑 VC에 있던 사람들(A16Z출신 등)도 여기로 많이 와 있었다.

- 3) 실리콘밸리 특유의 효율성에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는 회사: 너무나 멋진 이슈들에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 회사는 Atlantic 같은 미디어를 아예 사버리기도 했다. 돈이 워낙 많아서 펀드레이징 할 필요도 없고 통 큰 투자를 팍팍하며 영향력을 넓혀 갔다. 플레이가 시원시원했다.

- 4) 이건 아주 큰 고려 요건은 아니었지만 다른 어떤 기회보다 더 연봉이 높았다.


그래서 몇 번의 면접 끝에 팔로알토에 있는 본사에서 대면 면접을 보게 됐다. University Ave에 위치한 오피스가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 여러 명을 만났는데 면접보고 나서는 무언가 딱 맞지는 않는다는 걸 직감했다. 서로 너무너무 좋고 면접에서 말이 너무 잘 통해도 안 되는 게 대부분인데, 내가 워낙에 모르는 분야다 보니 나도 저쪽도 뭔가 조금은 안 맞는 걸 느꼈다. 난 미국의 교육 시스템도 너무 몰랐고, 이민 문제나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도 사실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오피스가 너무 럭셔리하고 거대해서 뭔가 안 끌렸다. I was turned off a bit.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많은 일 하는 회사가 이래도 되는 거야 라는 그냥 그런 마음이 좀 들었다.


그래, 예상했던 대로 컬처 핏이 뭔가 안 맞는다고 회사의 HR 헤드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이제 와서 보니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때는 진짜 가고 싶었던 회사였다. 이런 회사에 가서 한국사회와 한국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상당히 컸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겉멋 들고 싶어 하는 건 참 여전하다.


글로벌 VC 미국 오피스


내 지인도 몇 다니고 있는 글로벌 VC의 파트너를 만났다. 그는 나를 상당히 좋게 봐줬고 미국에 있는 파트너와 이야기해보라고 소개해줬다. 그래서 은근히 떨리는 마음으로 파트너를 만났다. 미리 앞에서 만든 1pg를 보내기도 하고 이 사람의 직전 경력도 조사하고 무슨 말을 할까 준비도 하고 내가 과거에 일했던 거나 노력했던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파일들을 프린트해가기도 했다. 막상 만나고 나자 긴장도 좀 풀렸고, 상당히 이야기가 잘 통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정말 잘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시간이 다되어 갈 때쯤 파트너가 내게 말했다.


"파트너: 산, 난 네가 매우 훌륭한 인재라고 느껴. 네가 했던 경험들, 하는 말들, 다 이해돼, 나도 어찌 보면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근데 야, 내가 네가 엄청 좋아서 하는 말인데, 미국에서 VC 하는 건 지금은 아닌 것 같아. 멋진 사람 만나고 하는 건 좋지. 하지만 결국은 조연이고 네가 쌓아야 하는 건 추가 투자를 할 수 있는 네트워크, 이사회에서 정치 플레이할 수 있는 네트워크와 경험들, 피투자사가 사람 뽑을 때 도움 줄 수 있는 네트워크 이런 것들이야. 미국 주류사회 사람들이 이런 거 꽉 잡고 있고. 지금부터 몇 년간 이런 네트워크 만들어가며 미국에서 VC 로서 장기전 할 수 있을 것 같아? 너 답답해서 미쳐버릴걸? 넌 아마 또 뛰쳐나가서 기업 해볼 거라고 할 거야. 그런 DNA가 보여. "


그냥 둘러대서 하는 소리나 좋은 소리 하려고 하는 게 아닌 게 느껴져서 참 고마웠다. 진심이 전해져서. 그래 참 맞는 말로 들렸다. 이거에 더는 할 말이 없어서 일단 계속 연락 주고받자고 하고 미팅을 잘 마쳤다.


미국에 있는 CVC


아는 사람을 통해서 미국에서 오랫동안 CVC를 해온 파트너분을 만나게 됐고, 여기에서 또 펀드를 차리는 과정에서 관심 있으면 한번 이야기해보자고 해서 면접을 보게 됐다. 간단히 이야기해보자고 한 게 어느 순간 풀타임 면접이 되어서 회사에 있는 투자 디렉터들 전원과 면접을 봤다. 물론, 내 스타일대로 면접 보기 전에 최대한 다양한 사람 만나서 현재의 펀드 구성과 목표와 구성원과 이런 것들을 최대한 연구하고 준비해 갔다.


면접은 어느 정도 봤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딱 맞지는 않는다고 느껴지는 게 있었다. 분명히 참 매력적인 기회였다. 보통의 많은 미국에 있는 CVC가 의사결정 권한 없거나 수많은 Strategic angle을 따져서 제대로 투자를 못한다면, 이 펀드는 이미 구조적으로 미국에 의사결정 권한을 다 가져오고, 재무적인 관점을 최우선으로 투자하는 원칙이 있어서 CVC로서의 장점을 적극 살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도 경험도 많고 우수하다고 느껴졌다. 단 이 펀드는 1) 사람보다는 기술에 투자하는 회사였고 2) Early stage에 될성부른 기업에 뿌리는 플레이를 하지 긴 호흡으로 얼마나 이 기업과 경영진이 잘 팔로 업하고 핏이 맞는지를 보고 투자하는 (점이 아닌 선에 투자하는) 모델은 아니라고 느꼈고 3) 파트너 급이 아니라면 모든 DD를 하고 파이프라인 관리를 할 주니어를 찾고 있었지 직접 나가 투자할 사람을 찾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저쪽에서도, 나도 이건 딱 맞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진행을 그만두기로 했다.


소프트뱅크 Vision Fund and other VC's operations team


내가 진짜 잘하고 좋아할 수 있다고 느낀 것은 투자도 있지만 포트폴리오 회사 관리였다. 난 베스트 프랙티스 찾는 걸 너무 좋아했고, 어떻게 세일즈 팀을 꾸리는지, 어떻게 세일즈 조직을 설계하는지, 어떻게 채용 프로세스를 만드는지, 어떻게 팀 컬처를 잘 정비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을 돕고 도움받는걸 너무 좋아했다. 그래, 아주 많은 포트폴리오 회사를 관리하는 쪽에 가서 창업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면 그거 진짜 좋아하고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침 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 이런 책도 읽고 완전히 필 받아 있는 참인데, 지인과 만나 이야기해보니 SB Vision fund에서 사람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고 들었다. 손정의의 사람 중 한 명인 한국계 파트너 분도 계신데 (문규학 파트너님), 그분과 같이 일하거나, 아님 미국 오피스에서 portfolio 회사를 관리하고 도우며, 손정의 회장이 말하는 동지적 연대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만큼 재밌는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미국 오피스에서 일하는 동기 만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고 investment operations 하는 팀에 지원해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면접 기회조차 오지 않았다.


SB Vision fund 말고 다른 미국계 VC에 다니는 지인에게 operations team에 혹시 기회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는데 결국 한 번도 면접 기회조차 오지 않았다. 그래, 아쉽지만 객관적으로 나의 지금 커리어와 경력이 이런 회사들의 채용담당자가 보기에 그다지 매력적인 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은 아닌 것 같다고 결론 내리기까지


주위에 VC 분들 만나서 커리어 상담을 하면서 (주로 스탠퍼드 MBA 동문이나, 글로벌 플레이를 하시는 한국계 분들) 은근히 그들이 내게 자리를 권유하지는 않을까, 기회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어찌 보면 지금 나의 자리와 경력은 애매했다. VC에 Analyst로 들어가서 착실히 올라오기에는 경력이 많았다. 파트너로 들어갈만한 경험을 하거나 결과를 만든 것도 아니었다. 미국에서든 동남아 대상으로든 팀만 만들면 펀딩 해주겠다고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지만 그만한 리더십 포지션을 맡을 자신은 또 없었다. 그리고 워낙에 VC 오피스 자체가 대부분의 경우는 작기 때문에 정말 VC에 조인하는 건 운도 맞고 타이밍도 맞아야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분명 지금의 나로선 좀 애매했다. 한국에 가면 기회가 있을 것도 같았지만 그러고 싶지는 또 않았다.


2월까지 위에 언급한 몇 개 회사를 만나보고 이야기해보고 나서 난 일단 VC를 알아보는 건 접기로 했다. 지금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 오퍼레이션에서, 실제 기업 운영에서 비즈니스에서 일단 더 결과를 내보고 더 도전해보자. 언젠가 나중에 내가 더 나의 가치를 쌓은 후에 투자자로서 일해볼 기회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투자자가 된다면 난 기술에 투자한다기보다는 사람에 투자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크로스 보더 투자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의 자본 말고도 새로운 시장 개척에 필요한 인력, 세일즈 기회, 추가 자본 네트워크 등, 제공할 수 있는 게 확실히 있는 투자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또 하나 선택지를 줄였다.


(이건 별론인데, 벤처캐피털의 업의 성격이 기자와 비슷한 면이 상당히 많이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기자가 항상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현장에 있고, 그런 이슈메이커/키맨들을 다 알고 그들과 교류하는 것처럼, 벤처캐피털리스트도 가장 핫한 회사들과, 기술과, 기업가들과 함께한다. 그들과 교류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아주 괜찮은 이인자 자리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일인자가 되면 좋겠지만 그건 정말 복불복, 리스크가 너무 큰 일이다. 아주 크지 않은 리스크를 지면서 이인자의 자리에 있고, 최고의 사람들과 늘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수많은 베네핏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둘의 업은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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