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아직 오지 않은 가장 많이 헌신하고 사랑한 그런 순간이 아닐까
얼마 전에 거의 20년 후배와 만나 술 한잔 할 기회가 있었다. 난 여전히 이팔청춘 같지만 후배가 보기엔 내가 얼마나 중년 아저씨로 보일까. 그래서인지 이놈이 대뜸 이런 질문을 했다.
선배님 삶에서 가장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니 내가 안 선생님으로 보인단 말인가 뭐 이런 생각도 스쳐 지나가며 가볍게 대답하려 했지만 사실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수많은 기억들과 생각들이 지나갔다. 그 자리에선 다 대답하지 못한 여러 생각들을 아래 적어본다.
가장 많이 성취하고 인정받았던 경험
가장 몰입하고 거침없었더 시기
가장 사랑받았던 경험
나를 넘어선 가족의 성취와 열매
누군가, 무언가에 헌신하고 열매 맺기
제일 먼저 생각난 쉬운 답변은 여러 가지 손에 잡히는 성취를 이룬 경험들이었다. 대학입시, 고시, 취직 이런 것 외에도 일에서 무언가를 만들거나 성취했던 경험, 아니면 마라톤이나 철인 삼종같이 열심히 땀 흘리고 노력해서 결과를 냈던 것들도 생각났다. MBA다니며 어줍잖은 나름의 유명세를 조금탔을때 어깨에 잔뜩 힘들어간 시기도 생각났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 인생 영광의 순간 아직 오지 않았다. 난 더 성취하고 이뤄내고 할 것이다. 마치 아래 두 사진의 그림과 같은 순간을 상상하게 됐었다.
또 하나 생각났던 범주는 무아지경에 빠져 몰입한 경험이었다. 20대 초반 군생활을 마무리하던 즈음 몸이 너무 가볍다고 느낀 적이 있다. 아침에 눈뜨면 1시간 PT (physical training)하고 점심에 헬스하고 저녁에 수영하고 축구하고 이렇게 거의 운동선수처럼 살 때도 있었고 제대하고 복싱 배운다고 두 시간씩 체육관에 땀 내기도 했었다. 영광의 시기였는지 까진 모르겠지만 가장 젊음을 만끽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몸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에너지가 있으니 세상에서 두려울 게 없었다. 무언가에 도전하거나 누군가와 새로운 걸 하는데 거리낌이 없었고 누가 나를 놀리거나 뭐라고 해도 신경도 거의 안 쓰이던 나의 젊은 시절도 기억에 났다.
영광의 순간이란 게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삶에서 가장 행복했거나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난 여전히 2019년 내 삶의 가장 힘들었던 시기중 한 시기인 그 시기에 경험한 영적 경험을 꼽겠다. 자세한 건 이 글에 있지만 그 시절 난 약 8개월에 가까운 무직/구직 상태를 지나고 재정적으로도 많이 어려웠다. 처갓집에 얹혀 지내고 있었고 갓난쟁이 둘이 있었고 와이프도 일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심리적으로도 많이 위축되고 우울증 같은 것도 경험해 본 그 시기에 내가 경험한 영적인 체험을 한마디로 하자면 "가장 찐하게 사랑받은 기억"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때, 나의 자존감과 자신감이 땅에 떨어지고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하고 나 스스로 아무런 힘이 없을 때, 지금까지 내가 믿어왔고 통했던 모든 기술들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을 때,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고 그 누구도 날 이해하거나 어떻게 해줄 수 없을 것 같을 때. 바로 그럴 때 받은 엄청난 무조건적인 사랑. 바로 그럴 때 진정 느끼고 알게 된 온전한 사랑과 헌신.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그건 내가 경험한 가장 저돌적이고 무조건적이고 가슴 시리도록 온전하고 한없는 사랑이었다.
이 사랑과 인정은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는 달랐다. 이건 내가 무언가를 잘하고 이뤄내서 받은 게 아니었다. 무조건적인, 존재론적인 사랑과 인정이었다. 그냥 내가 나 이기에 받는 사랑과 헌신이었다. 그래서 이게 떠나갈까 봐 두렵거나 내가 잘해서 받은 거라 우쭐하거나 하지 않고, 그냥 온전히 감사히 받을 수밖에 없는 선물이었다.
여전히 현실은 하나도 바뀐 게 없는데 가만있어도 웃음이 나오고 갑자기 모든 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갑자기 세상 모든 게 사랑스러워 보이고, 눈물도 웃음도 많아졌다. 쓸데없는 잡생각은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과거에 대한 후회도 사라지고 그냥 현재를 온전히 살게 됐었다. 온전히 받은 사랑과 헌신은 그만큼 강렬했다. 걱정과 번민과 우울과 회의와 냉소와 분노와 자만 같은 모든걸 녹아내리고 나를 자유케 했고 피어나게 했다.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같이 있던 형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주위에 아저씨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자식이 서울대 가거나 공부 잘하거나 그런 거야. 평소에 소심하거나 별이야기 안 하는 사람들도 자식 잘되면 어쩔 줄을 모르더라.
손주 자랑은 돈 내고 해야 된다는 말도 있다는데 그런 게 생각났다. 나 혼자의 성취를 넘어서 내 분신과도 같은 가족들이 성장하고 성취하는 걸 봤을 때, 얼마나 큰 영광일까. 일곱의 자식과 수십 명의 손자손녀 증손자 증소녀를 본 아래 부부는 이 사진에서 참 영광스러워 보였다.
가족을 확장시킬 수 있다면? 그리고 꼭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들에게 헌신할 수 있다면? 누군가의 삶에 너무나 중요한 문제에 헌신할 수 있다면?
마치 아래 사진에서 자신의 삶을 아프리크 수단의 아이들과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데 바친 고 이태석 신부님이나, 흑인인권운동을 하다가 죽은 마틴루터킹 같은 분이 생각났다. 아 이들의 삶은 참 영광스럽다.
전에는 이들이 그냥 막연히 멋져 보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의 용기와 결단은 여전히 너무도 멋지고 빛이 나지만, 내가 부럽다고 느끼는 건 헌신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그거에 매진했다는 것. 열매를 보면 진짜 좋겠지만 꼭 열매를 다 맺지 않아도 그 삶은 그 자체로 정말 영광스러울 것이다.
헌신할 대상과 문제를 찾고 그거에 조금씩 더 매진할 용기를 길러갈 수 있다면. 그러면서 나의 사람/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점점 더 몰입하면서 나는 온데간데 없어지는 삶을 조금씩 더 살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내 인생 영광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