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느낌은 참 오랜만이다
어제 섬기는 교회의 1 day 세미나가 있어서 우연한 기회에 조샘 선교사님이란 분을 만나게 됐다.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할 때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
조샘 선교사님 약력이 좀 특이하다. 경영학교수 (고려대 경영대, 미국박사 출신), 중국 연변과기대/북한 평양과기대에서의 6여 년의 경험, 인터서브 선교회 전대표, 로잔 BAM (business as mission) global 한국대표 등. 경영학 전문가로 북한사역을 하시다가 토론토로 옮겨 다양한 비즈니스 사역을 하시다 오신 분. 이 분은 자신을 소개하는 키워드로 1) 디아스포라 2) 복음주의자 3) 경영 (매니지먼트)를 이야기한다. 이렇게 보니 내가 왜 이렇게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이분께 반했는지 알겠다. 나와 겹치는 게 참 많은 분이구나. 아래 영상과 인터뷰 링크도 참고로 넣어놓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ongZJkgbua8&t=1138s
https://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458
이날 발표의 주제말씀은 크리스천 사이에선 그 유명한 마태복음 마지막구절, 예수님의 지상명령이었다. 그중에서도 조샘 선교사님은 이 구절을 특히 강조하셨다.
볼지어다
말씀의 요지는 이러하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전한 시기의 크리스천/기독교는 소위말해 "이단"이었다. 믿는 것만으로도 박해받고 죽음으로도 갈 수 있는 시대적 여건에서 예수님은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말하신다. 거기서 핵심은 "볼지어다" - 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이다. 이것 없이는 전혀 말이 안 되는 명령이다. 봐라, 깨달아라, 기억해라...
선교사님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외에도 가라지와 밀알의 미유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봐야 하는지 강조하셨다. 세상엔 늘 가라지 (잡초)와 밀알 (온전한 작물)이 공존한다. 가라지만 보게 되면 불안해지고 방어적이 된다. 트럼프 같은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는 미국의 크리스천들의 마음에는 이대로 가면 Gender혁명 등에 의해 사회문화가 걷잡을 수 없는 데까지 가고 기독교 토양이 뽑힐 거라는 불안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균형 있게 봐야 한다. 가라지뿐 아니라 밀알을 볼 수 있는 눈. 그렇게 됐을 때 우리는 두려움을 이기고,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ㅡ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아서 기 다릴 수 있고, 질 수도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 성경 말씀에 가장 큰 명령어는 가서 제자 삼으라는 것이다. 어디로 누구에게 갈 것인가? 제자 삼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1) 친구 되기 - 선교사님은 무슬림과 라마단을 하나의 예로 들었다. 과거에는 라마단시기가 되면 크리스천들이 영적전쟁을 한다고 더 열심히 기도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하루 종일 금식한 무슬림들을 집에 초대해서 같이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도도 하는 관점들이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간다는 것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2)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 선교사님은 기존의 내러티브는 너무 한쪽에 치중 (예: 미전도종족 전도)해 있었다며 씨줄과 날줄의 비유로 하나님나라의 선교를 설명하셨다. 매트릭스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경제 비즈니스 자연 생태 등) 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필요하고 자신이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친구가 되고 제자 삼는 노력이 필요하단 것이 요지이다.
3) 거대한 힘 앞에 굴복하지 않고 구별된 삶으로 살아내기 -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네 개의 변화 1) 패권주의의 부활 2) 자본주의의 극단화와 양극화 3) 테크에 의한 개인소외와 외로움 4) 기후위기를 꼽으며, 이런 환경들이 탐심, 두려움, 무기력 등을 낳고 있고 이건 어찌 보면 로마 제국 시대와 다르지 않은 면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로마시대에도 (그리고 계시록에도) 결국 세상은 군사, 자본, 그리고 이념 (종교)를 무기로 삼고 있었다. 개개인은 이런 거대한 힘 앞에서 무력함, 두려움, 탐심 등에 휩쓸리고 있다. 이런 삶의 현장에서 다르게 살고 거룩하게 살 때 제자 삼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선교사님은 작년 나온 로잔의 세계선교보고서를 인용하며 삶의 현장에서 제자도가 이 시대에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말씀하셨다. 첫 번째 포인트는 문화사회참여, 믿음과 직업의 통합의 부분이 성경이해/교회참여에 비해 제자훈련이 훨씬 없는 영역이라는 아래 설문조사 결과이다. 두 번째 포인트는 사람들이 종교기관이나 국가보다 본인의 회사, 학교 등을 훨씬 더 신뢰한다는 조사결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즈니스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1) 본래 비즈니스는 선하고 멋지다
복음의 중심엔 "예수"가 있지만 복음의 풍성함은 훨씬 다채롭다. 성경은 에덴동산으로 시작했지만 계시록의 마지막엔 "예루살렘"이란 도시가 내려온다 - 그리고 그 온전한 도시는 복음의 풍성함을 마음껏 담고 있다. 비즈니스 라는 건 기본적으로 상상력이다 -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태초에 하나님이 그런 상상력으로 일하셨고 인간에게 그 상상력과 일하는 자아를 주셨다.
2) 비즈니스를 비즈니스로
비즈니스의 핵심은 새로운 가치 창출이고, 거래와 계약의 공정함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제자도는 먼저 비즈니스를 비즈니스 되게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가치 창출이 없고 공정한 거래 및 계약관계없이는 비즈니스가 비즈니스로서 설 수 없다. 크리스천이 아무리 선한 뜻을 가지고 비즈니스가 되어도 그게 비즈니스로서 제대로 설려면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가치의 창출, 그리고 공정한 계약들이 필요하다.
3) 비즈니스가 아닌 것을 비즈니스 아닌 것으로
비즈니스 논리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있다. 진정한 안식, 사람과 문화의 회복, 관계와 공동체 같은 것들. 돈의 논리에서 안식은 늘 뒷전에 밀리고, 사람과 문화는 매출최적화 논리에 묻히고, 관계와 공동체 또한 사치나 수단으로 전락하기 쉽다. 이걸 회복시키는 것. 그게 진정한 제자도이다. 그런 비즈니스가 세상에 설 때, 사람들은 축복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며, 제자들이 커나간다.
- 하나님은 자신을 신뢰한 사람들의 신뢰와 그로 인한 행동을 의료 여기신다. 그건 하나님이 반드시 기억하시고 보상해 주신다.
- 경험과 은사개발에 힘써라. 그건 영원의 가치를 가진다.
- 부르심과 소명은 주로 뒤에 가서 발견된다. 너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일까 분별하고 고민하려 하는데 목숨 걸지 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주어진 것들에서 살아내다 보면 지나 놓고 보면 보이리라.
- 정말 중요한 것은 내면이다. 내가 성령에 민감한지, 나는 힘과 돈을 어떤 식으로 대하며 살고 있는지.
- 거룩한 공회와 성도의 교제는 우리의 힘이다. 그것에 의지하여 서로 격려하며 살아내자.
- 우리 각자에겐 맡겨진 영역이 있다. 그 바운더리 하에서 자신의 싸움을 싸우면 된다.
- 한국과 한국민족의 부르심은 북한과의 peacemaking, 우리 내부의 peacemaking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우수한 점 너무 많다. 약점은 유연하고 병렬적인 사고를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분열이 너무 많다. 크리스천은 peacemaker로 부름 받았다.
- 돈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1) 노동을 통한 소득을 기본으로 한다. 노동의 신성한 가치 2) 자본 소득, 투자는 하되 투기는 하지 않고 분산투자를 한다. 불로소득은 경계한다. 3) 돈은 사람에게 주고 쓰자. 관대하게. 그게 최고의 투자이자 돈을 다스리는 법
-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기술은 기본적으로 중립적이다. 가라지와 밀알처럼 가라지만 보지 말고 밀알도 보자. AI발전도 두려워만 할게 아니라 좋은점을 잘 보고 선도할 부분을 선도해보자
- 돌봐야 할 이웃은 첫째 나와의 바운더리 (가족 등 가까운 사람) 중심으로 보고 둘째 생명을 가지고 있는지로 본다. 여기서 생명은 예수를 아느냐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힘과 환경이 있느냐도 보아야 한다. 생명이 없는 자에게 생명의 회복은 총체적이어야 한다.
- 세상이 각자도생의 시대로 갈수록 하나님의 장막은 더욱 필요하고 빛날수 있다. 힘의 논리앞에 두려움 탐심 무기력이 만연한 세상에 크리스천 리더가 제대로선 공동체, 삶의 현장, 비지니스는 하나님의 장막과 같다. 그 장막안에 있는 사람은 진정한 보호를 받고 축복을 누린다. 그런 장막을 만들수 있는 사람이 되자.
짧은 시간에 정리하다 보니 이 글은 독자보단 나를 위한 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 theology에 대한 접근이나 삶에 대한 접근이 이렇게 나와 spirit이 맞다고 느끼는 사람은 오랜만이다. 왠지 이분을 앞으로도 종종 보게 되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일깨워준 이 인연에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