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붕괴
이번글은 최근 몇 달 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현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부조리, 구조적 한계에 대한 글이다. 전부터 이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종종 생각해 왔었는데, 지난 11월 초에 성경의 원리와 해석에 대해 접하면서 모든 게 명확해졌다.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진 것인지, 무엇이 근본 원인인지, 그리고 해결책은 있는지... 이제 한번 나눠보겠다.
지주와 소작농
서울 집값이 이미 소득으론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남 30평대 아파트가 50억이 넘었다는 건, 3억 이상의 초고소득 연봉으로 평생 일해도 그 집을 (또는 강남의 아주 일부의 토지를) 평생 소유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일자리와 생활의 터전이 있는 도시에서 평생 자기 땅을 가질 수 없고, 거기서 살면서 땅을 가지고 있는 (현대 사회의 집)에 평생 자기 소득의 일부를 낼 수밖에 없는 현대판 지주와 소작농의 시대를 우리는 살게 되었다.
기울어진 운동장
이 기울기는 갈수록 가팔라 지고 있다. 자산가격의 상승을 일반 소득/월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래 간략한 예를 들어본다.
사회에 진입한 청년 A의 현실: AI 회사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며 고소득을 받지만, 치솟는 자산 가격 앞에 내 집 마련은 멀기만 하다. 그의 노동은 생계 수단일 뿐 자산 축적의 도구가 되지 못한다.
자산가 B의 여유: 이미 자산을 가진 이는 대출을 지렛대 삼아 추가 자산을 취득하고, 세입자의 월세로 그 비용을 충당한다.
전 세계적인 현상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이다. 강력한 사회통제가 있는 몇몇 국가나, 아직 현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시스템이 정착하지 않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첫 번째 문제는 이것이다. "자본"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이는 자본의 두 가지 특징에 근거한다.
자본의 이동성
경제의 기본재화인 자본과 노동을 비교해 보면 자본의 이동성이 노동의 이동성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예를 들어 정부가 돈을 더 벌기 위해 소득 또는 소비세를 인상하는 옵션과, 자본세(예: 금융소득과세)를 인상하는 옵션이 있다고 하자. 부의 재분배를 위해선 후자가 더 좋은 세금이라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경우 전자 (소득 또는 소비세)가 훨씬 더 쉬운 선택지가 된다. 왜냐하면 금융소득과세를 부과하는 순간 자본은 순식간에 한국에서 더 세금이 낮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소득세나 소비세는 인상되어도 그 이동속도가 매우 더디기 때문이다. 소위말해 노동이 자본에 비해 조세 저항이 적다.
자본의 폭발성
또 하나는 자본의 폭발성이다. IMF로 봤듯이 금융위기 (외환위기 등)은 사회를 한방에 붕괴시킬 수 있다. 이것이 자본의 무서움이다. 하나의 기업이 망한다고 사회가 붕괴하지 않지만, 환율이 흔들리거나, 은행이 망하기 시작하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실물위기보다 금융위기가 더 무서운 이유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보자. 모기지부실이 극으로 가면서 자산가격이 폭락하면, 은행은 부실 대출로 망하고 국민의 연금은 흔들리며 국가 재정과 시스템 전체가 파탄 나게 된다. 이것이 현대 시스템에서 자본이 있는 곳 (자산)이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는 이유이다.
결과: 구조적으로 자산가에게 유리한 시스템
결과적으로 현대 사회는 자산가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다.
- 세금: 위에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보다 근로소득, 소비에 대한 과세가 훨씬 쉽고 일반적인 것을 설명했다. 자산세도 마찬가지다. 근로소득자에 비해 부동산 보유자에게 더 유리한 공제제도가 많이 마련되어 있고 (보유세 등에 대한 거센 저항, 여러 세금혜택), 국내의 경우 건강보험료 같은 경우도 자산가에 비해 근로소득자에게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 대출금리: 자산가는 이미 가진 담보를 활용해 낮은 금리로 거액을 빌려 자산을 증식하는 '레버리지'를 활용한다. 반면, 사회 초년생이나 무주택자는 높은 금리를 감당해야 한다.
결국 자산 보유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자산이 없는 이들은 더욱더 기회가 박탈되는 '자산 중심' 악순환이 반복된다.
두 번째 문제는 이것이다. 단기 선거 승리에 최적화된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
단기실적에 집중
지금의 엔비디아가 있을 수 있는 건 90년대 2000년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GPU라는 전혀 돈이 안 되는 산업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감행했던 젠슨황이란 창업주의 결단과 리더십,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이 절대적이다. SK하이닉스 같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을 버텨냈기에 지금의 하이닉스가 있다. 단 한 푼의 수익도 배당도 남기지 않으며 수십 년 동안 모든 돈을 재투자해온 아마존 같은 기업도 대표적이다. 주주들을 설득하는 제프 베조스의 주주서한은 장기투자의 교과서처럼 여겨진다. 곧 IPO를 바라보는 스페이스 X 같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단기 성과에 목숨을 건 고용주 CEO나 사모펀드가 운영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장기 안목과 투자가 있었기에 이런 엄청난 혁신과 결과들이 가능해졌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싱가포르나 두바이, 그리고 서울에서 일어난 경제기적에는 이런 장기적인 청사진과 리더십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다르다. 마치 단기 성과에 목숨 건 기업대표 같은 대통령이나 총리가 당장 눈앞에 둔 지방선거와 다음 선거에 표 될만한 포퓰리즘과 선심성 정책을 남발한다. 가장 쉬운 게 돈을 찍어내는 것 (인플레이션) 이다. 굳이 내가 암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 암이 곪아가고 있지만 내 임기에만 터지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훨씬 쉬운 건 진통제, 환각제 복용이다. 연금개혁, 부동산 개혁, 노동시장과 자본시장 개혁 같은 골치 아픈 문제들은 다 내평겨치고 민생의 이름하에 예산 편성하고 돈 빌리고 돈 풀면 단기 환각증세가 나타나고, 그 와중에 상대정권의 비리를 파헤치며 국민관심을 흐뜨러뜨리면 된다. 거의 모든 선진국 리더들이 이 방정식을 따르고 있다.
인구구조와 표
또 하나의 구조적 비극은 인구구조와 표의 악순환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인플레를 유발하고 자산가를 배불리 하면서 빚을 불리고 경제를 서서히 망가뜨리는 시스템에 최적화돼 있다. 이는 결국 오늘의 빚을 다음 세대에 전가하는 시스템이고 안정적인 자산형성이 어려워진 젊은 세대의 저출산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렇게 되면 청년층 인구감소 -> 더 적은 표 -> 정치적인 힘 약화라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된다.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60-70년대 생들은 연도당 100만 명씩 출생했지만, 90년대 생들은 약 70만 명, 2000년대 생들은 50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당장 산수로도 표 싸움에서 이미 게임이 되지 않는다.
결국 다음 세대는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소외되는 연쇄 붕괴에 빠지는 것이 현재 민주주의의 민낯이다.
1편은 여기까지. 2편에는 이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성경은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지 나눠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