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원인: 인간의 이기심
이번글은 최근 몇 달 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현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부조리, 구조적 한계에 대한 글이다. 1부 (링크: https://brunch.co.kr/@sanbaek/74)에서는 평생 일해도 자기 땅을 가질 수 없는 현대판 지주와 소작농의 세태를 조명하고, 자본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와 단기선거에 최적화된 민주주의의 구조적인 한계를 다뤘다. 2부에선 이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나눠보려 한다.
그렇다면 작금의 지주와 소작농으로 비유되는 부조리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제도의 문제인가? 제도를 바꾸면 해결되는 문제인가? 역사를 보면 꼭 그렇지 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왕정제와 봉건제: 소수의 이익을 위한 다수의 착취
왕이나 영주, 귀족이란 이름으로 계층을 나누고 권력관계를 공고히 한 과거의 시스템은 시스템의 목표를 "공동체의 존속"이 아닌 "통치자의 안위와 번영"으로 명백히 한다. 권력을 잡은 자들은 자신의 가문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혈을 짜내고 툭하면 전쟁 등으로 세력불리기에 힘썼다. 지금의 자본주의, 민주주의의는 그나마 국민이 주인이라는 인본주의적 명분이 있지만 왕정제와 봉건제는 그마저도 없는 권력관계와 착취가 구조적으로 용납되는 제도이다.
독재: 모 아니면 도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독재는 매력적인 선택지처럼 보일 때가 있고 역사적으로 보면 1부에서 소개한 근시안적 포퓰리즘으로 휩쓸리기 쉬운 민주주의에 비해 더 나은 결과를 낸 적으로 적지 않았다 (싱가포르, 한국, 두바이 등). 문제는 힘이 한 명이나 한 집단에 다 쏠릴 때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것. 부패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수많은 개도국 독재권력의 예 (북한을 포함), 터키 경제를 나락으로 빠뜨린 에르도반, 중국 경제와 사회를 흔들고 있는 시진핑 등이 대표적이다.
공산주의: 인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부정한 이상주의
공산주의는 이론적으로 완벽해 보였지만 인간의 자율성과 창의성, 성취욕구 등을 간과했다. 내가 열심히 일해도 내 것이 되지 않는 구조에서 인간은 나태해졌고, 자원을 분배하는 관료들은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자본가보다 더 지독하게 타인의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기술만능주의: 현재진행현 실험론, 하지만
실리콘밸리 등으로 대표되는 기술혁신의 중심에는 기술혁신이 인류를 진보케 하고 인류에게 더 풍요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 것이란 낙관론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전체가 다 먹고도 남을 만한 식량을 만든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전 세계 인구의 1/3은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하고 살고 있다. 부의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발전된 기술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데에도 쓰이지만 (예: 단순노동해방, 생명과학기술), 인간을 더욱 소외시키는 데에도 (소셜미디어 중독, 드론로봇 등 자율대량학살무기 양산)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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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만, 그것을 휘두르는 인간의 이기심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시스템이나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나와 내 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인간의 본성이 그 제어권을 쥐고 있다면 연쇄 붕괴는 멈추지 않는다.
재벌그룹의 임원을 십여 년째하고 있는 지인에게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다.
산아, 우리 그룹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뭔지 알아? 그건 재벌총수 그룹의 절세와 상속이야. 얼마나 많은 의사결정이 그것을 위해 일어나는지 일반인들이 알면 정말 깜짝 놀랄걸.
재벌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재벌의 의사결정 구조나, 민주사회의 의사결정 구조나 결국 힘 있는 자들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귀결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인류사회가 어떤 시스템을 도입하든 간에 '지주와 소작농'으로 대표되는 부조리, 불공정이 야기되는 것의 근본원인은 인간의 이기심이다.
얼마 전 국내의 연금개혁이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로 끝났다. 더 내고 더 받는 개혁. 연금 고갈이 눈에 보듯 뻔한 눈 가리고 아웅 하기식 개혁인데 그것조차 너무나 힘들었다. 프랑스에서는 연금개혁을 하려다가 총리가 날아가고 대통령도 날아갈 뻔했다. 트럼프는 노골적으로 금리인하를 요구하고, 한국의 정권 잡은 자도 민생 운운하며 돈 찍어내고 최대규모 예산 편성에 여념이 없다. 문제는 지금의 표가진 자들이 그걸 표심으로 비판할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동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미래세대에게 빚이 전가되고 나중에 국가부도가 나도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의 관심사는 오로지 나의 밥그릇, 힘 있는 우리의 밥그릇인 것이다. 인간이란 이런 면에서 참 약하고 이기적이다.
개개인이나 한 집단의 도덕성, 이기심만이 문제가 아니다. 집단과 집단의 이기심이 만나서 구조가 되면 죄수의 딜레마 - 나만 옳은 행동을 하면 나만 손해 보는 - 가 형성된다.
정치를 예로 들어보자. 어떤 정치인이 "미래 세대를 위해 현재의 선심성 복지를 줄이고 구조조정을 하자"라고 한다면 선거에서 지기 십상이다. 상대 진형에선 "빚을 내서라도 지원금을 주겠다"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 운영도 마찬가지다. 어느 기업이 과대광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환경, 노동자의 삶, 또는 제품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 성장보단 내실을 다지기로 결정하면 그 틈을 타서 과대광고를 일삼고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경쟁사에 시장 점유율을 뺏기고 도태될 수 있다. 또는 몸집불리 기를 보상하는 주주에 외면당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생태계를 해치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환경, 협력사, 투자자, 소비자 등), 개별기업의 입장에선 단기이익 또는 매출 극대화의 유혹을 거부하기 어렵다 (외부효과의 내부화 거부).
2편은 여기까지. 3편에는 과연 성경에선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해 보겠다. 3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