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와 소작농 (3)

성경에서 제시하는 해답

by San Baek 백산

이번글은 최근 몇 달 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현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부조리, 구조적 한계에 대한 글이다. 1부에서는 평생 일해도 자기 땅을 가질 수 없는 현대판 지주와 소작농의 세태를 조명하고, 자본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와 단기선거에 최적화된 민주주의의 구조적인 한계를 다뤘다. 2부에서는 인간의 이기심, 그리고 그 이기심이 만나 만들어진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구조적인 사회 부조리를 근본 원인으로 소개했다. 이제 3부에선 과연 성경이 이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


성경의 정의의 근간과 목표: 하나님의 속성이자 관계회복에 초점


성경은 기독교 (개신교, 가톨릭 포함)뿐 아니라 특히 구약일부는 유대교, 이슬람교에서도 받아들이는 인류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자 경전이다. 그리고 앞으로 소개할 정의에 대한 내용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에서 모두 믿는 성경 - 창세기/모세오경의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에서 근본을 찾는다. 그만큼 성경의 정의는 많은 종교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내용이라는 점을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이하에서 성경의 정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정의: 하나님의 속성 그 자체


성경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통설중 하나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받아주고 사랑으로 용납해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Love is Love로 대표되는 LGBTQ의 대표적인 표어, 현대 서구선진국사회에 만연한 무조건적인 용납 - 이런 것들이 마치 진짜 사랑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성경의 하나님도 그러리라, 또는 그래야만 한다는 풍조도 있다.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은혜"뿐 아니라 "진리"의 하나님이다. 신약성경에도 하나님을 묘사하며 Grace and Truth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 진리의 하나님의 속성이 정의이다. 진리가 아닌 것, 정의롭지 않은 것과 절대 타협하실 수 없는 존재가 하나님이다. 정의롭지 않은 제사는 아예 받지 않으셨으며, 죄에는 꼭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셨다. 법은 무조건 지키는 대쪽판사. 그게 하나님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조금의 타협도 없는 철저한 정벌과 박멸에 대한 명령 (가나안 정벌 등) 은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잘 드러낸다. 구약의 제사규례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철저한 율법을 따라서 이루어졌다. 인류의 죄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시다가 심지어는 본인의 하나뿐인 죄 없는 아들에게 대신 죗값을 묽게하신이 - 그가 하나님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이다.


참고로 성경에서 정의는 두 가지 단어로 나타난다 - 정의(미쉬파트)와 공의(체다카). 이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데, 이중에서도 개개인의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이야기하는 "공의(체다카)"에 비해 정의(미쉬파트)는 사회 구조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회복적 정의'를 의미하여, 이 글의 논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하에서는 미쉬파트 정의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철학적 정의와의 차이: 관계 회복에 초점


마이크 센델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는 현대 정치철학의 세 가지 정의를 소개한다.


1. 공리주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정의이다. (벤담 등)

2. 자유주의: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정의이다 (칸트, 롤스 등)

3. 미덕론: 인간으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도덕적 가치가 정의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등)


각각의 정의론에는 나름의 한계가 존재한다. 공리주의 하에선 소수의 권리가 희생될 위험이 크다. 자유주의는 공동체적 가치와 의무를 소홀히 한다. 미덕론은 어떤 미덕이 옳은가에 대한 합의가 어렵다. 이런 개별적인 한계뿐 아니라, 사회적 정의는 기본적으로 시대적 상황, 인간사이의 사회적 계약에 따라 정의의 기준이 변한다는 한계, 그리고 잘못에 대한 벌을 주는 "대가"에 초점을 맞춘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이하 자세히 소개할 성경적 정의는 위의 세 가지 관점을 모두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관계적 회복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크게 세 가지 부분에서 그러하다.


1. 절대적 기준: 시대나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성품이 기준이 된다.

2. 목표의 차이: 공정한 벌을 주어 현상을 유지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무너진 약자의 삶을 원래대로 회복" 시키는데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정의를 말할 때 항상 가난한 자의 권리회복을 이야기한다.

3. 동기의 차이: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 권리 보호라는 동기를 넘어서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나오는 희생적 사랑이 동기가 된다. 정의로운 사회 (관계적 성격)를 만들기 위해선 나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속성과 그를 바탕으로 한 사랑이 동기가 된다.


앞선 1부, 2부에서 살펴본 모든 시스템의 공통 원인인 인간의 이기심, 그리고 그게 집단적으로 구현된 사회적 부조리와 죄수의 딜레마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어디에 있는가? 철학에서의 정의는 "각자에게 그 몫을 주는 것"을 정의로 생각하기에 죄수의 딜레마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죄수의 딜레마 하에서 생기는 구조적인 약자는 계속 시스템에서 소외된다 (예: 표 힘에서 계속 소외되는 다음 세대). 하지만 성경에서의 정의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소외된 자가 없도록 기회를 되돌려주는 것"이기에 이기심과 죄수의 딜레마에 대한 실질적 대안이 된다. 인간의 이기심의 유효기간을 강제로 설정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구조적 안전망을 체계화한다. 이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성경의 정의의 구체적 설계: 죄성을 통제하는 사회적 장치


선한 본성은 살리고, 죄성은 통제한다


성경의 정의 구현 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 축을 가진다. 첫 번째 축은 인간의 선한 본성 (성경적 표현: 하나님의 형상)의 극대화, 두 번째 축은 인간의 약점 - 이기심에 대한 구조적 통제이다.


첫 번째 축 - 인간의 자유의지와 창조성을 극대화하는 것. 이것이 공산주의에서 간과한 부분이다. 성경은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달란트 비유 (더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더 큰 결과가 요구됨)처럼 각자의 역량에 따라 결과를 남기는 것을 이야기한다.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으리라"는 원칙하에 개인의 성과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담보함으로써 나태함을 방지하고 혁신을 장려한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의 근간이 된 시스템이므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현대 자본주의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 부분은 두 번째 축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구조적 통제이다.


현대 자본주의가 맹신하는 성과주의 (Meritocarcy)는 성경적 정의가 아니다


공산주의를 최고의 악으로 규정하고 현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마치 하나님의 정의인 것처럼 떠받드는 일부 보수 우파 기독교 진영에서 완전히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건 공산주의만큼이나 무조건적인 성과주의도 하나님의 정의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하에서 자세히 살펴볼 성경적 경제정의 - 특히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구조적 통제 - 는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진보적이다. 성과주의를 근간으로 삼은 현대판 자본주의에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들을 담고 있다. 네 가지로 자세히 살펴보자.


1. 안식년(Sabbatical Year): 부채의 대물림을 끊는 해방


자본주의에서 가장 무서운 '죄수의 딜레마'는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를 안식년으로 해결한다.


안식년은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의 해로, 부채탕감을 통해 '패자부활전'을 제공한다. 성경은 사유재산을 인정하기에 개개인은 성과에 따라 부자가 되기도 하고 빚을 질 수도 있고, 빚을 갚지 못하면 "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매 7년, 안식년이 돌아오면 채권자는 재무자의 모든 빚을 탕감해 줘야 하고(면제년), 종 되었던 자들을 다시 자유인으로 돌려보내며, 이때 빈손으로 보내지 말고 후히 대접해 내보내야 한다. 이는 죄수의 딜레마 속에서 채권자가 채무자를 영원히 착취하는 굴레를 끊어버리는 장치이다. 또 실패한 자에게 '패자부활전'을 보장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역동성을 유지하고 극단적인 양극화로 인한 시스템 붕괴를 예방한다.


2. 희년(Jubilee): 부의 영구 독점을 막는 리셋 시스템


안식년보다 더 강력한 리셋 장치가 희년이다. 안식년이 매 7년 마다라면, 희년은 매 7번째 안식년 (7x7)마다 돌아온다.


희년은 인간의 이기심이 세대를 넘어 부를 독점하고 계급을 고착화하는 것을 막는 가장 강력한 법이다. 이 시스템의 근간에는 모든 땅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인간은 일시적인 관리자일 뿐이라는 원칙이 있다. 이 원리 하에서, 매 50년 (7x7+1)마다 빚의 면제뿐 아니라 모든 토지가 원주인에게 돌아감으로써 모든 경제적 상태가 원점으로 돌아간다. 5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성실히 일해 부를 축적하는 것은 허용하되, 그 부가 세대를 넘어 타인의 기회를 영원히 박탈하는 '지대 추구'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 승자독식으로 인해 다음 세대의 출발선이 파괴되는 것을 방지한다.


3. 이자 금지, 사회적 약자 (고아/과부/나그네)를 위한 배려의 구조화


성경은 공동체 내의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줄 때 이자를 받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투자를 위한 상업 대출이 아닌, 생존을 위한 '구제 대출'에서 이자를 받는 행위를 "정의롭지 않은 행위"로 규정한다. 돈이 권력이 되어 노동 없이 타인의 고통 위에서 부를 쌓는 '약탈적 금융'과 '불로 소드긔 통로를 맡는 것이다.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는 구조를 방지하고, 자본의 흐름이 이윤 극대화가 아닌 '이웃과 관계의 회복'이라는 목적에 머물도록 함으로써 공동체 파괴를 방지한다.


또 성경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개인의 자선에만 기대지 않고, 경제 시스템 내의 '자동 분배 장치'를 설계했다. 이는 성경이 가난한 자의 회복을 "정의"로 정의하고, 이들에게 스스로 일할 기회를 주는 '참여적 공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추수할 때 밭모퉁이까지 싹쓸이하지 말고,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라는 법 - "이삭 줍기 법"이다. 이것은 약자들에게 단순히 구걸을 시키는 게 아니라, 약자를 위한 일자리를 구조적으로 강제하여 그들이 직접 노동하여 자존감을 지키며 먹고살 수 있는 '일자리'와 '기회'를 남겨두라는 명령이다. 또한 대표적인 규례가 매 3년마다 소득의 십 분의 일을 가난한 자를 위해 내는 구제 십일조의 계명이다. 이 십일조는 나그네, 고아, 과부를 위해 사용하도록 지정되어 있다. 국가적인 복지 기금을 제도화한 셈이다.


성경적 정의의 경제구조 요약


앞서 소개한 성경의 정의의 구체적 시스템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관계의 회복: 실패한 자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어 공동체에서 이탈되지 않게 한다. (안식년, 면세년)

2. 자산의 한계 설정: 땅과 자본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인간이 영구 독점할 수 없다. (희년)

3. 자본에 의한 타인/노동 약탈 방지: 타인의 고통과 궁핍을 이용해 부를 증식하는 것을 금한다. (이자 금지)

4. 존엄한 분배: 약자들이 스스로 노동하여 삶을 영위할 기회를 시스템적으로 보장한다. (모퉁이 법)


결국 성경의 하나님이 이토록 구체적인 법을 주신 이유는 "인간은 내버려 두면 반드시 이기심으로 남의 것을 빼앗고 시스템을 파괴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단순히 "불쌍한 사람을 도와라"는 감정적인 호소나 "약자를 사랑하라"와 같은 원론적인 명령이 아니라, 이기심에 의한 죄수의 딜레마가 개인과 공동체를 자멸시키지 않도록, 강제적인 '사랑과 정의의 시스템'을 제시하고 명령한다. 이 구조적 장치들이야 말로 역사의 어느 철학이나 사회적 합의에서도 이뤄내지 못한 혁신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약자나 다음 세대를 착취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마치며 -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1부 -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실패, 2부 -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죄수의 딜레마, 구조적 실패, 3부 - 대안으로써 다시 살펴보는 성경의 정의를 이제 마무리하려 한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낡은 질서, 시스템의 몰락은 새로운 시스템을 낳았다. 르네상스에 의해 오래된 왕정과 봉건제가 붕괴하며 현대 민주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했고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량생산과 거대 기업의 탄생은 현대 자본주의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몇 번의 홍역을 거치며 공산주의, 대공황, 신자유주의 같은 기형아를 낳으며 진화해 왔고 지금은 2차 대전 이후 유지되어 온 시스템이 다시 한번 총체적인 실패와 변혁을 맞이하는 과정가운데 있다. 각국은 감당하지 못할 빚을 지고 있고, UN 등의 국제공조는 무력해지고, 각국은 군비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개별국가 차원에서도 (다음 세대가 평생 소작농으로 살게 되는 구조), 국가 간 질서 차원에서도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시대, 기후위기) 점점 이기심과 죄수의 딜레마로 공동체의 존속이 위태로워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새 시대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으로 미국이 발표한 2025년 국가안보전략이 대표적이라고 본다 - 관련링크)


새로운 위기 앞에 놓인 우리에겐 진리로서 (arguably) 지침을 주고 있는 성경의 가르침, 그리고 창의성과 생존력이 있다. 과연 우리는 개개인의 이기심과 죄수의 딜레마를 이기고 어떤 새로운 질서에 도달할 수 있을까. 역사는 분명 "그럴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분명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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