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2025, Welcome 2026

by San Baek 백산

들어가며


2026 구정이 되어서야 작년을 정리하는 글을 쓴다. 더 늦기 전에 올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부랴부랴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한국 온 지 3년, 총평을 해보자면 첫 두 해에 비해 훨씬 더 안정을 찾은 한 해가 아니었나 한다. 나도 가족도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에 정착한 느낌이 물씬 나는 감사한 한 해.


최근에 일련의 만남과 사건을 겪으면서 내 삶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됐다. 한 가지 소개하자면 하율이 (우리 집 둘째)의 수영이다. 하율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맘이 많이 쓰인다 - 세 형제 중 둘째로 집에서도 본인의 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게 보이고 말도 친구들보다 느리고 나이도 좀 어린 편이라 학교생활도 편치만은 않아 보였다. 엄마가 여러 각도로 신경 쓰다가 하나 꾸준히 해보고 있는 게 수영이다. 수영을 통해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기르고 있는데 본인도 열심히 하고 조금씩 실력도 늘고 있어서 부모로서도 흐뭇하고 뿌듯하다.


하율이가 수영을 하고 그걸 통해서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성장하기까지는 하율이의 노력도 절대적이지만 그전에 부모의 다양한 노력과 헤아림이 있었다. 어찌 보면 부모의 노력과 지휘가 - 하율이에게 맞는 운동을 고민하고 시도하게 해 보고 찾고 하율이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하율이를 어르고 달래고 격려하고 해서 하율이에게 그 성장과 승리의 짜릿함을 맛보게 하기까지 - 팔 할일 수도 있다.


문득 생각한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의 노력과 반응이 있기에 앞서서 그걸 가능케 해주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의 orchestrating이 있다면? 누구는 그걸 운명이라 부르고, 인연, 업보, 사주팔자, 아니면 신의 가호와 이끄심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 난 그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부르고 믿는다. 지금까지는 그 인도하심에 그리 민감했던 것 같지 않은데 올해는 더 그걸 의식해 보게 됐다. 아, 큰 그림에서 보자면 나와 아내를 이렇게 한 걸음씩 인도하고 계시는구나 이렇게. 이하 더 나눠본다.


1부. 하늘로부터 온 축복들 - 가정, 교회


하늘의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축복은 가정과 교회라는 공동체의 울타리다. 학교에 가서 나름의 전쟁을 치르는 아이들에게 가정이 든든한 베이스캠프가 돼주는 것처럼, 내겐 가정과 교회가 그런 역할을 해줬다.


캄보디아 선교: 상반기 결산에도 썼지만 2월에 온 가족이 함께 간 캄보디아 선교는 우리 가족의 한해를 여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가족구성원 모두가 피어나는 시간. 마치 햇빛과 물과 영양분을 듬뿍 공급받은 꽃들처럼 한 명 한 명 더 피어나도 살아났다.


1. 모두가 피어나는 시간: 먼저 캄보디아 아웃리치는 우리 가족 모두가 피어나는 시간이었다. 아내는 찬양팀 리더, 어린이 사역 프로그램팀의 모든 물자를 구입하고 프로그램을 짜는 역할, 공연팀 등으로 마르다처럼 일했다. 그러다가 막상 사역지에선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아다녔다. 모든 사역팀이 아내가 반짝이며 피어나가는 걸 보고 감탄했다. 예배자로서 상대방을 섬기는 헬퍼로서 하나님이 아내에게 주신 여러 달란트와 기질이 온전히 피어나는걸 나는 알 수 있었다. 하루도 하율이도 하임 이도 너무나 잘 놀고 행복해했다. 하루는 공연팀에서 공연하는 걸 전심으로 좋아하고 열심히 했고 하율이는 한 살 위 형들과 아저씨들과 계속 놀면서 마음껏 즐겼다. 하임 이는 일도 곧잘 거들고 동생이랑 형이랑 딱 붙어 다니며 이쁨과 사랑을 듬뿍 받았다. 나도 축구 실컷 실컷 하고 말도 안 되는 MVP까지 받으며 자아실현을 했다. 다녀와서 애들 모두들 다시 가고 싶다고 계속 노래를 부를 정도이다

2. 서로 하나 되며 가족이 커지는 시간: 지난번에도 그렇지만 이번팀도 엄청 끈끈했다. 가기 전부터 1박 2일 여행 가고 서로서로 알아가며 정말 친해졌다. 가정이 헤어지는 아픔을 경험한 사람도, 새로 교회에 정착하는 사람도, 몸이 아픈 사람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고 서로 놀고 하는 가운데 각자의 마음이 열리고 하나 됨을 느낄 수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아이들, 청소년, 선교사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말도 통하지 않던 현지 청소년들이 우리 공연팀의 지도를 따라 춤을 연습해서 몇 시간 만에 같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는 건 감동 그 자체였다. 현지사역에 인생을 바친 선교사님들과 축구하고 교제하고 기도하는 시간도 감동이었다. 기도와 찬양이 넘치고 같이 땀 흘리고 울고 웃는 가운데 어느새 가족이 커져갔다.

3. 나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시간: 사실 캄보디아 가기 전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고 기도제목이 생겼다. 아내와 나누는 가운데 다툼도 있었고 내 머릿속은 고민과 걱정으로 영 얼크러져 있었다. 캄보디아에서의 4박 5일 중에 그걸 온전히 잊을 수 있었다. 이 시간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온전한 안식이고 쉼표였다.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의 시간. 나에게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시간.

4. 새로운 찬양을 발견한 시간: 이번 사역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공연이었다. 노래가 아닌 춤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역인데 아내와 딸이 참여하여 온몸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걸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나도 찬양하고 예배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awe를 경험하고 있었다. 새로운 찬양을 접했다.


아내: 아내는 올해 학교 어와나 디렉터로서 더욱 멋지게 맡은 바에 충실하고 열매를 맺어왔다. 러닝으로 기부하는 챌린지를 진행하기도 하고 연말 크리스마스 채플을 이끌고 말씀도 전하면서 학생들에게 영적 씨앗을 심는데 정진했다. 중간에 영어 어머니학교 praise lead도 하고, 인도하시는 자리에서 조금씩 stretch 되면서 성장하는 아내를 보는 게 참 보기 좋다. 달리기에 맛 들여서 월에 100km 가까이 뛰고 부부 계정도 만들어서 릴스도 뚝딱뚝딱 만들고 있다. 새 아이들과 여러 주위사람들을 보살피면서 기쁘고 밝게 살아가는 아내가 늘 내게는 든든한 짝꿍이다.


하루: 하루는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게 뭐가 있냐는 질문에 교우관계를 꼽았다. 너무 자기중심적이지 않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젠 곧잘 친구들도 챙기고 친구들 사이에서 peacemaker로 역할을 한다니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 친구들과 노는 게 갈수록 소중해주는 10대, 이젠 동생들이 놀 때 혼자 책을 읽는다든지 하는 십 대 티가 조금씩 나기 시작하는 아이로 커가고 있다.


하율: 하율이는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열심히 했다고 대답했다. 정말 올해 하율이 열심히 했다. 영어 reading이 또래에 비해 많이 부족했는데 여전히 또래에 비해선 느리지만 정말 많이 늘었다. 수영도 이제 모든 영법을 50M 50초 안에 들어오는 수준까지 이르렀고, 태권도도 검은띠를 기어코 따냈고, 10Km 달리기도 완주했다. 뭐든 시작하면 결과를 보고 싶어 하는 승부욕과 근성이 보이는 완연한 사내자식. 말도 안 되는 똥고집과 돌발행동이 하율의 약점이라면 이런 승부근성과 깡다구,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따뜻한 마음은 하나님이 하율이에게 선물로 주신 보석 같은 성품이다. 노력하며 성장하고 있는 아들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고 자랑이다.


하임: 하임 이는 올 한 해도 씩씩하게 형 누나를 따라다니며 잘 지냈다. 형 누나만 수영한다고 자기도 시켜달라고 보채지도 않고, 따로 공부를 거의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 할 건 해가면서 어느새 영어도 잘하고 학교에서도 인사이더, 어딜 가나 생기발랄한 우리 막내는 참 신통방통한 아이이다. 한 번씩 어른스러운 말과 표현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내. 맘대로 안되면 소리 지르고 한 번씩 폭발하는 생떼 때문에 혼도 꽤 나지만 하임이 생각하면 걱정은 안 되고 든든하다.


형네 식구들: 형수님과 조카 주호가 온전히 교회에 적응했다. 같은 셀에서 매주 보면서 삶을 나누고 사촌끼리 자주 보며 너무나 친하게 잘 놀고 지내는 게 정말 보기 좋다. 주호는 주호대로 새로운 도전들을 계속해나가고 있고 형수님도 긍정의 화신으로 신앙에서나 삶에서나 놀라운 겸손함과 밝은 에너지를 늘 뿜뿜 뿜어내서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제 pub을 오픈한 지 4년째 된 형도 점차 마음으로나 내공으로나 안정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형의 유머와 센스, 그리고 특유의 냉철한 판단력이 우리 가족에겐 참 보물이다.


가족여행: 올해는 야심 차게 해외 가족여행을 갔다. 또 만만한 게 베트남이라 - 어머니 칠순인 2018년에 가고 7년 만에 다시 어렵게 푸쿠옥 가족여행을 길지도 않은 3박 4일 일정으로 갔는데, 비행기 연착에 비도 많이 오고 여러 만만치 않음도 있었지만 그런 건 다 잊힐 정도로 함께하는 시간 내내 웃음과 감사가 넘쳤다. 기적같이 비행기를 같이 타게 되고, 개일지 않을 것 같은 하늘이 개리는 역사도 있었다. 특히 부모님이 많이 웃으신 것, 형이 꽤나 수영도 하고 농담도 던지며 즐긴 것, 그리고 마지막 식사 때 아버지가 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란 멘트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잘 표현하지 않는 형이 보낸 카톡 메시지도 나를 울렸다. 가족이 함께 보내는 쉼의 시간과 추억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든든히 설 수 있는 힘을 준다. 하늘로부터의 사랑과 은총이 우리 가족에 조금씩 더 스며듬을 느낀다.


처갓집 식구들: 장인, 장모님은 장로/권사로서 가장 어려운 사역 중 하나인 몇천 명의 전교인을 매주 먹이는 식당봉사 총책임을 올 한 해 온전히 맡아 해내셨다. 장인어른은 은퇴 마지막 한해를 교회 봉사와 회사일을 성실하게 하시며 보내셨고 장모님은 다섯 번째 손주를 봐주시며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봉사와 섬김의 자리를 지키면서 한해를 또 나셨다. 이젠 어엿한 애들 아빠가 된 처남 인영이네는 언제나처럼 열심히 놀고 또 일하면서 잘 살고 있다. 땡스기빙을 맞아 미국에서 같이 가서 놀았는데 참 좋더라.


틴즈: 한해 한해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 인연을 쌓아가고 그분 마음을 더 알아가는 것, 그리고 매년 여름과 겨울에 가는 수련회가 주일학교 교사로서의 특권이자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한국에 와서 다시 섬기게 된 서울의 청소년들은 더 애틋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경쟁하고 비교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문화에서 자란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전후 주어진 스마트폰이 유일한 안식처, 도피처, 친구가 되어온 삶, 살인적인 집값과 고꾸라치는 경제성장률 세계 최고의 노령화 속도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부담감만 앉고 시작하는 세대…이런 환경가운데 눌려있는 애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팠고, 거짓말처럼 쌩쌩하게 눈빛을 반짝이며 목이 터져라 예배하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애들을 보면 감탄이 나왔다. 올해의 하이라이트는 보석 같은 고3친구들 (2007년생) 아이들을 반 담당선생님으로 맡아 교제한 것, 정체성이 주제였던 겨울캠프 "해쉬태그", United가 주제였던 여름캠프였다. 다음 세대의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고 보여주시는 게 느껴진다. 아래 2025년 여름에 다녀온 드림틴즈 여름 수련회 후기를 간단히 적어본다


1. 이번 수련회의 theme 은 United였는데 주요 행사는 비전 찾기, 나침반 그리기였다. 개인적으로 수없이 해보고 아주 지대한 관심 있는 주제인데 이번 캠프에서 나의 비전을 다시 한번 확인받았다. 여전히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내 기도를 하나님이 바꿔주셨다. “산아, 기도가 너무 작구나. 너의 개인의 커리어가 아닌 이 세대를 달라고 기도해야지. 이 세대의 회복과 부흥과 번영을 달라고. 그래 그게 너의 비전이지”. 그래 크리스천으로서의 비전은 결국 내게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찾는 것. 그분을 만나고 그분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우리 나침반이 진북을 찾아간다.

2. 학생들의 비전 나침반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움츠러들어 있는지 느꼈다. 특히 세상에 뭔가 스스로가 모자란다고 느껴지는데 그 부적절함 (inadequacy)를 제대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워하는 한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자 이 친구가 마치 묵현던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처럼 반응하며 뭔가 이 친구의 스위치가 켜지는 것 같은 순간을 경험했는데 눈물이 나더라. 얼마나 그간 답답했을까. 얼마나 이 영혼이 숨 막혔을까. 뭐가 문제였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우린 참 많은 데에서 해방될 수 있다. 성령님은 그걸 알게 하시고 해방시키시며 억눌려있는 우리를 보고 같이 탄식하며 눈물흘리 신다.

3.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란 김희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참으로 멋진 이야기였다. 본인의 업을 “이야기 짓기” 로 정의하고 수많은 일들을 그 업 안에서 해온 열정적 일꾼. 원칙을 지키고 하루 앞만 보고 달려왔을 때 쌓여온 커리어의 힘. 그건 늘 미래를 불안해하며 은퇴를 이야기하고 세상변화의 물결을 잘 예측해 기회를 노려 한방을 꿈꾸는 등의 세상 논리와 정반대였다. 나도 이렇게 일하고 살고 싶다는 마음을 준 시간

4. 그 밖에도 둘째 날의 잊지 못할 설교, 학생들의 잊지 못할 공연들, 우리 다 같이 예배하며 불태웠던 밤의 에너지. 늘 들어도 감탄하는 문목사님의 유머와 설교. 기억에@남을 추억이 참 많다. 아 그리고 2019년 터키선교지에서 만난 선교사님 꼬맹이 자녀가 다 큰 숙녀가 돼서 캠프에서 다시 만나는 우연을 경험하기도 했다. What a chance.

여전히 난 우리 틴즈 친구들을 보면 인간적 마음에 걱정이 될 때도 많다. 대입도 어렵지만 취직은 더 어렵고 사회의 역동성은 줄어들어 가고 테크는 갈수록 인간을 소외시키고 신앙인으로 산다는 건 더 오해받고 외면당할 거고… 하지만 하지만, 성령님과 함께 권능을 받아 이들은 내가 상상치도 못한 걸 보여주는 세대가 될 것을 믿는다. 우리 다음 세대가 불안세대가 아닌 반짝이는 세대 (Anxious generation 이 아닌 shiny generation)가 되기를 기도하고 응원하고 소망한다.


셀: 셀모임은 신기한 곳이다. 나를 아주 잘 아는 사람들도 아니고 나와 여러 배경이 비슷한 사람도 아니다. 심지어 우리 셀은 나이대도 다양하고 직업과 사는 곳도 천차만별이다. 그런 우리가 모여서 매주 자신의 삶을 나누며 잠깐 기도하고 헤어지는데 그 모임이 그렇게 life giving 할 수가 없다. 아내와도 못했던 이 이야기, 아니 스스러와도 못했던 이야기를 그 모임에 가면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필터 없는 진솔한 마음을 접하면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나고 내 마음의 단단한 응어리가 녹아내리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내 어깨에 짊어진 무게를 다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내 마음에 뭉쳐졌던 응어리들을 다 풀어내볼 수 있는 곳. 그런 공간과 시간과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이십여 년 다니던 직장을 나와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중년의 가장,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를 일 년간 기도하다가 관계회복을 경험한 엄마, 청년을 위한 섬김에 순종하면서 청년이 된 아들의 신앙과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부부, 부부싸움부터 투자에 대한 고민들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늘 티카타카하는 귀여운 30대 부부, 하나하나 너무 다채롭고 나름의 빛으로 빛나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함께 울고 웃고 기도하며 우리를 살아내게 하시는 것을 보면 참 놀랍다.


축구팀: 종종 한 주간 내가 가장 기다렸던 시간, 캄보디아 이후 생긴 몇 동갑내기 친구들과 형동생들과 함께 마치 대학교 때로 돌아간 것처럼 같이 축구하고 수다 떨고 브로맨스를 나누는 일요일 저녁의 루틴이 내겐 참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일 년 정도 해보고 있는 왼쪽윙 포지션은 이제 순발력도 민첩성도 테크닉도 안 돼서 그만할 때가 됐다는 게 느껴지지만, 플레이로 인한 자괴감과 스트레스만 빼면 버릴 게 하나도 없었던 축구팀.


2. 하늘로부터 온 축복들 - 새로운 사람들과 경험들


하늘로부터 온 축복의 두 번째는 사람과 경험이다. 첫 번째가 든든한 베이스캠프였다면 두 번째는 새로운 탐험과 자극이었다.


1) 좋은 사람들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 올해 내 삶에 가장 고마운 사람들,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들을 꼽아보자면 일터에서 만난 몇몇 분들이 생각난다. 올해 새로 만나 함께하게 된 많은 사람들이 참 좋았다. 성품이 훌륭하고 일적으로 존경스러운, 같이 일하게 돼서 신나고 감사한 사람들이었다. 일하다 보면 의견도 갈리고 토론도 많이 하게 되고 때론 감정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같이 성장하는 과정가운데 있는 걸 느끼게 해 준 사람들. 회사 밖에서도 보고 오랜 인연을 맺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내게 보내주신 축복이 참 감사하다.


신앙 안에서 만난 사람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특히 멋진 중년의 남성들을 많이 만났다. 로컬 교회에서도 만났고 교회 밖의 모임에서도 만났다. 이들의 삶을 어깨 너머로 보고 이들이 어떤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사는지 보는 것 만으로 큰 지침이 됐다. 내가 닮고 싶은 중년 남성의 모습을 "강하고 간지 나는 수컷"에서 "많은 사람을 하나 되게 하고 살릴 수 있는 수컷"으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준 형님들, 이들을 보내주시고 이들을 통해 진짜 '멋'을 보여주신 게 참 감사하다. 이하는 필리핀 선교를 다녀와서 쓴 글.


전에 인상 깊게 읽은 한국과 유럽의 중산층 비교글이 있다. 한국 중산층의 기준은 서울 아파트 자가, 일정급 이상의 자산 등등 대부분 물질적인 잣대인 반면 유럽 중산층은 섬기는 비영리단체가 있고 자기만의 취미를 가지고 문화생활도 하며 비평도 하는 전혀 다른 기준이었다. 한국의 중산층에 대한 기준이 이다지도 일치원 적인이유가 뭘까. 워낙 잘살게 된 역사가 짧아서 진짜 “잘” 산다는 게 뭔지 몰라서가 아닐까.

내가 그려온 멋진 중년의 모습도 나도 모르는 사이 위의 한국 중산층과 같은 모습이 있었다. 힘 있고 강한 수컷 - 사회직 지위와 영향력, 경제적 안정, 패션 센스와 탄탄한 몸매로 에스콰이어 나올 것 같은 간지 나는 아저씨. 집에 자기 취미 수납공간을 두고 있고 찾는 사람 많고 중요한 사람에 예워쌓여 카리스마 넘치는 그런 중년남성.

이번에 필리핀에서 만난 70년대생 형들은 완전히 다른 “간지“를 내게 보여줬다. 언제 어디서든 찬양으로 기도를 인도할 수 있는 능력. 남녀노소를 넘나드는 큰 그룹을 사회로 레크리에이션으로 이끌며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리더십. 마이크만 잡으면 빵빵 터지는 재치와 유머. 어린애들 십 수명을 한 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개인기. 어려운 일을 뒤에서 해치우거나 되게 만드는 뚝심과 내공. 어린 사람들, 약자들을 주목받게 만들고 축복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 너무나 간지 나는 모습들이 많았다. 웃음과 울음을 주며 사람을 깨우고 살리고 하나 되게 하는.

진짜 멋을 보니 느낌이 오더라. 꽉 찬 남자의 무게감. 그 진짜 간지. 바라볼 곳을 만들어 줘서 고맙습니다 형님들.


2) 새롭게 맞닥뜨린 영감들


성령이 하고 계신 일: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가 "이 땅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 보게 하소서"였다. 돌이켜 놓고 보니 참 많은 곳에서 새로운 아름다움과 영감을 맞닥뜨렸다 (encounter). 발견했다. 마치 정말 맛있는 새로운 음식을 맡보고 내뱉는 탄성처럼 (난 음식에 별뜻이 없지만), 올해 경험한 다양한 아름다움의 순간들을 나눈다.


한 가지의 시각을 더 나누고 싶다 - "성령이 하고 계신일". 얼마 전에 너무도 나의 가슴을 뛰게 한 한 선교사님과의 만남이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찾아가 1:1 만남을 가졌는데, 이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제가 30대 때 북한 관련 일을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죠. 부르심이 있어서 순종하고 연변에 가서 30대를 살았는데, 그때 저와 같이 Korean Disapora 몇 가정이 미국에서의 다양한 커리어를 내려놓고 같이 있었어요. 다들 나이도 비슷하고 애들도 비슷해서 같이 삶을 살았죠. 그리고 지난 20년간 그 몇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일을 보면 정말 놀라워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북한을 가고 선교가 일어나는 물꼬를 트는 그런 역할들을 저희 몇 가정이 하게 됐어요. 우리가 그때 연변에 북한사역으로 모인 게 전혀 우리 간 한 게 아니란 걸 이제 20년이 지나서 깨달았어요. 아 그건 성령님이 하신 일이었구나. 참 놀랍지 않아요"


성령님이 하고 계신일, 이글 도입부에 나눈것처럼 나의 삶의 시각을 조금 더 넓혀서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만약 그런 보이지 않는 손이, 개개인의 사주팔자나 생사회복을 넘어 이 땅의 사회와 문화와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다면, 난 과연 그 스토리 하에서 어디에 있고 무엇을 경험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며 아래 나눠본다.


Disapora - 성령의 부르심으로 모이고 있는 사람들: 올해 생긴 제일 신기한 모임 중 하나는 이거다 - Korean Disapora 모임. 로잔대회 이후 몇 명이 모여서 시작했는데,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저녁 먹으며 아무 어젠다 없이 free flow로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나누고 싶은 걸 나누고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는 그런 "쉼"의 모임이 되었다. 전 세계를 누비며 market place에서 일하는 한국 디아스포라들의 모임인데, 신기하게 한둘씩 한국으로 모이고 이미 모인 사람들도 다양한 모임에서 서로 힘을 보태며 대화를 나눠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1) Faith & Work 2) Next generation 3) North Korea와 같은 Theme들이 생겨났다. 나도 이 모임을 통해 대천덕 신부님의 글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새롭게 생겨나는 크리스천 학교도 알게 되고, 여러 간증을 목도할 수 있게 됐다. 분명 무언가 하고 계시는구나. 그분의 때가 되면 뭔가 여러 일들이 일어나겠고,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들도 더 명확해지겠구나.


필리핀 선교 - 기회가 없는 자들을 대변한 성령님의 화: 올해 가장 크게 은혜받은 순간은 아마 필리핀 선교가 아니었을까 한다. 준비모임에도 팅크탱카 하며 애들 데리고 아내도 없이 선교가며 거의 민폐 무임승차 수준으로 참여했는데, 내 이야기를 현지 청년들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나의 간증의 주어가 "나"에서 "예수님"으로 바뀌는 경험, 그리고 그 이야기가 신약의 예수님 사역과 온전히 일치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성령님의 화를 느끼는 경험을 했다.


필리핀 시골마을에서 만난 청년들의 삶은 그 밝은 얼굴들과는 정반대로 대조될 정도로 처참했다. 우리 조 세명의 아이들 중 둘은 부모가 없거나 편부모에서 자랐고, 스물 여명의 청년들 중 대다수가 본인이 직접 아는 그 누구도 시골마을을 벗어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유튜브로 다양한 삶을 접할 수는 있지만 SAT 같은 시헙치를돈도 없고 아무런 연고도 없어서 꿈꾸지 못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도할 때 형언할 수 없는 "화" 가났다. 그분의 음성이 느껴졌다. "산아, 화나지? 나도 너무 화난다. 맘껏 화내렴. And 뭔가 해보자."

꿈같았던 필리핀 천국잔치의 감동을 나눈다. 40여 명 서울드림교회 성도들과 필리핀 구 밧 시골마을에서 어린이/청년사역, 마을보수 등을 진행했다. 기존의 간증은 주로 나에 대한 것들이었다. 일례로 캄보디아 선교 간증은 1) 우리 가족이 피어나는 시간 2) 서로하나되며 가족이 커지는 시간 3) 나에게서 잠시 벗어날 수 있던 시간 4) 새로운 찬양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이번엔 주어가 내가 아닌 "그분"이 됐다. 그분이 내게 하신일이 너무나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이하 나눔 (크리스천이 아닌 분들은 전혀 공감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 주의)

1. 당신이 내게 누군지 알려주심: 이번 선교의 개인적 하이라이트는 현지 청년들에게 간증을 나눈 시간이었다. 준비과정에서 간증문이 수없이 엎어지다가 결국 간증 전 예배에서 네 가지로 정리됐다. 예수님은 1) 나의 치유자 (Healer) 2) 나의 구속자 (Redeemer) 3) 나의 주님 (Lord) 4) 나의 살아있는 희망 (Living Hope) 1) 그분은 한국에서 앞만 보고 살던 나를 미국으로 불러내 따뜻한 친구들과 멋진 문화를 가진 MBA를 통해 안식을 회복시키고 치유하셨다. 그 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2) 2019년 여전히 성취에 목말라 살던 나를 "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셨다. 나의 평생의 우상인 "사람들로부터의 인정, Pride"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고 그분과 사랑하고 연합하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하셨다. 그분은 나의 죗값을 치르고 나를 신부로 맞으신 리디머 (redeemer) 시다. 3) 그리고 본인의 마음을 내게 보이시며 내게 비전과 미션을 주시고 나를 다시 한국으로, 테크업계로, 다음 세대로 파송하셨다. 그분은 내 주인이고 선생님이다. 4) 그리고 그분은 이 아픔 많고 어려움투성이인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내게 살아있는 희망이다. 이게 다가 아닐 것이라는, 더 순수하고 아름답고 온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며 그것이 회복될 것이란 소망. 그걸 붙들고 오늘도 살아갈 수 있다.

막상 이게 정리되자 성경 속 예수님의 사역과 나의 예수님이 거의 1:1로 대비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공생애의 치유사역, 십자가의 대속사역, 사도행전의 파송사역, 그리고 지금 이어지는 성령사역. 이게 나의 간증이고 성경의 이야기다. 이게 깨달아지자 너무 놀라웠다...

2. 회개케 하심 (repent): 그간 그분이 아닌 다른 것들을 사랑해 왔던 것을 회개할 수 있었다. 남편은 아내를 기뻐하며 아내와 하나 될 것을 바란다. 아내가 남편에게 등 돌리고 다른 것들에 빠져있을 때 - 그게 명백한 간음이든, 아님 일이나 아이들과 같이 좋아 보이는 것이든 - 그건 관계를 갉아먹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당신과 나의 관계에서 본인이 남편이고 내가 아내임을 리마인드 해주셨다. 내가 그분께 등 돌린 수많은 순간 그분이 나를 얼마나 원하셨는지 얼마나 사랑으로 기다리셨는지 말씀하셨다. 순결한 신부로 나를 불러주시고 만들어가고자 하는 (잠언 31장) 그분의 마음. 회개가 나오며 눈물이 쏟아졌다. 그분 안에서 난 룻이고 우물가의 여인이고 바리새인에게 끌려온 간음한 여인이며 예수님의 발을 씻던 마리아였다.

3. 새로운 가르침을 주심 (new teaching): 또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 그분을 더 예배하고 더 동행할 수 있을지 알려주셨다. Truth + Sacrificial love. 일상에서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부인하고 상대에게 자신을 내주기. 그러면서도 진실을 잃지 않기. 회사생활의 여러 문제에도 지혜를 주셨다. "산아, 진실을 이야기하되 상대방에게 온전히 너의 패를 다 보여주고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렴. 그게 예배야. 그렇게 살아갈 때 나와 더 하나 될 수 있을 거란다."

4. 당신의 "화"를 느끼게 해 주심: 선교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스물 여명의 현지청년이었다. 필리핀 시골마을에서, 크리스천으로 사는 게 종종 따돌림받고 손해 받는 현실에서 믿음을 지키며 사는 청년들. 우리 조 세명의 아이들 중 둘은 부모가 없거나 편부모에서 자랄 정도로 가정의 아픔도 많았다. 주위 친구 친척 한 명도 시골마을을 벗어나는 걸 본 적이 없다는, SAT 치를 돈이 없어서 유학을 꿈꾸지 못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 화가 났다. 그분의 음성이 느껴졌다. "산아, 화나지? 나도 너무 화난다. 맘껏 화내렴. And 뭔가 해보자."

Ps: 나의 음악으로 그분을 찬양하는 예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품게 됐다.


IDM -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향한 그분의 마음: 참 신기한 사역자와 Movement에 또 초대되어 버렸는데, 그건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위한 Ministry였다. 성경에도 자주 나오는 고아와 과부, 나그네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과 계명들, 결국 하나님이 바라시는 정의 (미쉬파트)는 이런 약자들이 보호받고 약자들에게 힘이 주어지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그대로 수용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알게 됐다. 참 나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관심사로 보면 맞지 않는 옷 같은 면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강자로 보일지 모르지만 다양한 아픔과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주위사람들에게 더 공감이 느껴지고 다가갈 수 있다고 느껴왔기에. 그래서 더 신기하고 호기심이 간다. 과연 이 성령의 역사에도 내가 할 일이 있을까. 어찌 됐건 참 아름답고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걸 조금씩 가까운 곳에서 경험하고 볼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기고 있다.


YLC - 하나님의 새 부대: 친구의 소개로 가게 된 Young Leadership Counsil 이란 한국의 사업가 중심의 젊은 크리스천 모임. 미국에 있을 때부터 유튜브로 접했던 현승원 의장이 리딩하는 모임이었다. 주로 유투버들, 인플루언서들, 개인사업하는 30/40 세대가 주축이었고 신사임당 전인구 등 유명한 유투버들도 보였다. 대단한 사람들이 모인 곳인가 보다 정도의 마음이었는데, 예배하는가운데 마음이 뜨거워졌다. 현승원 의장이 이사야 55장 8-9절 (나의 길과 뜻은 너보다 높고 네가 헤아릴 수 없다)는 말씀으로 이 모임에 대해 받은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는데 성령님이 강하게 임하시고 아래와 같은 말씀, 소망을 주셨다. 기도 끝에 직접 당장 함께하지는 않기로 결정하게 됐지만 이들이 성령님의 새 부대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건 적어도 내겐 참 분명하다. 한국의 다음 세대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모이게 한 사람들이랄까.

산아, 내가 너에게 주었던 내 마음 – 한국의 다음 세대에 대한 마음들 – 을 같이 받은 친구들이 여기 이렇게 있다. 멋지지? 산아, 여기 사람들 말도 너무 잘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사업도 하고 네가 보기에 진짜 멋지게 일하고 있지 않니? 그래. 내가 많은 걸 주고 많은 걸 기대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단다. 이 사람들과 한번 제대로 일해보고 싶지 않니? 비교할 필요도 없고 너를 내세우거나 기죽을 이유도 전혀 없단다. 이들은 친구고 동역 자니까. 그리고 넌 내 아들,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백산이니까.

산아, 네 삶의 첫 막은 나를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렸지. 그때 넌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너 스스로도 힘이 붙이고 나의 열매를 맺을 수 없었어. 그런 너를 내가 미국으로 불러내서 나를 알게 하고 여러 고난을 겪게 하며 지난 십여 년간 연단했단다. 네 삶의 두 번째 막이라 할 수 있지. 사도바울도 회심 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나를 독대하고 연단하는 시간을 가졌고 모세도 미디안 땅에서 40년을 가축을 돌보며 지냈듯이 그런 연단의 시간은 꼭 필요한 거란다. 산아, 이제는 다시 한번 신나게 일해볼 준비를 하렴. 동역자들을 줄게. 나와 함께 세 번째 막을 시작하자꾸나


두바이, 상하이 - 하나님 주신 창조성으로 새롭게 일어나는 도시와 문명들: 올해 새로운 곳을 몇 번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중동이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이런 글 - https://brunch.co.kr/@sanbaek/66 - 도 썼다. 유대인이 성경에도 나온 가장 신비하고 특별한 민족 중 하나라면, 그 유대인을 둘러싼 유대인과 마치 흙과 백 같은 존재인 아랍인들, 그리고 그 아랍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 가고 있는 이 시대의 문명이 정말 흥미로웠다. 세계의 중심이 이스라엘/메소포타미아에서 로마, 서유럽, 미국을 거쳐 아시아와 중동으로 다시 한 바퀴 돌아오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유대인이 활발히 활동할 수 없는 거의 유일한 문명지인 그곳에서 21세기에 일어날 일들을 많이 기대하게 됐다.


상해, 중국에서 본 문명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니오 전기자동차 공장에서 본 광경은 잊을 수가 없다. 미국에는 AI소프트웨어로 대표되는 창의성과 소프트파워가 있다면 중국에는 완전 자동으로 돌아가는 전기자동차공장으로 대표되는 대륙의 스케일과 하드파워가 있달까. 이미 기술에서, 금융에서, 문화와 생활에서 대부분의 자체생태계를 구축한 중국의 힘과 스케일에 압도당했고, 미중 패권경쟁의 한가운데 노인 한국의 운명과 역할을 더욱 생각하게 만들었다.


3부. 내가 열심히 해본 것들


운동: 올해는 운동을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했다. 작년까지도 운동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올해는 완전히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랄까. 무엇보다도 올해 시작한 크로스핏은 내 삶을 지켜주는 또 하나의 기반이 되어줬다. 전날이 어땠든 아침에 시원하게 운동하고 냉수샤워를 하고 출근하면 그게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무게나 자세가 느는 속도는 부끄러울만치 더디지만 다치지 않고 오래 꾸준하게 운동하는 것을 목표로 해보고 있다. 머슬업 한 개를 아직도 못하는데 내년엔 꼭 해내리라.


아내가 달리기를 시작했고 아내와 일주일에 한 번씩 뛰는 것을 해보니 부부관계도 더 좋아지고 추억도 더 쌓이고 너무 좋더라. 이렇게 부부 인스타 계정도 하나 만들어서 해보고 있다. 팔로어 수는 매우 소박하지만 뚝딱뚝딱 뭔가 만들어내는 아내의 솜씨에 또 놀란다. 그리고 1~2주에 한 번씩은 축구도 하고 있다.


자리 지키기: 올해 또 내가 해본 게 있다면 자리 지키기였다. 나처럼 새로운 거 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에겐 참 쉽지만은 않은 과제였는데, 조금씩 몸부림도 쳐보고 했지만 올해 내게 주어진 task는 새로 일 웬만하면 그만 벌리고 이미 벌려놓은 것, 맡은 것부터 잘하기였던 것 같다.


회사일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어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여전히 고민이 되거나 불안해지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오지만 그래도 비교적 평안한 가운데 집중해서 내 스타일대로 일한 한 해가 아니었나 소회 한다. 한양대 강의도 마찬가지다. 상반기 결산에도 썼지만 60여 명의 한국학부에 온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학원론 수업을 내 스타일대로 했다. 이들이 눈에 계속 밟히는 게 여기 뭔가 성령님의 초대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올해 2기 펠로우를 배출한 2045 펠로우십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자리 지키면서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열매들이 분명 있었다. 특히 펠로우십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거기서 만난 다음 세대와의 인연이 내게 너무나 큰 기쁨과 의미로 자리매김함을 느낀다. 아래는 올해 초 펠로우십 하우스파티 이후 짧게 포스팅한 글이다.

2026년 초에 있었던 2045 펠로우십 하우스파티. 사진첩을 보다가 이날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게 됐다. 아내가 내 표정이 너무 신나 보인다고 하는데 내가 봐도 그렇다.

아내가 애들 셋을 델고 한옥마을로 놀러 간다고 해서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다. 금요일저녁의 온전한 자유를 어떻게 쓸 것인가. 기도하는데 대뜸 2045 펠로우십이 맘에 들어왔다(교회 청소년부나 친구들, 친척들 다 제치고)

이제 3년 차를 맞는 펠로우십은 사실 아직 정말 불안한 유아기다. 물도 주고 영양분도 계속 줘야 하는데 일꾼이 없다. 2기까지는 어찌어찌해 왔는데 3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고민이 있었다. 나 조차도 벌려놓은 일들과 종종 찾아오는 내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여러모로 여유가 부족했다.

기도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했던 홈파티는 참 즐겁게 마무리됐다. Two truth and one lie 게임으로 서로 더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각자 품고 있는 마음들도 더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대치도 않게 자진해서 펠로우십을 만들어가겠다는 여러 서포터 일꾼들이 이날 나왔다.

3기 모집을 받고 있다. 여전히 유아기인 작은 펠로우십이지만 이번일을 계기로 난 그분이 이 모임을, 이 미션을 기뻐하신다는 걸 다 확신할 수 있게 됐다. Thankful & hopeful!


4부. 땅으로부터 온 도전들


늘 잘 지내 온 것만은 아니다. 일기를 돌아보면 두어 달에 한 번씩 상당히 마음이 어렵고 힘들었던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었다. 크게 두 가지 일들이 닥치면 내 마음은 폭풍 속에 놓인 배처럼 요동쳤다.


비교, 걱정, 두려움: 난 잘 가고 있는 걸까.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내며 살고 있는 주위사람들을 볼 때면 좋아 보이면서도 종종 부러웠고 그건 또 종종 걱정과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더 늦기 전에 투자를 잘해보고 돈을 더 모아야 하는 게 아닐까. 커리어적으로 더 도전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난 맞는 길을 가고 있는가. 너무 나 좋아하는 것만 Naive 하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아내와의 삐걱거림: 몇 번 아내와의 삐걱거림이 있었다. 가족과 관련된 문제가 걸리거나 부부관계 문제가 걸리거나 이런 것들이 주된 단골손님이었는데, 그럴 때면 내 마음은 평화를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한마음이어야 하고 우리는 한배를 탄 동반자임을 더 몸으로 느낀 한 해였다.


2026년을 여는 마음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이다. 그리고 신년예배를 드리는데 야베스의 기도가 내게 훅 들어왔다. "온컨대 주께서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내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어찌 보면 너무 자기중심적인 이 기도가 온전히 있으려면, 나의 길이 주님의 인도하심에 있어야 하리라. 야베스는 그 자신감 위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이렇게 기도했겠구나 -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소망하게 됐다. 나도 올해 이 기도를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야겠다. 나의 길이 온전히 그분 안에 계심을 믿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더 민감하려 노력하면서 그분이 나를 돕고 내 지경을 넓히시기를.


얼마 전에 나를 너무도 잘 아는 형이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산아, 난 하나님이 너를 너무도 사랑하고 너를 향한 특별한 계획이 있음을 너무나 믿고 거의 확신해. 그리고 그 부르심과 은사는 너의, 너만의 세상을 향한 어떤 "목소리"에 있는 것 같아. 그리고 난 아직 네가 그걸 못 찾은 거 같아. 찾고 있는 과정이고. 네가 그걸 찾아가는 과정을 내가 열심히 응원하고 도울게. 언제가 네가 너만이 목소리와 너의 청중을 만났을 때, 그때 너를 통해 더 강력하게 역사하길 그분이 난 많이 기대가 된다."


올해는 나만의 목소리를 더 찾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그 과정에서 AI 등 신기술도 더 잘 활용하고. 더 담대하게 더 두려움 없이 도전해보고 싶다. 실패하면 어때. 인생 이미 그분이 해결해 주셨는데 인생 이회차처럼 더 아이처럼 더 거침없이 살아보고 싶다.


아내는 올해 여름성경학교 (VBS)를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준비하고 있다. 올해 또 장인장모님이 단기간 한국으로 이주를 하신다. 여러 가지로 기대가 되는 한 해다. 2026년 한 해, 그분의 도우심을 믿고 더 용기내고 더 도전하고 더 자유로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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