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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민정 Jul 08. 2021

'원래 내 것'이라는 착각

[마음치유 프로젝트 힐링 칼럼 2]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되기 이전, 꽤 오랜 기간 진행하던 강연이 있었다. 올해 초 그와 동일한 주제로 다시 강연을 시작해 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무척이나 반가운 제안이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부득이하게 거절 의사를 전달해야 했다. 하지만 좋은 취지의 강연이기에 이대로 중단하기는 아쉬웠다. 내가 직접 참여하지는 못할지라도 나를 대신해서 잘 이끌어갈 좋은 강연자가 있다고 하면서 나의 오랜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그녀라면 내가 믿고 맡길 수 있을 만큼의 충분히 역량 있고 신망할 수 있는 대상이기에.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만 혹시나 작은 도움이 될까 하여 내가 사용했던 자료를 넘겨주며 그녀가 강연을 잘해나가길 응원했다. 얼마 후 그 강연에 대한 교육생들의 반응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함께 기뻐했고, 내가 애정을 가진 그 강연을 잘 이끌어준 그녀에게 감사함마저 느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담당자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서로의 안부를 건네다가 그녀가 하반기에 예정된 강연은 맡기 어렵다는 소식을 전했다고 했다. 혹시 시간이 된다면 맡아줄 수 있겠냐고 물었고 하반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을 조율할 수 있을 것 같아 알겠다고 했다. 담당자도 나도 그녀가 당연히(?) 내게 연락을 취할 것이라 여겼다. 오랜만에 하게 될 강연에 몹시 반갑고 설레었다. 생각지 못한 수입까지 생긴다는 생각에 내심 기대감을 가지고 그녀의 연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녀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왜 아직까지 언급이 없지?’ 하는 의문을 가지며 답답한 내가 먼저 그녀에게 연락해 강연에 대한 운을 살짝 띄워보았다.    

 

 “하반기에는 강연을 어떻게 하기로 했어?” “안타깝지만 내가 시간이 안돼서 후배에게 부탁했어. 그 후배가 잘 이끌어갈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다. ‘뭐? 내가 연결해 준 강연인데 다른 사람에게 줬다고? 먼저 나에게 말하는 게 우선 아닐까. 나에게 한 번 물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이제껏 챙겨준 것을 잊은 것 같은 괘씸함과 서운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그녀를 위해 소중히 준비한 자료도 넘겨주고 강연도 소개해주었는데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행동처럼 보였다. 마땅히 나에게 올 기회와 이익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그녀에 대한 미움과 억울함 때문에 몇 시간을 혼자 씩씩거렸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수십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뒤엉켜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여러 차례 머리를 흔들어보아도 사라지지 않는 생각과 끓어오르는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자세를 곧게 하고 가만히 숨을 고르기로 했다.      


  ‘나 왜 이렇게 화나 있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분을 삭이지 못하는 걸까?’ 하고 차분히 내 마음을 지켜보았다. 그러자 날뛰던 감정이 조금씩 잠잠해지더니 스르륵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원래 내 것이라고 여기는 착각이 고통을 만들었구나. 바로 그거였구나!’ 


원래부터 내 것이었다는 나만의 착각으로 인해 혼자 서운해하고 혼자 억울해했다. 그리고 친구를 향한 미움과 분노를 만들어냈다. 사실 원래 내 것이라는 게 어딨는가. 잠시 인연이 되어 나에게 왔을 뿐 원래 내 것이라는 말은 온당치 못 하다. 나에게 잠시 왔던 것이 때가 되어 다른 이와의 새로운 인연으로 닿은 것일 뿐인데 사리에 맞지 않는 생각을 했다. 내게 맡겨놓은 자리도 아니고 내 통장에 있던 돈을 빼앗아간 것도 아닌데…. 실재하지 않은 ‘내 것’이란 허상을 만들고, 그 허상에 대한 집착이 빚어낸 괴로움이었다.     


 그 잘못된 생각이 결국 부정적인 감정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리석은 한 생각에 사로잡히면 이렇게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고통에 빠뜨린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잘못 매듭지은 생각을 제대로 풀면 그만이니까. 생각과 감정 모두 내가 만들었으니 스스로 만든 괴로움을 없애는 힘도 나에게 있는 법이니까.     


  그녀가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해서 나를 화나게 만들고 서운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내 어리석은 생각 하나, 그 생각이 쏘아 올린 감정을 올바로 볼 수 있으면 되는 거였다. 그녀는 나를 괴롭히기 위함도 아니었고 내 것을 빼앗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었다. 어쩌면 오히려 바쁜 나를 위해 그녀가 선택한 최선의 배려이자 실력 있는 후배에게 또 하나의 기회를 만들어준 좋은 선배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깨닫자 그녀에 대한 미움, 서운한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올바른 생각에 다다르자 그 즉시 불편한 감정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겸연쩍은 내 모습, 부끄러운 나 자신과 마주했다. 생각을 밝게 하니 구겨진 마음이 이렇게 쉽게 펴질 줄이야….      


  나의 미숙함, 어리석음 때문에 잠시나마 너를 미워해서 미안해! 

  내가 더 잘할게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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