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으로서의 최고의 덕목은?

그걸 알고 선택해도 결혼은 하는것보다 유지가 더 힘들다.

by 산책홀릭

오늘 밤 산책은 신용산역에서 숙대 입구역까지였다. 숙대 입구에서 학원 회식이 있는 남편 마중 겸. 늘 듣는 매불쇼를 들으며 걸었다. 매불쇼는 내가 좋아하는 팟빵 콘텐츠다. 아주 자극적이라 심심한 산책엔 딱이다. 어제는 [내 뇌를 부탁해]라는 코너에서 철학박사가 나와 프로이트, 융, 아들러의 정신세계에 대한 분석을 말하는데, 그 지루한 이야기(대학교 때 전공수업으로 들었던)를 얼마나 웃기게 만드는지, 진행자 최욱과 정영진의 진행은 정말 예술이다.


그렇게 한편을 듣고 걷다 보니 어느새 숙대입구역, 남편은 2년 넘게 새벽에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다. 이 숙대입구역에 있는 SDA 어학원만 2년이다. 남편이 사업 때문에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건 10년도 넘었다. 말이 10년이다. 이렇게 글로 쓰면 한 문장이고 1초도 걸리지 않는 10년. 물론 회사일에 피곤해서 빠지는 경우도 많아 아마 반은 다니고 반은 빠지고 했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다니고 있다.


새벽반 영어학원


남편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필요]

필요해서다.


남편은 제조업을 한다. 제조된 제품은 전 세계로 수출된다. 전 세계 바이어들과 오가는 이메일, 왓츠앱, 라인, 위챗, 카카오, 페이스북 등등 매일매일 영어를 접해야 하고 온 세계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게다가 민감한 deal, conditions, claim 등등... 영어로 의사 표현이 자유롭지 않으면 밀린다. 그건 사업가에겐 큰일이다.


그렇게 5~6년쯤 영어학원을 다니고, 늘 틈틈이 공부하더니 의사 표현에는 문제가 없어져 진짜 신기했다.내 남편이지만 어찌 저리 성실히 다니냐? 신기했다. 남편은 이젠 영어를 까먹지 않기 위해 다닌다. 네이티브가 아닌 이상 외국어는 안 하면 까먹는다. 남편의 성실함 덕분에 대부분의 바이어는 남편과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벌써 15년이 넘었으니 오래 사귄 벗이 된다. 국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비록 비즈니스를 하지만 만나다 보면 각국의 문화를 설명해 줄 수밖에 없고 서로의 나라에 출장 가면 배려할 수밖에 없기에 많이 친해진다.


1~2년이면 모를까, 10년 넘는 바이어들은 함께 늙어가고, 아이들이 대학 들어가고, 취업하는 것까지 다 함께 겪는다. 세상 사람들 사는 거 다 똑같고, 희로애락 다 똑같다. 다만 어디에 가치를 더 두는가는 나라마다 다르단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남편의 성실함은 늘 존경스럽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결혼을 앞둔 여성이 내게 남편감을 고를 때 봐야 하는 최고의 덕목은 무엇일까요? 하고 묻는다면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남편으로서의 최고의 덕목은 부지런함과 성실함이다. 라 대답할 것이다.


돈, 부라고 말하면 안 된다. 부지런하고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부를 갖게 되면 탕진과 타락으로 가는 고속 열차를 탄 것과 같다. 하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하면 돈은 따라온다. 단 돈을 이해하고 불리는 행위를 한 경우에만 -흔히들 이걸 재테크라 부르지만 재테크와는 좀 다르다. 사업 마인드. 비록 사업을 안 해도 사업 마인드로 돈을 대한다면 - 돈은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래저래 이야기하며 남편과 용리단 길을 거쳐, 신용산역 아모레퍼시픽을 지나 동부 아스테리움 아파트를 지날 때 갑자기 여성의 괴성, 폭발하는 듯한 고함이 들려온다. 이 일대는 주상복합 아파트 촌으로 그래도 어느 정도 수입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아파트 들이다. 일단 관리비가 넘사벽인 경우가 많아 그렇다. 이 동네에선 취객은 거의 보기가 힘들다. 그러니 더욱더 남편과 나는 놀라 쳐다봤는데... 어디서 난 소리인지 어두워서 잘 찾을 수 없었다. 좀 걷다 보니, 그냥 앞에 가는 여성이 보이는데 짧은 쇼트커트에 슬림한 몸매, 패션어블한 구두까지 깔끔한 여성이 걸어갈 뿐이었다. 그 앞엔 신사 한 분이 천천히 가고 있었다. 난 속으로 여자 스타일 좋네, 우리 아파트 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자가 남자를 따를 잡는 순간, 또 괴성을 마구 지른다. 술 마시고 하는 난동일 테지만 그 괴성은 속에 응축된 한과 설움, 욕망 등을 폭발하는 듯한 엄청난 괴성이었다. 괴성을 지르며 여잔 무너졌다. 남자는 그런 여성을 일으키려 했지만 여자는 남자의 팔을 뿌리쳤다. 남자는 어쩔 줄 몰라 했고, 그런 남자를 두고 여자는 그대로 달려갔다. 스카프가 떨어졌으나 여잔 그대로 달렸다. 작은 신호등도 무시하고 어둠 속으로 달려가 사라졌다.


무슨 일일까?


무슨 사연으로 저리 한 맺힌 괴성을 뿜어...내는가? 스타일이 저리 멋진 여자가... 분명 동네 사는 교양 있는 여자 이웃 스타일이다. 동네에는 교양과 명품 그리고 스타일을 겸비하고 돌아다니는 중년 여인들이 많다. 여기서 오래 살았으니 그게 다는 아니란 걸 나는 알지만 처음에는 부러워만 했다.


하지만 그들과 친해지다 보면, 음성과 말투는 교양을 장착했는데, 말의 내용은 조현아 뺨치고도 남을 선민의식과 갑질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는 이들이 종종 있다. 에피소드는 엄청 많다. 웹 소설 소스로 쓸려고 많이 기억해두고 있다.


예를 들면 본인은 서울대 음대를 나오고, 남편도 대학병원 **과 과장인데 아름다운 외모에, 스타일리시한 패션, 교양 있는 말씨를 가진 완벽한 여자다. 하지만 그녀는 친구 만나서 밥 먹고 수다 떨다 보니 엄청 나온 주차비 내는 게 아까워서 백화점 유니클로 매장에서 입지않을 옷을 잔뜩 사서 주차 등록하고 다음날 환불하러 가는 사람이다. 그 옷들은 커다란 흰색 유니클로 비닐봉지에서 구겨져 있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 사람은 자기 이득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사람이다.


한번 판매되었다 반품되어 온 상품은 비록 깨끗하다 하더라도 구김이 가고, 오염이 있는지 없는지, 옷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체크 한 후에 다시 다림질을 해서 개거나 옷걸이에 걸어 진열장에 진열을 할 것이다. 내가 그 회사의 옷을 사면 그 돈으로 회사는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이다. 반품을 위해 옷을 사면 그 처리 과정의 모든 비용은 진짜 옷을 산 다른 고객들이 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외모만 교양 있는 여자들이 있기에 난 외모는 믿지 않는다. 그녀들의 명품백, 옷, 신발도 믿지 않는다. 말투와 표정에도 속으면 안된다. 말의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들의 교묘한 위장 교양에 휘둘린다.


아무튼 이야기가 너무 흘렀다. 다시 어두운 산책길로 돌아가자! 괴성을 지르던, 포효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던 그 세련된 중년 여인은 남자를 두고 달려갔다. 앞도 보지 않고 달려갔다. 남자는 우리가 흔이 얘기하는 중풍이 온 듯 걸음걸이가 작고 불편했다. 전체적으로 왼쪽이 힘든 듯했다. 남자는 체념한 듯, 그녀가 떨어뜨린 스카프를 주어들고 다시 불편한 걸음을 걸었다. 힐끗 표정을 보니 참담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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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이 동네에선 흔히 보기 힘든 저런 광경이 벌어지는지 궁금했다. 슬쩍 표면으로만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면, 부잣집에서 곱게 자란 여성이 그에 맞는 남자와 만나 사는데, 50대에 남편이 중풍이 와 쓰러졌고, 여자는 자신의 취미 대신 취업을 선택해야 했고, 지친 하루에 술 한 잔 걸치며 회식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데, 역에 마중 나온 남편을 보자 자신의 억울한 인생에 대한 설움이 터져 버린 게 아닐까? 뭐 이 정도...?


밤이 아름다운 이유는 낮의 지저분함, 너절함을 감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절함이 넘치면 밤이라도 다 덮을 수는 없나 보다.


by 산책 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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