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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May 02. 2019

육아+야근 = 울지 않고 글 쓰는 방법

어떻게 하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군대에 있을 때도 거의 매일 글을 썼다. 유격훈련 중 PT체조를 하고 난 다음 방탄모 위에 앉아 쉬는 짧은 휴식시간 중에 쓴 글도 있다. 취업 준비할 때, 자격증 준비할 때, 결혼을 준비할 때, 그 밖에 온갖 자질구레한 걱정과 일상이 나를 압도하는 순간에도 글을 썼다. 그런데 지금 나는 글을 쓰는데 매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것은 순전히 물리적인 현상이다. 글을 쓰기 위한 시간과 가사, 육아에서 격리된 고립된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예전에 내가 글을 쓰는 책상 사진을 찍어 두었던 생각이 난다. 아주 커다란 밤색의 책상이었다. 책상에는 컴퓨터 한 대와 홍차, 음악이 있었다. 내킬 때면 맥주를 마시면서 글을 쓸 수도 있었다. 그리고 뒤로 고개를 돌리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커다란 책장에 질서 정연하게 꽂힌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책상에 앉아 있으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평온하게 느껴지곤 했다. 나는 지금 그 책상과 여유로웠던 일상이 미칠 듯이 그립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지루하고 평온한 순간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 - 혹은 아주 찰나의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 내 등 뒤에는 이사를 한지 거의 2년이 지났지만 정리하지 못한 엉망진창의 책꽂이가 있다. 한때 나만의 독점물이었던 이 거대한 책장의 칸칸에는 크레파스나 색연필, 미미인형 같은 것들이 동서고금의 책들과 뒤섞여 카오스적 혼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운 좋게 일찍 퇴근해서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으면 딸은 귀신처럼 알고 놀아달라고 떼를 쓰며 내 무릎으로 기어오른다. 아빠는 글을 써야 하니까 잠시 혼자 놀라고 유튜브를 틀어준다. 그나마 아이가 그런 것에 정신이 팔려있으면 다행이다. 예전에는 뽀로로를 틀어주면 1시간은 버텨줬는데 요새는 캐리와 장난감 친구를 틀어줘도 30분만 지나면 질려서 다시 무릎으로 기어오른다. 글을 쓰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아이에게 유튜브를 틀어준다는 죄책감 따위는 잊은 지 오래다.


싱크대와 식탁에는 온갖 그릇들이 엉망진창인 채로 쌓여있고 어제 대판 싸운 와이프는 내가 책을 쓰는 것에 절대로 아무런 도움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무장한 채 거실에 앉아 '나 혼자 산다', '배틀 트립' 같은 것을 보고 있다. 그렇다. 내게는 와이프가 있다. 나는 와이프와 꽤 자주 싸웠는데 당연히 모든 싸움의 원인은 와이프에게 있었다. 나는 책을 쓰는 것은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상한 행위이고 남편의 자아실현을 위해 필수적인 행위라는 것- 그리고 여기에는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설명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도를 해보았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아내가 현재의 가사나 양육의 분담을 조금 더 내게 유리하게 조정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류의 발전을 위해 가사와 양육을 100% 전담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나의 합리적인 요구는 매 순간 거절되고 그것은 아주 높은 확률로 대판 싸우는 것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모든 싸움이 끝날 무렵에는 결국 글쓰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분노와 짜증, 슬픔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아 결혼이란 현실은 글쓰기라는 이상에 비해 얼마나 덜떨어진 것인가.


오래전 라라랜드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에 깊게 남았던 것은 춤과 노래가 아니었다. 나는 여자 주인공이 남편과 외출하는 장면이 가장 눈에 남았다. 그녀에게는 지금의 내 딸과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다르게 외출을 하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내니-즉 아이를 봐주는 사람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내니와 함께 소파에 앉아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며 엄마와 아빠가 외출하는 모습을 별거 아니라는 듯이 쳐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는 우아하게 코트를 들고 힐을 신은채 문밖으로 향했다.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내게도 내니가 있어서 내가 글을 쓰러 갈 때면 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 손을 흔드는 것이다. 글 재미있게 쓰라고. 시간 아까워하지 말라고, 글 쓰면서 시계 보지 말라고, 앉아서 원하는 만큼 키보드 두드리고, 개소리도 지껄이고, 그러다가 돌아오라고. 다시 모든 것이 회복된 남자가 되어서 말이다. 그러면 아이랑도 훨씬 더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분명 그러하다. 하지만 나의 욕구는 좀체 충족되지 못한다. 하지만 내게는 충분한 돈이 없고, 내니를 고용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몸으로 때워야 한다. 몸으로 때우다 겨우 아이를 재우고 가까스로 책상에 앉아서 20분 내외의 시간 동안 글을 찌끄려서는 그럴싸한 무언가를 써낼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충분한 시간이다.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지금 쓰고 있는 주제의 책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다시는 쳐다도 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토요일, 일요일마다 5시간 정도 누군가 아이를 봐주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분명 글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임계치가 있다. 그것이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하다. 토요일, 일요일마다 5시간씩 글을 쓸 수 있다면 2 달마다 책을 한 권씩 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께는 정말 오랜만에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렸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려고 하는데 보지 못한 무언가가 보인다. 브런치 X문토라고 - 문토는 알지 못하는 단어다 검색해봤다. 모여서 술 먹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잠시 글을 쓰는 모임 생각을 해보았다. 썩 내키는 느낌은 아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글쟁이들이 모여서 사실 서로의 글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으면서 서로가 쓴 글에 관심을 가져주는 척해주는 뭐 그런 느낌이랄까? 시간만 낭비할게 뻔했다.


그런데 지금 내 상황에서 어쩌면 이게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주면 내니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구매라고나 할까? 내니의 시급은 만원 정도 된다. 5~6살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 5명이 모여서 2만 원씩 걷으면 10만 원이 되고 그 돈이면 다섯 시간짜리 내니를 두 명 구할 수 있다. 키즈카페 파티룸이든 공원이든 어디든 일단 글을 쓸 수 있는 장소에서 글을 쓰고 그동안 두 명의 내니가 5시간 동안 다섯 명의 아이랑 놀아주면 어떨까? 아이 다섯이 모여 함께 그림을 그리든 술래잡기를 하든 쿠키를 굽든 뭘 하든 상관없지만 그 시간 동안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본전 제대로 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한 명을 보는 것보다 여러 명을 보는 것이 더 편한 법이므로 내니의 입장에서도 좀 할만하지 않을까? 혹시라도 할증이 필요하다면 나는 얼마든지 내 비자금을 헐어 낼 용의가 있다.


그렇다. 4~6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글 쓰는 모임을 하나 만들어야겠다. 매주 주말마다 키즈카페에 모여서 함께 글을 쓰는 거다. 2만 원 낸 다음 아이를 잊고 다섯 시간 동안 글을 쓰면 얼마나 상쾌할까? 저 지긋지긋한 원고를 이제 영원히 삶에서 지워낼 수 있지 않을까?


고맙게도 오늘 아이가 유치원 끝나고 놀이터에서 격하게 놀으셨다. 집에 오니 완전히 뻗어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으신다. 오늘이 문토 마감인데 - 그래서 운 좋게도 이렇게 한번 글을 질러볼 수 있었다. 애 키우느라 쓰고 싶은 글 실컷 쓰지 못하는 엄마, 아빠여 여기로 오시라. 여기서 편하게 쓰고 싶은 만큼 쓰시고 알아서 집으로 돌아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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