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삶이 나에게 주려고 하는 것

by 산들바람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현재의 나는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평범한 30대 후반의 엄마이자 아내로 살아가고 있다.

이 평범한 오늘을 맞이하기까지 나는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수백 번 반복한 끝에 이뤄낸 삶이다.

위 시는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게 하는 시이다. 특히, 반복되는 불운(실패)에서 절망하는 이에게 위로를 주기도 하고 다시 희망을 보게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누구나 행운이 찾아오는 시기가 있는 거 같다.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게 찾아오는 경우도 있는 거 같다.

내 친구는 잦은 이직 끝에 정말 괜찮은 기업을 만나서 하는 일에 비해 연봉도 높고 출산 후에도 다닐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인 기업을 만나 그때부터 술술 잘 풀렸다. 또 다른 친구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니었는데 대학교 이후부터 일이 잘 풀려서 대기업에 한 번에 입사하기도 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인생은 운이 절반인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노력에 비해 운이 따르지 못했다. 꼭 누군가가 일부러 방해라도 하듯 말이다.

그러면서 '나도 언젠가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라며 그 언젠가의 행운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하늘은 큰일을 맡기기 전에 먼저 그의 의지를 시험할 시련과 고통을 준다'라는 말처럼 내 꿈이 원대해 '나를 시험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위로하곤 한다.

나의 불행들마다 나에게 인생의 깨달음과 교훈을 남겨주었다. 그 모든 불행들을 맞이해 보니 나는 비로소 질문을 바꾸게 되었다. 그동안 세상에게 ‘나는 뭐가 되어 이렇게 살래요’, ‘나는 이걸 갖고 싶어요’라고 요구하기만 했던 내가, 어느 날 문득 삶에게 되물었다.

'삶이 나에게 주려고 하는 게 뭘까?'

'삶이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내가 정하는 목표 지향적인 삶이 아닌 삶이 나에게 부여한 목적이 있는 삶. 삶이 나에게 주려고 하는 걸 살아보고 싶어졌다.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어릴 때부터 원대한 사업가를 꿈꿨지만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았고

커피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그곳에서 모든 걸 쏟았지만 지금은 커피 사 먹는 고객이 되었고

한 때 항공사 승무원을 꿈꿨지만 내 힘으로 문턱을 넘기엔 역부족이었고

결혼 후, 돈도 잘 벌고 집안일도 완벽한 아내를 꿈꿨지만 신혼 초 1년 동안은 몸이 아파 누워 지내고 결국 퇴사를 하며 돈도 못 버는 아내가 되었다.

두 아이의 엄마를 꿈꿨지만 몇 번의 유산을 하며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둘째에 대한 미련을 놓으니 일상의 행복이 찾아왔다.

거듭되는 불운은 나를 점점 작게 만들었고, 사는 게 힘들어 생을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실패가 거듭된 삶이지만 이 실패의 경험들이 과거와 다른 ‘단단한 나’를 만들었고, 자연스레 나를 글쓰기로 인도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글쓰기는 언어적 감각이 타고난 작가들이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글쓰기 실력도 중요하지만 조금은 모자란 실력일지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마음으로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글쓰기는 내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연히 상처에 대한 글을 썼고 어느새 상처가 치유가 됐으며 상처가 아문 자리엔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러면서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큰 방향이 보였다.

긴 세월 하나둘 쌓인 상처로 내 마음은 상처투성이였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했던 어둠이 글을 쓰는 동안 어느새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 모든 변화가 일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3개월이었다.

다음 글은 글쓰기가 내 삶에 가져온 변화를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교수의 SNS에서

‘고통 속에서도 춤추는 인간으로 살자’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고통 속에서 춤출 수 없다.

고통 속에서 애써 괜찮은 척 안 해도 된다.

지금 많은 상처, 실패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아프고 고통스러운 게 당연하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갈 거니까.

우리는 계속 나아가는 존재 아닐까.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포기만 안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산들바람>




한 가지, 글을 완성하고 나면 뭔가가 아쉬웠다.

더 잘 쓰고 싶고 하나라도 더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내 시간은 매우 한정적이고 그러한 마음은 계속해서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거 같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지금 내 실력이 이 정도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시간 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싶다.



※이 연재글은 유료 멤버십으로 전환할 예정이다(전환이 되려나 모르겠다).

너무 내 개인적인 치부를 드러낸 글이라 꼭 필요한 사람들이 읽었으면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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