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 그 삶이 가르쳐준 것 (2)

4번의 유산

by 산들바람

아버님의 위로


시부모님께는 말씀을 못 드려 며칠 뒤 남편이 전화로 말씀을 드렸다. 첫째를 낳고 2년 만에 임신소식을 전한 거라 참 많이 기다리셨고 참 많이 기뻐하셨을 텐데 안 좋은 소식을 전해드려 나로서는 너무 죄송했다.

그 소식을 들으시고 이틀 뒤 아버님께 전화가 왔다.

“그래도 목소리가 좋아 보여 다행이구나.

이번 일로 실망하거나 걱정하지 마, 하느님께서 더 큰 선물을 주실 거야.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해.”

너무나 큰 위안이 되어 울컥하였다. 더 큰 선물, 그 선물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붙잡고 싶어졌다.

아니 살기 위해 붙잡아야 했다.

사실 아버님 전화를 받기 전까지 난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였다.

‘왜 나에게 결핍을 주실까, 풍족하게 주시지 않고 왜 결핍을 주실까, 술술 풀리지 않고 일이 자꾸 어렵게 하실까.’

아버님이 해주신 말씀 한마디는 너무 힘들어하는 내가 안타까워 하느님이 아버님의 입을 통해 나에게 메시지를 주신 것 같았다.

그때 당시 내 머리로는 ‘시험관시술을 준비해야 하나’ 아니면 다시 심기일전으로 ‘자연임신을 다시 시도해봐야 하나.’ 아니면 ‘이제 받아들이고 첫째만 키워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결핍을 통해 발견한 것


임신조차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안 되니 참 슬프고 힘들었다.

‘왜 나는 계획대로 되는 게 없을까?’

‘하느님이 날 버리셨나?’

아니 왜 그러냐고 펑펑 울면서 하느님께 따졌다.

4번의 유산은 나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고 있던 자신감마저 앗아갔다.

20대부터 30대까지, 정말 많은 상처를 받았다. 늘 애쓰고 노력하며 살았는데 인생은 좀처럼 내 뜻대로 흘러가 주지 않았다.

‘왜 하느님은 나를 점점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드실까?’ 궁금했고 묵상했다.

혹시 나처럼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라는 게 내 사명이 아닐까?

아픈 사람, 실패한 사람, 외로운 사람, 소외된 사람의 마음을 진정 이해하는 것.

‘그 사람들을 이해하고 위로하라고 그들의 마음을 알게 하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보다 더 힘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 여전히 아파서 병원에 있는 이들. 너무 아파서 꿈조차 꾸기 힘든 이들.




기독교인들은 ‘말씀을 붙잡고 산다’라는 말을 잘 쓴다. 이 말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말을 붙잡고 사는 건 흔들릴 때마다 힘을 발휘한다. 죽고 싶다가도 포기하고 싶다가도 그 말을 다시 붙잡으면 신기하게 다시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긴 터널을 지날 때도 그냥 나를 일으켜주는 ‘말 한마디’ 면 된다. 남이 해주는 말이 아닌 내가 나에게 해주는 말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올해 또다시 유산을 겪으며 나를 다시 일으킨 건 아버님의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를 그냥 흘려보낸다면 아무런 힘이 없다. 그 말을 내 마음의 중심에 놓을 때 힘을 발휘한다.

내가 20대 때 긴 터널을 지날 때 내 다이어리에 붙인 한마디는 ‘나로 인해 희망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을 산다.’였다. 이 말은 매일 보면서 살아갈 힘을 얻곤 했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서 희망을 증명하고 싶었다.

증명해서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흔들리는 당신을 다시 일으키는 그 한마디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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