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 그 삶이 가르쳐준 것 (1)

4번의 유산

by 산들바람

직장에 다니며 부업으로 사업을 해볼 생각으로 책도 읽고 유튜브도 찾아보며 공부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남편은 자본금이 안 드는 해외 직구를 제안했고, 나는 해외 직구를 해본 경험도 없기에 생소했지만 위험 부담이 거의 없어 수긍했다. 남편은 계획대로 사업을 진행했고 남편은 그때부터 직장일 외 시간 대부분을 해외직구 사업을 일구는데 쏟았다.

원래 계획은 내 직장을 유지하며 같이 사업을 일구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면서 20년 4월에 퇴사를 했다(참 인생이 계획대로 안 된다).

퇴사 후 2020년도는 욕심부리지 않고 내 몸이 회복되어 건강해지는 데 집중을 했다. 매일 같이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산책을 나갔고 산책을 하며 명상을 하거나 기도를 했다.

20년도는 사업 밑 작업과 더불어, 하느님과 나 단둘이 시간을 정말 많이 보낸 시간이었다.



첫 번째 이별


21년 3월, 몸이 많이 회복되었고 그토록 기다렸던 아이가 찾아왔다(임신소식).

알레르비 비염과 건강 문제로 결혼 2년 만에 임식 소식은 너무나 행복했다.

임신 7주 차에 아이 심장 소리를 들었고, 8주 차에 더 우렁찬 아이의 심장소리를 기대하며 병원 에 갔다. 하지만 담당 선생님께서 초음파를 보시더니 ‘어…’ 하시며 당황하시는 목소리 셨고 이내 말씀하셨다.

“아이가 심장이 뛰지 않아요. 계류유산 같아요.”

유산이면 유산이지 계류유산은 또 뭔가 싶었다.

처음 겪어본 유산은 ‘첫 아이가 죽었어요.’ 나에겐 그 의미로 다가왔다. 내 배속에서 숨을 멈췄다는 사실이 그냥 너무 슬펐다. 임신을 하면 아이가 당연히 잘 자랄 거라 생각했지, 잘못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해 12월, 두 번째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겨울이면 천식 증상이 있어 평소엔 양약을 먹으며 지냈는데, 임신 전 한약으로 치료를 받은 뒤 증상이 없길래 다 나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임신을 하자마자 천식이 다시 심해졌다.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차마 양약을 먹지 못하고, 한약과 배도라지차에 의지하며 지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모든 일을 미루고 쉬며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이번에도 8주를 넘기지 못했다.

첫 유산 때는 충격이었는데, 두 번째는 오히려 눈물도 나지 않고 덤덤했다. 그렇게 두 번의 유산은 나에게 두번의 큰 상처였다.

두 번의 유산을 겪으니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좋은 아내, 당당한 아내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너를 만난 건 기적

(세 번째 아기천사)


두 번의 유산 후, ‘운동을 제대로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요가원을 다녔다. 매일 꾸준히 1시간씩 운동을 했고, 몸과 마음이 점점 건강해지고 체력이 좋아지고 있었다.

22년 6월, 두 번째 아이를 유산하고 5개월이 지났을 무렵 세 번째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세 번째 임신부터는 서울에 유명한 난임 병원(유산 병원)에 다녔고, 매주 토요일마다 광명에서 강남까지 40분 거리를 차로 다녔다. 일반 산부인과와 다른 점은 매주 배주사를 맞았고 유산방지 약을 먹었다.

운동으로 내 몸이 건강해진 건지 난임 병원의 치료 덕분인지 세 번째 아기천사는 8주를 무사히 넘기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랐다. 9주 차 초음파는 처음 봤는데 쑥 커진 느낌이라 너무 신기했다.

불안감과 설렘이 교차하며 매주 초음파 보는게 너무 행복했다. 다행히 이 아이는 내 배속에서 잘 자라 39주 차에 자연진통으로 자연분만을 하여 낳았다.

자연분만은 ‘저승사자랑 하이파이브를 몇 번을 해야 만날 수 있다’고 친구가 우스갯소리를 해줬는데,

나는 저승사자와 5번은 하이파이브를 하고 죽을 거 같은 고비를 넘기고 나의 딸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처음 아이가 나오자 마자 우렁찬 목소리로 울었고 내 배에 안겨 주었는데, 그 순간이 정말 황홀하고 감격 그 자체였다. 낳기 전 죽을 거 같은 진통과 고통의 시간을 씻겨줄 만큼 너무 예뻤다.

첫 아이라 힘들긴 했지만 동시에 너무 행복해서 견딜 만 했다.



다시 마주한 시련


첫째가 첫돌이 지나고, 우리 부부는 둘째까지 생각하고 있어서 자연스레 둘째 계획을 하였다.

24년 7월, 둘째를 임신했다. 보통 여름에는 천식 증상이 없는데, 면역력이 떨어진 탓인지 폐기능이 약해지며 불편감이 느껴졌다. 지난번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으려 이번에는 곧장 큰 병원을 찾아갔고, 임산부에게 안전한 등급의 흡입기와 약을 처방받아 몸을 돌봤다.

8주 차가 되었고, 첫째에게 처음으로 동생이란 존재를 보여주는 날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한참을 초음파를 보시더니 심장을 잘 잡지 못하셨고, 선생님이 “심장이 뛰지 않네” 하시며 속상해하셨다.

동생을 원하던 첫째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결국 첫째에게 둘째의 존재를 보여주지 못했다.

세번째 유산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니, 사실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조차 잘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우리 부부만큼 둘째를 더 많이 기다렸던 시부모님, 다음 달이 추석이라 다가오는 추석 때 시댁 식구들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말하려 했는데, 말도 꺼내기 전에 그 아이는 천국으로 가버렸다.

며칠 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수술대에 또 올랐고, 그렇게 8월 26일 월요일 나는 세 번째 소파 수술을 마쳤다.

수술 전날 싸이토텍을 복용하였는데(이 약은 자궁을 수축시켜 태아가 자연스레 빠져나올 수 있게 돕는 약이다), 다행히(?) 태아가 빠져나가지 않아 태아 염색체 이상유무와 태반검사를 할 수 있었다. 9월 28일에 태아검사 결과와 앞으로 방향에 대해 상담받기로 하였다.

대부분은 태아가 문제 있는 경우가 많아 유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다.

이럴 경우 방법이 시험관 시술을 하여, 배아의 유전자 검사를 하는 방법이라고 하셨다.

나는 천주교 신앙인이라 시험관 시술이 윤리적인 문제가 없는지 많이 찾아보았다.

천주교에서는 공식적으로 반대를 하였고, 기독교에서는 찬성하는 분위기인 듯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었다.

수술 직후 추석에 만난 시댁 시구들은 내가 임신했다고 말을 안 해 유산한 사실을 몰랐고, 추석 때 세 번째 유산에 대한 나의 상실감을 감춘 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명절을 보냈다.

9월 28일 태아 결과가 나와 상담을 받으러 갔고 태아는 정상이라고 하셨다.

그럼 이런 경우 크게 2가지가 문제가 많다고 하셨다.

첫 번째는 혈액 순환 문제, 자궁까지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태아가 잘못되는 경우.

두 번째는 면역반응, 태아를 나쁜 세포로 인식해 공격하는 건데 이 수치는 정상이 나와 혈액순환 문제 같다고 추정하셨다.

그래서 선생님이 한 달 후에 자연 임신을 시도해 보라고 하셨고, 임신이 되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주사를 놓을 거라고 하셨다.

뭔가 문제가 심플해진 거 같아 안도를 하면서도 또 베팅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네 번째 이별, 사형선고 받기 전날 밤


지병인 알레르기 비염을 고려해 환절기와 겨울은 비껴가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고 안전한 시기에 아이를 만나고 싶어, 따뜻한 계절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임신 준비한 3개월 차인 25년 7월에 5번째 천사가 찾아왔다(임신 횟수만 따지면 5번째라).

시기도 좋았고 작년 임신과 다르게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거의 없었다. 면역력이 낮아지니 전체적으로 피부가 가렵고 불편감은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몸 컨디션도 좋아서 약 없이 임신기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고 난임병원 다니며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주사만 맞으면 아이는 잘 클 거라는 약간의 확신과 안도감이 있었다.

임신하면 이 아이가 잘 클지 확신이 없으니 매번 시댁에 말씀을 못 드렸다. 이번엔 이 아이가 잘 되든, 잘 못 되든 축하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댁에 다 알렸고, 모두 기뻐해주셨다.

그런데 어느 날,

첫째 아이를 씻기기 위해 30분 정도 씨름을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아랫배가 콕콕 아팠다(처음 느껴보는 아픔이라 순간 놀랬다). 아이 저녁을 만들려는 순간 아래에서 피가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고 속옷은 피로 흥건했다. 속옷에 생리대를 깔려는 순간에도 피가 멈추지 않았다. ‘아 아이가 잘못 됐나 보다’ 나는 그 순간 실망하실 시부모님 모습이 떠올랐다. 마침 남편은 아이를 다 씻기고 옷까지 다 입힌 상태였다. 남편에게 피가 많이 난다며 빨리 산부인과에 가야 한다고 했다. 불안해하는 나에게 남편은

“괜찮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이 말이 나에겐 너무 든든하다고 했고 고마웠다.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했고 나는 혼자 애가 타고 한시가 급했지만, 앞에 환자가 있어 10분쯤 기다린 후 들어갔다.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는 순간 내 마음은 반반이었다. 괜찮을 경우 안 괜찮을 경우 딱 반반을 생각했다. 다행히 아이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렇게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다.

임신 후 매주 토요일마다 첫째를 데리고 1시간이 걸려 진료를 받으러 다녔다(반복 유산으로 난임병원에 다녔다). 첫째도 말귀를 다 알아듣는 개월 수라 매주 토요일마다 가는 게 궁금했을 텐데. 오늘 고비만 넘기면 첫째에게 동생이 생겼다고 말해주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말하지 못했다. 입덧이 있을 때는 특정 음식이 너무 당겨서 그걸 꼭 먹어야만 했다. 속이 비면 울렁거리기도 했다. 진료받기 이틀 전부터 입덧이 사라졌고 먹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지 않았다. 속도 울렁거리지 않아 배 속의 아이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진료받기 전날 밤은 사형선고 받기 전날 밤 같았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진료 날이 오고 그래도 혹시 뱃속의 아가가 살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침착하게 기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초음파를 보는데 원장님이 아이 심장을 잡지 못했다. 아이 심장이 뛰지 않았다. 또 8주를 넘기지 못하고 아이가 잘못됐다. 이번에도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너의 온기를 기억하며

(나의 5번째 천사를 위한 시)


모태의 터널 속

반짝반짝 빛나던 너의 심장

널 만질 수 없지만 느낄 순 있었지

다음엔 너의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고대했어


어느 날 네가 느껴지지 않았을 때

난 사실 직감했어

그날 그 사실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

심장이 뛰지 않은 너를 보는 건 너무 슬펐어


엄마 탓이 아니라는데 그래도 내 탓 같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태안에서 잠든 나의 천사

나의 5번째 아가야 안녕.

사랑해



*위 시는

생의 한가운데에서 - 전영준

시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수요일이 연재일인데 늦었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1부, 2부로 나누었습니다.

2부는 토요일에 올리겠습니다.

새해 첫날 이런 글을 올려서 죄송하네요, 모두 작년 한 해 동안 고생하셨고,

새해에는 더 기쁜 일이 많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해피뉴이어!

저도 지금은 잘 극복하여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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