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뽀샵이 되나요

쌩얼로 이야기해요

by sandew

보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

요즘 단체샷 찍다 보면 의례 듣게 되는 소리가 있다. ‘잠깐잠깐, 앱 좀 켜고..’ 아날로그 인간인 나는 앱을 쓰지 않는다. 우선 쓸 줄 모르기도 하고 투명하게 반짝이는 사진 속의 내 모습과 거울 속 나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외려 서글픈 생각이 들어 자신 없는 쌩얼일지언정 보정을 하지 않는다. (가끔 빛의 효과라던지 좋은 카메라의 우연한 포착으로 잘 나온 사진이 있으면 크게 기뻐하는 정도) 40대가 넘어서니 웃을 때면 눈가 주름이, 무표정하면 팔자 주름이, 어떻게 해도 드러나는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게 되니 사진을 덜 찍게 되는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라 생각했다. 다만 SNS에서 보여지는 친구들의 피부는 스무 살의 그때와 다르지 않으니 자연스런 세월은 나만 정통으로 맞았나 급 씁쓸해져서 나도 이제 앱을 써볼까 슬슬 관심이 생기려던 참이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

곧 대학에 진학하는 아는 고딩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작년 여름에 만났는데 기적의 다이어트가 있지 않고서야 얼굴은 반쪽이요 큰 눈에 오똑한 코, 첨 보는 요정 같은 아이가 있는 게 아닌가. 어려서부터 워낙 통실(?)해서 평생 다이어트 중이긴 해도 본디 동글동글 귀염상인 아이지만 누가 봐도 사진 속 그분은 그 아이가 아니었다. 모르는 아이돌이라고 해도 믿었을 남 수준의 사진을 떡하니 프로필에 올려놓다니!

‘어머, 얘 친구들은 오프라인에선 안 만나고 다 온라인에만 있나 봐’

잘 다듬은 자신이 모습이 흡족하고 자신감도 올라간다면 뭐 어떠리. 그러나 그걸 프로필로 해 놓기에는 실제로 만났을 때 최소 민망하지 않을까 아니면 저 사진을 자꾸 보다 보니 그게 자기 모습이라고 믿는 건가 하니 재미있다기보다는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뽀샵중?

그러고 보면 글이야 말로 뽀샵의 최고봉이다. 글이라는 건 무한한 상상을 가능케 하는 매개라서 그만큼 과장되고 왜곡되기 또한 쉽다. 브런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측 상단의 ‘게시’가 아닌 ‘발행’이라는 버튼에 부담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발표가 된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사족이 붙는다. 사족이 붙은 글은 때로 나의 처음 의도와 다른 글이 되어 나오는 것처럼, 가공되고 편집된 인생은 진짜 내가 아님에도 슬쩍슬쩍 뽀샵질을 하게 되더란 말이다. 그러면서 한껏 포장한 산듀의 삶을 나라고 착각하고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아무리 뽀샵과 앱으로 보정하고 다듬어도 그를 마주했을 때 드러나는 건 본모습이듯 살아가는 모습도 그러하다.

마흔이 넘어가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살아온 인생의 반은 이미 내 얼굴이 말해주고 있고 말투와 습관 그 모든 곳에서 나라는 사람은 드러나게 마련이니 이제는 감추는 게 더 힘든 나이가 되었다.




인생은 그렇게 인과 관계가 딱딱 들어맞지 않고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야 마땅한 깨달음 후에도 그모냥 그대로일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미완성인 나의 삶은 자글자글한 주름처럼 굴곡도 많고 상처와 검버섯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게 내 모습인걸. 너무 찍어 바르고 닦아내지 않고 이곳에서만큼은 쌩얼로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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