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가
여느 평범한 아침이었다.
막내를 학교에 보내고 잠시 운동하러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아침,
미국에 있는 아이들과 영상 통화하는 거 외에는 울릴 일이 없는 아침 폰이 계속 울린다.
조회수가 1000회를 돌파했습니다.
10분 후, 2000회를 돌파했습니다.
아… 이거 뭔가 등골이 싸한 기억…
2년 전 가을,
코로나로 지치기 시작하고 가뜩이나 가족뿐인 삶에서 남편과 크게 다투고 마음을 나눌 곳이 없던 그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고 하고 싶었던 일을 통해 소통하고자 브런치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10년 간, 유학으로 시작되어 이민이 되어가는 삶의 이야기, 남편과 가족의 이야기, 소소한 일상 등 신나게 집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워낙 새로운 플랫폼을 알아가는 데 취약한 나는 그저 내 글을 올릴 플랫폼이 생겨서 기뻤고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아줌마 얘기에 라이킷을 표시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신통방통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니 브런치의 시스템이니 알고리즘이니 알 턱이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쯤 되었나.
그날 올린 글 (시댁 뒷담화)을 올리자마자 전에 없던 알람이 왔다. 조회수가 1000회, 2000회, 순식간에 3000회를 넘겼다는 알람이 정신없이 삑삑 울리는데 브런치 초보라 멀 몰라서 ‘와 포털이라 그런가 어디 구석에 짱 박혔는지도 모르는 글도 이런 조회수가 나오나 보네’ 라며 무심하게 다음 메인으로 들어갔다가 내 글이 떡하니 올라와 있는 걸 보고 기절할 뻔했다. (지금 보니 브런치 초반에 이런 뿅가리를 선사하는 건 신인 작가를 격려하기 위해 종종 있는 브런치의 선물 같은 경험이더군요) 10분도 채 되기 전에 5000회가 넘어갔는데 껑충껑충 뛰는 숫자를 보며 신나야 할 마음이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이 보면 누구나 나인 줄 알 수 있을 법한 글인데 시댁이나 남편이 보게 되면 어쩔? (사실 남편은 다음을 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만의 공간으로 브런치를 택한 것도 없지 않지만) 사람일 누가 알리, 저 조회수 중 누군가 그들의 지인이 되어 가뜩이나 위태한 코로나 시국의 풍지박산 가정사에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닌가 했다가, 그래도 초보 브런치언에게 구독자님들을 찾아갈 절호의 기회인데 지켜볼까, 하…다른 글도 많은데 왜 하필 이 글이 올라갔을까.... 그 짧은 시간 동안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만약을 생각하고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결국 10분 만에 발행을 취소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막연히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지만 정작 나라는 사람은 그 뒤에 감춰두고 싶은 속마음을 들켜버린 듯, 포털의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체감한 그날 이후 혹여나 만의 하나 중의 하나, 나를 아는 사람이 봐도 괜찮을 법한 내용으로 글을 가려 쓰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간, 아니 1년이 넘도록 내 삶처럼 홀로 외롭게 방치된 나의 공간에 혼자 꾸역꾸역 삶을 써 내려가며
얼마나 그 순간을 후회했는지 모른다.
결국 그 글을 다시 올리고 언제고 나에게 또 기회가 오기를 꿈꿨지만 기회는 그렇게 자주 찾아와 주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악화된 남편과의 관계로 별거 아닌 별거를 시작하게 되면서
절박한 마음으로 아무 말이나 일기에 쓰듯 감정을 쏟아내던 지난 시간이었다.
알람이 울린 후로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숫자.
아… 아니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알려지길 원한 글이 아니야.
시댁보다는 낫지만 만만치 않아.
조회수 폭발 대비 조용했던 댓글이 달리기 시작한다.
내 의도와 달리 감정적으로 불편하게 다가왔던 이들의 의견들..
두렵다.
그렇게 보여지는구나.
하…. 한번 맛보았으니 이제 내려주면 좋겠다.
근데 점점 올라간다. 심지어 빈도가 줄고 있다.
그때부터 내 가슴이 또 뛰기 시작한다.
운동은 이미 그만뒀고 집에 왔는데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도대체 어디서 들어오는 거야?
왜 나만 안 보이는 거야?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옥죄어 오는 느낌?
구독자가 늘어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에 관심을 갖고 공감해주고 소통하는 것은 내가 너무도 꿈꾸는 일인데,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나의 의도가 왜곡되고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그 불편한 마음이 나의 공간에 남는 일…
여기서 끝나면 다행인데
내 주변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나의 공간이 혹여 나를 아는, 그를 아는 누군가에게 전해져
이처럼 우리의 이야기가 왜곡되어 전달이 될까 봐
그리하여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또 다른 모습의 상처를 남길까 봐 두려운 마음이 정신없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내릴까? 말까?
10분 만에 내려버린 첫 이야기처럼,
또 내릴까?
아무래도 이번 글은 아닌 거 같아.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그러나 다음 기회는 그렇게 생각처럼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제발 아무도 반응 안 해서 빨리 내려가길…
발행 취소 버튼 위에 마우스를 갖다 놓았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초조하게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글은 결국…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그 글엔 조금씩 응원과 공감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난 솔직한 마음을 써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아주 조금 생겼다.
또한 마구 쏟아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도… 남겨두기로 했다.
난 아직도 작가로서, ‘나를 보여주는 일’ 이 두렵다.
내 생각을, 내 속 마음을, 내 삶을…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것 말이다.
그러나, 외국인이 아닌 담에야 ‘게시’와 ‘발행’의 차이를 모를 리가 없다.
아무리 구독자가 없어도 그들도 엄연히 내 글에 노출된 사람인데 ‘발행’ 버튼을 눌렀다는 건, ‘보여져도 괜찮다’라는 확신의 글이었을 것이다.
조금 용기를 내보려 한다.
비록 많지 않지만 지켜봐주고 격려해주는 응원에 힘입어.
그것이 ‘브런치 작가’로서 나의 새로운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