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멀리 보기
글을 쓰는 사람은 두 가지로 나뉜다.
빨리 쓰는 사람과 천천히 쓰는 사람.
난 후자다.
말의 의미를 곱씹고 되새김질하는 건 타고난 기질(?) 같은 거라서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어려서 친구들과 짧은 쪽지를 쓰거나 생일 축하 카드를 쓰거나, 심지어 앙케이트에 쓸 답변을 고를 때에도 그 짧은 문장을 얼마나 다듬고 고쳐 썼는지 모르겠다.
생각 없이 듣고 있던 노래가 귀에 꽂힐 때는 대부분 어느 소절에선가의 한 단어였고
어느 찬양곡이 마음을 움직였을 땐 꼭 성경책에서 그 구절이 담긴 본문을 찾아보곤 했다.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대사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골백번 돌려보는 건 기본이고
책을 읽을 때도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씹어 먹듯이 느리게 느리게 보는 편이다.
일상의 어느 순간을 기록하고 싶을 땐 그 자리에서 짧은 메모를 하지만
그 생각을 하나의 글로 완성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가 쓴 글은 단 한 줄 메모부터 완성된 한 편의 이야기까지 백번 천 번 읽고 소리 내 말해보고 심지어 올린 후에도 다시 보고 매끄럽지 못하다 여겨지면 또 고치기를 수십 번.
말도 빠르고 성격도 급하고 결정도 포기도 빠르고
그림도 빨리 그리고 음식도 레시피 다 무시하고 후다다닥, 설거지는 자타공인 세상 젤 빠르니
머든 후딱후딱 해치우는 게 장기이자 특기인 내 삶에서
유일하게 글을 완성하기 위한 방식만큼은 그렇게나 비효율적이고 더디고 강박에 가까울만큼 피곤하다.
(그렇다고 내 글이 남들의 글에 비해서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건 아님, 이건 완전 별개의 문제ㅠㅠ)
쿨내 진동, 난 안봐?!
요즘 나의 최애 컨텐츠 제작자(머라고 해야 할지 몰라 내 맘대로 타이틀을 붙임)는 나의 지인이자 나는 그분의 big fan이다. 그분이 만드는 다양한 컨텐츠에서 잔잔하게 혹은 위트 있게 들려주는 일상의 이야기들은 생각지 못한 삶의 힐링 포인트가 되어준다. 아침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기도를 하고 뉴스를 보고 커피를 내리는 등의 하루를 여는 의식이 있듯, 난 그분의 컨텐츠를 찾아본다. 좋아하는 그림이나 글 같은 건 따로 저장하기도 해서 어떤 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본인은 너무나 무심하게 ‘난 잘 몰라. 워낙 많아서…’하면서 기억을 못 하는 것이었다.
헐… 안 봐? 나도 몇 번을 돌려본 걸 본인은 안 본다고?
그런데 어떤 브런치 작가님도 본인이 올린 글을 다시 보거나 수정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고 생각보다 꽤 많은 작가분들이 본인 작품을 두고두고 찾아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짧은 시간, 되새기고 돌아보지 않고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들의 재능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그들의 재능이 부러울수록 그에 못 미치는 나의 한계가 한탄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종종 빨리 쓰는 글이 있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 그렇다. 아이들과 일상에서 느끼는 일들은 빨리 쓰고 다듬고 고칠 필요가 없을 때가 많다. 그건 그날 그 순간에 떠오른 생각이 아닌, 평소에 무수히 반복하며 겪고 고민하고 쌓아온 생각이 어느 계기를 만나 표현되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꽃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름다운 표현을 고르고 새김질한들 그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쉽게 빨리 쓰는 그분들, 타고난 재능이 너무 부러웠던 그분들은 그 생각이 말로 표현되어 나오기까지 겹겹이 많은 시간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고민하고 그에 대한 마음을 켜켜이 쌓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부족한 재능을 탓하기보다 조금 넓은 시선과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자꾸만 생각이 많아지고 글에 힘이 들어가는 거 같다고 느껴진 어느 날.